토레 셸레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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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3]
1.1. 선수 생활
1.1.1. 클럽
셸레르는 고향 노르쾨핑을 연고로 하는 IK 슬레이프네르(Sleipner)에서 모든 커리어를 보냈다.
셸레르는 1924년에 슬레이프네르에서 데뷔하자마자 팀의 주축 선수가 되었으며 클럽의 아이콘으로 활약했다.
1933년에 슬레이프네르는 잠시 강등을 당하기도 했지만 셸레르는 충성심을 보이며 팀에 남았고 다음 해에 바로 알스벤스칸으로 승격을 이뤄냈다. 그 이후 슬레이프네르는 성적을 끌어올렸고 1937년에는 준우승, 1938년에는 팀 역사상 유일한 알스벤스칸 우승을 차지했다.
우승 2년 후인 1940년, 셸레르는 축구 선수 커리어를 마감했고 16년간 305경기 출전, 150골의 기록을 남겼다. 이 안에는 알스벤스칸 최초의 1경기 6골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1.1.2. 국가대표
셸레르는 슬레이프네르에서 데뷔하자마자 파리 올림픽에 스웨덴 대표 선수로 차출되었고 벨기에와의 1라운드 시합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셸레르는 1골을 넣었고 스웨덴은 벨기에를 8대1로 대파했다. 셸레르는 네덜란드전에도 출전해 스웨덴의 3대1 승리를 이끌었고 스웨덴은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1927년 7월 1일에 열린 에스토니아전에서 셸레르는 해트 트릭을 기록하며 3대1 승리의 1등 공신이 되었고 1934년 5월 23일의 폴란드전에서도 해트 트릭을 기록했다.
1934년 월드컵에서 셸레르는 대표팀의 주전 인사이드 레프트 포워드로 참가해서 스웨덴의 8강 진출을 이끌었지만 득점을 기록하진 못했다.
다음 대회에 셸레르는 대표팀 주장으로 프랑스에 갔고 8강 쿠바전에서 1골을 넣어 8대0 대승에 기여했다. 스웨덴은 3,4위전에서 브라질에 패해 4위로 만족해야 했다.
월드컵이 끝나고 이틀 후인 6월 21일에 치러진 노르딕 챔피언십 덴마크전이 셸레르의 마지막 A매치였으며 셸레르는 스웨덴 대표팀의 25경기에서 16골을 넣었다.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셸레르는 매우 느린 선수였지만 뛰어난 시야와 기술을 통한 패스로 공격을 조율하는 기술을 갖고 있었고 득점 능력도 갖추었다.
셸레르는 슬레이프네르의 역사를 대표하는 선수로 대접받고 있다.
3. 뒷이야기
- 셸레르는 축구 선수 활동을 하면서 부업으로 전기 기사 일도 했다.
4. 수상
4.1. 클럽[4]
- 알스벤스칸 우승 1회: 1937–38
- 알스벤스칸 준우승 1회: 1936–37
- 스벤스카 쿠펜 준우승 1회: 1941
- 디비시온 2 외스트라 우승 1회: 1933-34
4.2. 국가대표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2] 셸레르는 IK 슬레이프네르의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4] 셸레르는 IK 슬레이프네르의 원 클럽 플레이어이므로 팀 이름 기입은 생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