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클럽 플레이어
1. 의미
One Club Player
스포츠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오직 한 클럽에서 보낸 사람을 일컫는 말. 반대의 경우는 저니맨.
돈이나 명성을 따라 팀을 옮기는 현 시대의 세태와 다르게 오직 한 클럽에게만 충성하여 선수 생활을 하는 건 드문 일이다. 원 클럽 맨은 한 클럽에서만 오랜 시간을 보내므로 자연히 그 클럽의 상징이 되거나 주장을 맡는 일이 많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선수 항목에서도 보이듯 한 팀에만 머문다고 팬들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다고 보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실력을 기본으로 갖추고''' 팀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 엿보일 때 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원클럽맨은 대개 본래 실력에 비해 저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팀이 암흑기에 접어들면 이적해버리는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팀의 암흑기까지 함께하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원 클럽 맨은 유스서부터 시작해 프로 은퇴 때까지 모두 한 클럽에서 뛰는 것이 원칙이지만, 전세계의 축구선수들이 몰려오는 유럽 빅리그의 특성상 유스는 다른 클럽에서 뛰더라도 자국 리그의 A팀 데뷔 이후 한 팀에서 쭉 뛴다면 원 클럽 맨으로 인정해주는 편이며 임대로 잠시 다른 팀 가서 뛴 선수들도 인정해주는 게 보통이다. 은퇴 후 아마추어 팀이나 세미프로에서 뛰는 것도 인정해주는 사람이 있는 편. 한국은 징병제 때문에 상무나 경찰청에서 뛴 경력이 있어도 한 클럽에서만 뛰면 원 클럽 맨으로 쳐준다. 보통 원 클럽 맨의 경우 최소 진골 취급은 해준다.[1] 또한 해외 진출 경력이 있어도 국내에서 한 팀에서만 오래 뛰었다면 인정해 준다. 한국에서 축구는 해외진출이 더 출세한 것으로 간주되므로 이런 경우는 드물고 농구는 해외진출 자체가 어려우므로 주로 야구에서 이런 케이스들이 나온다.
로컬 보이와 더불어 은퇴 이후에 해당 팀의 감독이 되기 쉬운 케이스이기도 하다. 특히 NPB의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선수 생활은 물론, 코칭 스태프 커리어까지도 오로지 요미우리에서만 보낸 선수만을 감독으로 선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 축구
2.1. 원 클럽 플레이어
※기준은 10년 이상으로 한국인의 경우 군복무를 위해 군경팀이나 하부리그팀에 소속되어 있었던 것은 제외한다.
2.2. 원 클럽 플레이어에 준하는 선수
- 가비노 소사 - 잠시 군대 문제를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센트랄 코르도바에서 보냈다. 지금까지도 유일한 센트랄 코르도바의 국대급 선수이다.
- 강준우 - 프로축구 선수로 10년 동안 제주 유나이티드에서만 뛰었지만, 말년에 FC 안양으로 이적했다.
- 게르트 뮐러 - FC 바이에른 뮌헨, TSV 1861 뇌르들링겐으로 데뷔한 뒤 1964년부터 1979년까지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다. 1979년에 포트로더레일 스트라이커즈로 이적했다.
- 구티 - 레알 마드리드 CF, 1986년 유스 팀부터 시작하여 2010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다가 베식타쉬 JK로 이적 후 1년 뒤 은퇴했다.
- 김광석 - 포항 스틸러스에 2002년 연습생 신분으로 입단한 이후 군 입대시기를 제외하면 한팀에서만 18년간 400경기 넘게 출장한 포항의 레전드 수비수. 하지만 구단과의 협상에서 난항을 겪으며 2021년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한다.
- 김태영 - 1993년 국민은행 축구단에 입단해 2년간 뛴 뒤 1995년 전남 드래곤즈에 입단해 2005년까지 10년 동안 소속된 뒤 은퇴하였다.
- 곽희주 -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3년 입단 후, 11년간 수원에서 뛰고 FC도쿄와 알 와크라 SC에서 2년간 선수 생활을 한 뒤, 2015년 다시 수원으로 복귀, 이후 2016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 네쿠 - SC 코린치안스, 1915년에 계약 문제로 잠시 맥켄지 대학교에서 뛴 것을 제외하면 17년간의 선수 생활을 모두 코린치안스에서 보냈다.
- 다리요 스르나 - FC 샤흐타르 도네츠크, HNK 하이두크 스플리트에서 데뷔 후 2003년부터 2018년까지 샤흐타르 도네츠크에서 뛰었다가 칼리아리 칼초로 이적했다.
- 대런 플레처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3년부터 2015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다가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으로 이적. 그 후 스토크시티로 이적하였다.
- 다니엘레 데 로시 - AS 로마. 2001년부터 2019년까지, 18년간 AS 로마에서 뛰었고 CA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후 반시즌을 보낸뒤 은퇴했다. 신태용처럼 데 로시도 구단으로 인해 이적한거라 사실상 원 클럽 맨. 전성기의 데 로시는 레알 마드리드 등 유수의 명문 클럽들이 노릴 정도의 선수였다.
- 라울 곤살레스 - 레알 마드리드 CF. 1994년부터 2010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다가 FC 샬케 04, 알 사드 SC, 뉴욕 코스모스 등으로 이적 후 은퇴했다.
- 로만 바이덴펠러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1.FC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 데뷔 후 2002년부터 2018년까지 16년간 활약하다 은퇴했다.
- 로베르토 이라녜타 - 힘나시아 에스그리마, 9년간 활약하였다.
- 로베르토 체로 - CA 보카 주니어스. 커리어 초기의 2년을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보카에서 보냈고, 역대 보카 주니어스 득점 랭킹 2위에까지 올랐다.
- 루돌프 노아크 - 함부르크 SV. 2차 대전 시기에 2년간 퍼스트 비엔나에서 뛴 것을 제외하면 커리어를 모두 HSV에서 보냈다.
- 루이장 - SL 벤피카. 2개의 팀을 옮겨 다닌뒤 2003년 부터 2018년까지 SL 벤피카에서 뛰었다.
- 리오 퍼디난드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뛰다가 2002년부터 2014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이적했다.
- 마르셀루 - 레알 마드리드 CF. 2007년 1월, 호베르투 카를로스의 대체자로 영입되어 지금까지 로스 블랑코스의 수비진을 지탱하고 있다.
- 마르코 로이스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유소년 시절 자신을 버린 클럽에 다시 들어와 2012년부터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며, 현재는 주장 완장까지 차고 있다.
- 마누엘 세오아네 - CA 인데펜디엔테. 커리어 도중 사고를 쳐서 군대 때문에 포르베니르에 갔다온 것을 제외하면 10년 가까이 인데펜디엔테에서 활약하였다.
- 메멧 숄 - FC 바이에른 뮌헨, 카를스루에 SC에서 데뷔한 뒤 1992년부터 2007년까지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다.
- 무함마드 라티프 - 자말렉 SC, 레인저스 FC에서의 한 시즌을 제외하면 모든 선수 생활을 자말렉에서 보냈다.
- 바비 무어 -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 1958년 웨스트햄 유스를 시작으로 1974년까지 웨스트햄의 주장이자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으로 잉글랜드의 1966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으며 1974년 풀럼 FC로 이적한 뒤 1978년 시애틀 사운더스 FC, FC 미트윌란을 거쳐 은퇴했고 바비 무어의 6번은 웨스트햄의 영구결번이 되었다.
-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 FC 바이에른 뮌헨, 2002년에서 2015년까지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 후 시카고 파이어로 이적하였다.
- 박창현 - 포항 스틸러스, 1989년 포항에 입단 후 1994년 까지 6시즌을 활약한 뒤 1995년 같은 계열사인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하여 8경기를 뛴 뒤 은퇴하였다. 은퇴한 이후 2008년 파리아스 사단에 합류하며 포항으로 돌아와 2010년 감독대행 시절까지 코치와 감독대행으로 동고동락을 함께했다.
- 백기태 - 포항 스틸러스. 1990년 포항 스틸러스 산하 유소년 팀인 포항제철동초등학교에 입단한 이후 포철중-포철공고를 거쳐 1999년 포항 스틸러스에 정식 입단한다. 하지만 2000년, 2시즌 만에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하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은퇴 직후 2001년 부터 자신의 모교인 포항 스틸러스 산하 유소년 팀인 포철동초 코치를 시작으로 포철중 코치, 포철공고 코치, 포철동초 감독을 거쳐, 현재 포항제철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을 역임하고 있다. 1990년 부터 축구인으로서 본인의 모든 커리어를 포항 스틸러스 소속으로 보내고 있는 셈이다.
- 베르나르트 포르호프 - 리르서 SK, 1927년부터 1948년까지 무려 21년을 리르서 SK에서 보냈으며 말년의 3부 리그 활약을 빼면 모든 커리어를 한 팀에서 보냈다. 역대 리르서 SK 팀 내 최다 출전, 최다 득점 기록도 그의 몫이다.
- 보비 찰튼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1956년부터 1973년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다가 프레스턴 노스엔드, 워터포드 유나이티드로 이적한 뒤 은퇴했다.
- 빅토르 모랄레스 - 콜로콜로, 초기 선수생활 2년을 제외하면 11년을 콜로콜로에서 활약하였다.
- 빅토르 발데스 - FC 바르셀로나, 2000년부터 2014년까지 바르셀로나에서 뛰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로 이적 후 1년 뒤 미들즈브러 FC로 이적했다.
- 차비 에르난데스 - FC 바르셀로나,1991년 유스 팀에 입단하여 1군까지 총 25년을 뛰고 2015년에 알 사드 SC로 이적했다.
- 설러이 언털 - 위페슈트 FC, 1929년부터 1940년까지 위페슈트에서 뛰었다. 트랜스퍼마크트의 기록에 의하면 원 클럽 플레이어지만 위키피디아의 기록에서는 이후의 선수 기록이 조금 있다.
- 세르히오 라모스 - 레알 마드리드 CF, 세비야 FC에서 데뷔한 뒤 2005년부터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뛰고 있다.
- 숄라 아메오비 - 뉴캐슬 유나이티드, 1995년 뉴캐슬 유스로 입단한 후 2000년부터 2014년까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다.
- 쉬츠 죄르지 - 위페슈트 FC, 평생 단 한 클럽에서 뛰었지만 뛴 시즌이 10시즌이 못 된다.
- 슈타니슬라우스 코비에르스키 -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데뷔 시절의 1년과 2차 대전을 제외하면 20년의 세월을 포르투나와 함께했다.
- 스티브 하퍼 - 뉴캐슬 유나이티드, 1993년 뉴캐슬에서 데뷔하여 2013년까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뛰었고, 이후 헐 시티에서 뛰었다.
- 스티븐 제라드 - 리버풀 FC, 1998년에서 2015년까지 16년 동안, 유스 팀 시절까지 합하면 28년 동안 리버풀 FC에서 뛰다가 로스앤젤레스 갤럭시로 이적했다.
- 신태용 - 성남 일화 천마(일화 천마-천안 일화-성남 일화 모두 포함), 1992년 일화 천마(동대문 연고)에서 데뷔하여 2004년까지 뛰었고 이후 A리그 퀸즐랜드 로어에서 1경기만 뛰고 은퇴했다. 퀸즐랜드 이적도 본인 의사가 아닌 프런트가 노장이라고 방출시켜서 한거라 팬들은 사실상 원 클럽 맨으로 본다.
- 신화용 - 포항 스틸러스, 포항 출신에 포철동초-포철중-포철공고로 이어지는 유스 시스템을 모두 거치고, 군 면제로 인해 상주나 경찰청에서도 뛴 적 없는 진정한 의미의 원 클럽 맨이자 포항의 전설 그 자체였다. 2004년부터 2016년까지 13시즌간 원 클럽 맨이었으나, 2016시즌 종료 후 구단에서 선수 본인과 감독도 모르게 멋대로 이적을 시도한 것이 밝혀져 끝내 2017시즌, 포항 스틸러스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다.[12]
- 시오 월콧 - 2006년 17세 나이에 아스날 FC에 입단해 지금까지 뛰었지만 2017년 에버턴 FC로 이적하였다.
- 아메리코 테소리에레 - 1921년의 단 2경기를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CA 보카 주니어스에서 보냈다.
- 안드레스 이니에스타 - FC 바르셀로나, 1996년부터 FC 바르셀로나 유스팀에 입단한후 2002년부터 2018년까지 바르셀로나에서 뛰었고 이후 J리그의 비셀 고베로 이적했다.
- 안토니오 디 나탈레 - 우디네세 칼치오, 엠폴리 FC 등 4개 팀을 옮겨다니다가 2004년부터 우디네세 칼치오에서 뛰고 있다가 2016년 은퇴했다
-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 유벤투스 FC, 칼치오 파도바에서 데뷔 후 1993년부터 2012년까지 유벤투스에서 뛰다가 시드니 FC, 델리 다이모스 FC로 이적 후 은퇴했다.
- 앨런 시어러 - 뉴캐슬 유나이티드, 사우스햄튼 FC와 블랙번 로버스에서 뛰다가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뉴캐슬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다.
- 야코프 벤더 -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1950년의 키싱언 05에서의 선수 겸 감독 생활을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보냈다.
- 양상민 - 수원 삼성, 2005년, 2006년을 전남 드래곤즈에서 뛰고, 2007년부터 수원 삼성에서 현재까지 뛰고 있다. 2020시즌 기준 팀내 유일한 마지막 리그 우승 멤버이다.
- 에른스트 알브레흐트 - 포르투나 뒤셀도르프, 말년의 선수 겸 감독 생활을 제외하면 모든 커리어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에서 보냈다.
- 에른스트 후프슈미트 - FC 바젤, 1938-39 시즌에 잠시 FC 빌비엔에서 보낸 것을 제외하면 21년의 선수 생활 모두를 바젤에서 보냈다.
- 에밀리오 부트라게뇨 - 유소년 선수 시절부터 레알 마드리드 CF에서만 뛰다가 말년에 멕시코의 클루브 셀라야에서 3년간 활동하고 은퇴했다.
- 에스테반 캄비아소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4개의 팀을 옮겨 다니나가 2004년 인터 밀란에 입단해서 2014년까지 뛰다가 레스터 시티 FC, 올림피아코스 FC로 이적했다.
- 에티엔 마틀레르 - FC 소쇼-몽벨리아르, 고향팀 벨포르와 트르와에서 뛰다가 1929년부터 1946년까지 소쇼의 주장으로 활약하였다.
- 오토 지플링 - SV 발트호프 만하임에서 뛴 기간은 8년이지만 27살에 흉막염으로 요절.
- 올리버 칸 - FC 바이에른 뮌헨, 카를루스에 SC에서 데뷔한 뒤 1994년부터 2008년까지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다.
- 웨인 루니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에버튼 FC에서 데뷔한 뒤 2004년부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서 뛰었다가 2017년에 에버튼으로 복귀했다.
- 위르겐 클롭 - 1.FSV 마인츠 05, 5개 팀을 옮겨다니다가 1990년부터 2001년까지 마인츠에서 뛰었다.
- 이운재 - 수원 삼성 블루윙즈, 상무와 말년 2시즌을 전남 드래곤즈에서 보낸 것을 제외하면 13시즌을 수원 삼성에서 보냈다.
- 이장관 - 부산 아이파크, 데뷔 이래 부산 외의 다른 팀에서 뛰어 본 역사가 없이 1997년부터 2007년까지 11시즌을 부산에서 보냈으나 2008시즌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해 딱 반 시즌 후 은퇴했다.
- 이케르 카시야스 - 레알 마드리드 CF, 1990년 유스 팀에 입단하여 레알 마드리드 C,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CF를 거쳐 1군까지 총 26년을 뛰고 2015년에 FC 포르투로 이적했다.
- 이흥실 - 포항 스틸러스, 1985년 입단 후 데뷔 시즌부터 맹활약하며 1985년 신인상, 1986년 K리그 MVP, 1989년 도움왕 등 8시즌 동안 포항에서 화려한 커리어를 보낸다. 1993년 황선홍의 이적과 맞물려 신생팀인 완산 푸마로 트레이드 된 뒤 대통령배 대회에만 1경기 출장한 후, 불과 3개월 만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 제바스티안 켈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하노버 96, SC 프라이부르크에서 뛰다가 2001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입단해 2015년까지 뛰다가 그해에 은퇴했다.
- 젠나로 가투소 - AC 밀란, 페루자, 레인저스, 살레르니타나 등 3개 팀을 옮겨다니다 1999년부터 2012년까지 AC 밀란에서 뛰다가 FC 시옹으로 이적 후 2013년에 은퇴했다.
- 조긍연 - 포항 스틸러스, 1985년 입단 후 1989년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1991년 까지 7시즌간 활약한 후, 1992년 현대 호랑이로 이적 후 10경기를 뛴 뒤 은퇴하였다.
- 조르조 키엘리니 - 유벤투스 FC, AS 리보르노 칼치오, ACF 피오렌티나에서 뛰다가 2005년부터 유벤투스에서 뛰고 있다.
- 조 하트 - 맨체스터 시티 FC, 슈루즈버리 타운에서 데뷔한 후 2006년에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 했으며 3개의 팀에서 임대생활을 했다.
- 존 오비 미켈 - 첼시 FC, FK 륀에서 데뷔한 뒤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첼시 FC에서 뛰었고 이후 중국의 텐진 터다로 이적했다.
- 존 테리 - 첼시 FC, 1998년 첼시 FC 에서 데뷔후 2000년 노팅엄 포레스트 임대를 제외하고 2017년 까지 첼시에서 뛰었으며 이후 시즌 종료후 팀을 떠나 아스톤 빌라 FC로 이적했다
- 잔루이지 부폰 - 유벤투스 FC, AC 파르마에서 데뷔한 뒤 2001년부터 2018년까지 유벤투스 FC에서 뛰다가 같은 해 파리 생제르망으로 이적했다. 2019년에는 다시 유벤투스로 복귀.
- 체사레 말디니 : 프로 데뷔는 트리에스티나 칼초에서 했으나 1953년부터 1966년까지 AC 밀란 에서 뛰었고 토리노 FC에서 은퇴하였다.아들인 파올로 말디니는 AC 밀란 에 영구결번을 가진 원클럽맨이다.
- 최동일 - 대전 한국철도 축구단, 한국철도 축구단이 인천광역시를 연고로 하던 2011년에 입단하여 2020년까지 뛰며 대한축구협회 FA컵 결승전까지도 올라본 전설이다.
- 최문식 - 포항 스틸러스, 1989년 부터 1998년 까지 10시즌을 포항에서 활약한 후, 전남, 수원, 부천 SK 등을 거쳐 2002년을 끝으로 은퇴. 은퇴 후 2007년 포항 유소년 코치로 친정팀에 복귀해 2008년까지 15세 이하 선수들을 지도했고 2009년부터 2010년까지는 2군 코치로 활동.
- 최은성 - 1997년 대전 시티즌 창단 때부터 2011년까지 대전의 유니폼만 입고 뛰었으나, 구단 측의 실책으로 인해 2012년에 방출되었다가 전북 현대로 이적한 후 그곳에서 은퇴했다.
- 크누트 크룬 - 헬싱보리 IF, 데뷔 첫 시즌을 빼면 모든 커리어를 고향팀 헬싱보리에서 보냈다.
- 크리스티안 아비아티 - AC 밀란, 2개의 팀에서 뛰다가 1998년 AC 밀란에 입단한 이후 2008년까지 유벤투스, 토리노 FC,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에서 임대 생활을 했고 2016년까지 AC 밀란에서 뛰다가 은퇴했다.
- 클레멘스 프리츠 - SV 베르더 브레멘, 3개의 팀을 옮겨다니다가 2006년부터 SV 베르더 브레멘으로 이적해서 뛰고있다.
- 토마스 로시츠키 - 아스날 FC, AC 스파르타 프라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뛰다가 2006년부터 2016년까지 아스날 FC에서 뛰었다.
- 팀 보로프스키 - SV 베르더 브레멘에서 10년 넘게 뛰며, 중흥기를 이끌었으나,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08~09 한 시즌을 뛴 경험이 있다. 서로에게 루즈-루즈 한 결과였던 만큼 베르더 브레멘에 남았다면 원 클럽 플레이어가 될 수 있었다.
- 페르난도 이에로 -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바야돌리드에서 데뷔 후 1989년부터 2003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다가 알 라이얀, 볼턴 원더러스에서 뛰었다.
- 페트르 체흐 - 첼시 FC, 3개 팀을 옮겨다니다가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첼시 FC에서 뛰었다. 2015년에 아스날 FC로 이적했다.
- 펠레 - 산투스 FC, 1956년부터 1974년까지 산투스에서 뛰다가 뉴욕 코스모스로 이적한 뒤 1977년 은퇴했다.
- 프란시스코 헨토 - 레알 마드리드 CF. 레알 라싱에서 단 10경기만 뛰고 1953년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1971년 은퇴 때까지 뛰었다.
- 프란츠 베켄바워 - FC 바이에른 뮌헨, 1964년부터 1977년까지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다가 이후 3개의 팀에서 활약했다.
- 프랑크 벨스 - GVV 유니타스,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서의 1년을 제외하면 1926년부터 1951년까지 유니타스에서만 커리어를 보냈다.
- 프랭크 램파드 - 첼시 FC,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에서 데뷔 후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첼시에서 뛰었다가 맨체스터 시티 FC, 뉴욕 시티 FC로 이적했다.
- 필리포 인자기 - AC 밀란, 유벤투스 FC 등 6개 팀을 옮겨다니다가 2001년부터 2012년까지 AC 밀란에서 뛰었다.
- 하비에르 사네티 -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타예레스, CA 반필드에서 뛰다가 1995년부터 2014년까지 인테르에서 뛰었다.
- 헤수스 나바스 - 세비야 FC, 2000년 세비야 FC의 유소년 팀에 입단했으며 2003년 1군 데뷔 후 2013년 까지 뛰다가 맨체스터 시티 FC로 이적했지만 2017년 다시 세비야 FC로 이적하였다.
- 호르헤 사르미엔토- 알리안사 리마. 페루 축구 역사 초기의 스타로 알리안사 리마에서 대부분의 커리어를 보냈다.
- 황진성- 포항 스틸러스. 2001년 포항 유스 팀인 포철공고에 입학하며 포항과 연을 맺은 후 2013년 까지 13년 동안 포항 소속으로 활약했다. 2013 시즌 이후 재계약에 실패해 포항을 떠난 뒤 AFC 튀비즈와 일본 J리그에서 뛴 뒤, 2015년 K리그로 복귀하여 성남에서 1시즌, 강원에서 2시즌을 보내고 2019년 은퇴를 선언했다.
- 에르네스트 파버르 - PSV 에인트호번 , 14시즌간 에인트호번 소속으로 있으면서 3시즌간 임대를 다님
- 안토니오 발렌시아 -위건 애슬레틱 FC 에서 2009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으로 이적 하여 10년동안 커리어를 보낸뒤 2019년 에콰도르 리그 소속 팀인 LDU 키토 이적이 확정되어 고국에 귀국한다.
3. 농구
3.1. NBA
워낙 자유계약과 트레이드가 활성화된 리그이며, 축구처럼 선수가 이적을 거부할 권리가 주어지는 게 아닌 탓에 70년이 넘어가는 리그 역사임에도 원 클럽 플레이어의 수가 보다시피 매우 적다. 외국팀에서 뛴 경력은 원클럽플레이어의 기준에서 고려하지 않는다.
3.1.1. 원 클럽 플레이어에 준하는 선수
- 빌 레임비어 -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서 1981년부터 1994년까지 13시즌을 뛰고 은퇴했다. 첫 데뷔는 1980년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했으며 여기서 한 시즌 반을 뛰었다.
- 마이클 조던 - 시카고 불스에서 데뷔해 1984년부터 1998년까지 중간에 은퇴했던 한 시즌을 제외하고 13시즌을 뛰고 은퇴했다. 2001년에 다시 복귀해서 2003년까지 2시즌을 워싱턴 위저즈에서 뛰었 다.
- 칼 말론 - 유타 재즈에서 데뷔해 1985년부터 2003년까지 18시즌을 뛰었고, 마지막 1년은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에서 뛰었다.
- 토니 파커 - 샌안토니오 스퍼스에서 데뷔해 2001년부터 2018년까지 17시즌을 뛰었고, 마지막 1년은 샬럿 호네츠에서 뛰었다.
- 패트릭 유잉 - 뉴욕 닉스에서 데뷔해 1985년부터 2000년까지 15시즌을 뛰었고, 마지막 2년은 각각 시애틀 슈퍼소닉스와 올랜도 매직에서 1년씩 뛰었다. 뉴욕의 극성맞은 언론과 싸워가면서 15년을 버틴 유잉은 결국 자신의 무용론을 지껄여대는 언론에 지쳐버렸고 자의로 시애틀로 떠나버렸다. 하지만 유잉은 훗날 이 트레이드에 대해 후회했다고.
- 하킴 올라주원 - 휴스턴 로키츠에서 데뷔해 1984년부터 2001년까지 17시즌을 뛰었고, 마지막 1년은 토론토 랩터스에서 뛰었다. 로케츠는 은퇴를 앞둔 올라주원을 위해 충분한 조건을 준비했지만 에이전트가 튕겨버리는 바람에(...) 로케츠의 올타임 넘버원 플레이어는 토론토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3.2. KBL
3.3. WKBL
4. 야구
4.1. 메이저 리그
메이저 리그의 경우 트레이드가 KBO 리그나 NPB보다 활성화되어 있어 원 클럽 플레이어로 남기는 매우 힘든 편이다.[21]
4.2. KBO 리그
MLB보다 트레이드가 또는 이적 비율이 현저히 낮은데도 불구하고 생각만큼 많은 편은 아니다.
볼드체로 적힌 선수는 해당 팀 영구결번 선수.
4.2.1. 해외 리그를 경험한 선수
5. 배구
5.1. 남자부
5.2. 여자부
6. e스포츠
6.1. 리그 오브 레전드
7. NFL
NFL의 경우, 선수 생명이 상대적으로 짧아서 한 팀에서 오래 뛰는 경우가 많지 않고, 하드 샐러리캡 제도를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쿼터백 같은 포지션이 아니면, 선수들의 방출, 이적이 활발한 편이다. 따라서 원 클럽 플레이어로 남아있기 어려운 구조이고, 쿼터백이 아닌 경우임에도 원 클럽 플레이어로 남는다면 더더욱 대단한 경우라 볼 수 있다.
2020년 3월에는 영원히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심장으로 남아있을 것만 같았던 '''톰 브래디'''가 탬파베이 버커니어스로 이적하면서 원 클럽 플레이어의 대열에서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하였다. 브래디 외에도 필립 리버스, 제이슨 위튼 등의 레전드들도 오랫동안 몸담은 팀을 떠나 새출발을 선택하며 원 클럽 플레이어의 대열에서 탈락하였다.
추가기준은 해당 팀에서 10년 이상 뛴 경우로, 볼드체는 현역
7.1. 쿼터백
- 바트 스타 - 그린베이 패커스
- 로저 스타우벅 - 댈러스 카우보이스
- 밥 그리시 - 마이애미 돌핀스
- 테리 브래드쇼 - 피츠버그 스틸러스
- 필 심스 - 뉴욕 자이언츠
- 존 엘웨이 - 덴버 브롱코스
- 짐 켈리 - 버팔로 빌스[28]
- 댄 마리노 - 마이애미 돌핀스
- 트로이 에이크만 - 댈러스 카우보이스
- 토니 로모 - 댈러스 카우보이스
- 일라이 매닝 - 뉴욕 자이언츠
- 벤 로슬리스버거 - 피츠버그 스틸러스
- 애런 로저스 - 그린베이 패커스
- 맷 라이언 - 애틀랜타 팰컨스
7.2. 러닝백
7.3. 와이드 리시버
- 마이클 어빈 - 댈러스 카우보이스
- 마빈 해리슨 - 인디애나폴리스 콜츠
- 하인스 워드 - 피츠버그 스틸러스
- 래리 피츠제럴드 - 애리조나 카디널스
- 줄리안 에들먼 -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
7.4. 타이트엔드
- 안토니오 게이츠 - 샌디에이고/LA 차저스
7.5. 라인맨
7.6. 라인배커
7.7. 코너백
7.8. 세이프티
- 트로이 폴라말루 - 피츠버그 스틸러스
8. 관련 문서
[1] 코치를 다른 팀에서 하면 진골, 선수로 뛰었던 데에서만 하면 성골. 또한 그 구단의 연고 도시에서 출생해 원 클럽 맨으로 선수 생활을 보내면 이 또한 성골이라 부른다.[2] 유스는 1949년부터.[3] 레알 마드리드 카스티야 입단은 1973년.[예외] A B C D 예전에는 선수생활이 짧기도 했고, 특히 당시 국내에서는 대학 졸업 후 입단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프로 경력이 길지 않다. 때문에 10시즌 기준에 부합하지 않지만 상무나 경찰청도 거치지 않은 명백한 원 클럽 플레이어이기 때문에 기록한다.[4] 은퇴 후 영국으로 유학을 가 있는 동안 세미프로인 7부 리그 예딩 FC에서 조기축구하는 정도로 축구를 했으나, 공식적인 프로경력은 포항 뿐이다.[5] 유소년 팀(포항제철중학교) 입단은 1985년[6] 2001년, 성남 일화로 이적하였으나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하고 부상으로 은퇴하였다.[7] 유소년 팀 입단은 1997년[8] 유소년 팀 입단은 2000년.[9] 유소년 팀 입단은 2005년.[10] 유소년 팀 입단은 1999년.[11] 유소년 팀 입단은 2006년.[12] 신화용은 몇 시즌간 재계약에서 포항만을 선택했으며, 2017시즌에는 연봉을 억 단위로 삭감하면서도 남으려 했다. 최순호 감독도 이후에서야 이적 사건의 전말을 알고 급히 재계약 협상을 요청했으나, 프런트의 막장으로 인해 팀의 레전드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신화용 항목 참조 [A] A B C D 클럽의 연고 이전.[13] NBA 역사상 최장 기간 근속된 원 클럽 맨이다(21시즌).[14] 이 리스트의 인물 중 특이하게 롤플레이어임에도 한 팀에만 머무는 행운을 누린 선수다. (또 하나는 이미 은퇴한 닉 칼리슨과 제프 포스터)[15] 1999년 사망 후 등번호 10번은 영구결번 되었다.[16] 은퇴 후 등번호 14번 영구결번[17] 은퇴 후 등번호 10번 영구결번[18] 은퇴 후 등번호 4번 영구결번[19] 은퇴 후 등번호 32번 영구결번[20] 은퇴 후 등번호 6번 영구결번[21] 단, 거의 모든 MLB 원 클럽맨 들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22]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입성했다.[23] 선수생활은 2017년까지 했으나 공식 은퇴발표는 2018년에 했다.[24] 이후 실업팀에서 뛰었기 때문에 은퇴가 아니라 퇴단이다.[25] 퇴단 후 실업팀인 화성시청에서 뛰었다.[26] 지명은 LIG에서 했지만 얼마 안 되어 우리캐피탈로 이적했기에 사실상 원클럽맨이다.[27] 정확히는 스타테일에서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으나 kt로 '''시드권이 계승되었기에''' 한 팀으로 본다. 시드권 뿐만 아니라 멤버도 비슷했다.[28] NFL 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