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구꽃 살인사건

 


1. 개요
2. 전개 과정
2.1. 사건의 발단
2.2. 카미야 치카라와 그의 아내
2.3. 사건의 파장
2.4. 결정적인 증거가 잡히다
2.5. 결말
3. 기타

トリカブト保険金殺人事件

1. 개요



일본 위키백과 소개
일본에서 일어난 보험금 살인사건. 범인 카미야 치카라(神谷力)가 보험금 한화 18억 5천만 원을 노리고 아내를 투구꽃복어독으로 독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당시 32세였던 오노 요키치 교수가 밝혀내었다.

2. 전개 과정



2.1. 사건의 발단


1986년 5월 19일 범인 카미야 치카라(당시 46세)는 13세 연하인 아내와 오키나와에서 여행 중이었다. 다음날 오전 9시 30분, 호텔에서 조식을 먹은 뒤 10시 30분 체크아웃하였다. 오전 11시, 나하공항에 도착해 아내는 카미야와 헤어진 뒤 친구 3명과 함게 이시가키섬에 놀러갔다.
12시 53분, 친구들과 이시카키섬에 도착하여 택시를 탔는데 아내가 이상하게 땀을 엄청나게 흘렸다. 오후 1시 27분, 호텔에서 체크인한 뒤 방에 들어가는데 구토를 호소하며 경련을 일으켰다. 병원으로 옮겨져 조치를 받았으나 결국 오후 3시 4분에 숨을 거두었다.
친구들은 형사를 통해 부검을 의뢰하였다. 부검은 류큐대학 오노 요키치 교수가 집도하였는데, 심장에서 작은 울혈이 발견되었으나 장기들은 비교적으로 깨끗했다. 사망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자 오노 교수는 사인이 이상함을 직감했다. 또한 남편 카미야와 만난 날에 남편이 너무 침착하게 행동하여 의심이 더욱 짙어졌다. 카미야는 오노 교수에게 '''"장기는 모두 제자리에 갖다 놓았냐"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였다.''' 오노 교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심장과 혈액을 보존하였다.

2.2. 카미야 치카라와 그의 아내


범인 카미야 치카라는 6개월 전 술집 종업원이었던 아내를 만나 자신을 공인회계사라고 소개하였으며 모피 코트와 4백만 엔짜리 반지를 선물하였다.
카미야는 만난 지 6일만에 청혼을 했고, 아내는 친구들에게 카미야를 소개했다. 친구들은 카미야를 의심하여, 카미야 치카라가 자기소개와 달리 공인회계사가 아님을 알아낸다. 하지만 카미야는 아내 친구들에게 추궁받자 경영 컨설턴트로 중소기업의 회계 관리를 한다고 답변하며 의심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카미야가 당시 신고 있던 낡고 해진 구두를 보고 고가의 선물을 주었던 행동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 뒤 아내는 술집을 그만두고 오사카에서 혼인신고서를 제출한다. 카미야는 그 뒤 아내의 친구들에게 이시가키섬에 놀러가달라고 부탁하고, 오키나와에서 오전 11시 40분에 아내와 친구들 일행과 헤어진다.

2.3. 사건의 파장


하지만 1시간 40분 동안 효과가 나오는 독극물이 증명되지 않았고 아내의 친구들은 카미야를 더 의심하였다. 그 이유는 아내가 생전에 자주 먹었던 약 때문이었다. 카미야와 결혼 후부터 아내는 카미야가 제조한 영양제를 먹었는데 친구들은 그 부분을 의심한 것이다.
카미야는 친구들에게 캡슐의 사용 내역을 말한 뒤 '''아내를 수령인으로 하여 약 2억 엔짜리 보험을 들었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의심을 견딜 수 없어 경찰, 신문사에 전화하여 조사를 의뢰하였지만 제대로 조사해주는 곳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일간스포츠 오다기리 기자와 FOCUS 편집부 기자 츠지야 마모루 기자가 사건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하여 취재 전쟁이 시작되고 류큐대학에는 츠지야 기자가 방문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1965년 카미야는 간호사인 첫 번째 부인과 만나 결혼한 채로 7년 뒤 직장 상사인 2번째 부인을 만나 회사를 옮겨 경리부부장이 되었고, 이중 생활 10년 뒤 '''첫 번째 아내는 가슴의 통증 및 구토를 호소, 결국 1981년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으나, 남편이 받을 보험금은 없었다고 한다. 이후 2번째 부인 역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며칠 뒤 오노 교수에게 오다기리 기자가 방문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1985년 약국에서 캡슐형 강장제[1]를 다량 구매하면서 아버지가 노망이 들어 의사인 양 주민들에게 나눠준다고 거짓말했다. 실제로 그의 아버지는 같이 살지도 않고 노망이 나지도 않았다고 하였다.
한편 아내의 친구들은 보험회사에 닥치는 대로 전화해 보험 이력을 조사를 의뢰했고, 이에 보험회사 4곳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렇게 밝혀진 보험금은 무려 '''1억 8500만 엔으로, 매달 붓는 보험금이 36만 엔'''이었다. 두 기자는 신문 1면에 이 내용을 대문짝만하게 실었고 오노 교수는 자신이 모은 자료를 경찰에게 넘겼으며 사망진단서의 사인을 심근경색에서 급성 신부전으로 고쳤다.
경찰은 비밀리에 수사 회의를 열어 카미야가 아내를 어떻게 죽였는지 조사하였다. 원인이 되는 독극물을 찾아내지 못하여 치바대학에 조사를 의뢰하지만, 캡슐을 30겹을 해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보험회사는 사건이 의심쩍다는 이유로 카미야에게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였다. 그러자 카미야는 자기가 쓴 수기문을 기자들에게 나눠주며 반론하였다.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를 않자 결국 언론의 보도는 사그라들었다. 그러자 카미야는 보험회사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내었고, 취직하여 역시 경리부장의 자리에 올랐다.

2.4. 결정적인 증거가 잡히다


오노 교수는 경찰의 의뢰를 받아 전문가들이랑 사인을 조사하였다. 한동안 수확이 없었으나, 오노 교수가 영문 백과사전에서 사건의 증상과 투구꽃 섭취 시의 증상이 일치함을 알아낸다. 오노 교수는 당시 초미량 분석기가 있는 도호쿠대학교 미즈가키 교수에게 검사를 의뢰하였다.
한편 카미야는 유흥에 빠져 애인 3명을 사귀었으며 애인들에게 차, 맨션을 선물하였다. 그리고 9개월 뒤 투구꽃이 검출되었다. 1990년 10월 보험금 민사소송에 오노 교수의 증언으로 사건은 다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경찰이 투구꽃의 출처를 조사하자 한 원예용품점에서 투구꽃 화분 62그루를 구매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약효가 1시간 40분이나 뒤에 나왔다는 문제를 풀지 못하였다. 경찰은 카미야가 한 아파트에 방을 빌렸을 때 전기세와 수도세가 비정상적으로 나왔음을 알아내었다. 그 아파트 다다미를 검사한 결과 미량으로 독이 발견되었다. 한편 경찰은 카미야를 조사하던 중 카미야가 경리부장이라는 자리를 악용하여 7억 엔에 달하는 회사 주식을 멋대로 팔아넘긴 사실을 밝혀내고, 긴급 체포하여 횡령죄로 기소하였다. 그 뒤 경찰은 카미야를 살인 및 사기미수죄로 또다시 기소하였지만 아직 1시간 40분의 공백이 채워지지 않았다. 카미야는 직접 방송에 나와 이 공백 시간을 근거로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할 정도로 당당했다.
하지만 한 어민이 카미야가 복어를 다량으로 구매했음을 제보하였다. 경찰은 복어와 투구꽃이 길항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카미야는 아파트에서 실험을 반복하여 아내에게 줄 독약을 제조하고, 전문가가 소지할 수 있는 기계를 구입하며 몇 년 동안 범행을 계획하였다.

2.5. 결말


첫 번째, 두 번째 부인의 사망은 기소되지 않았다. 세 번째 부인의 독살 혐의로 카미야는 1, 2심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02년에는 한국의 대법원격인 최고재판소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한편 오노 요키치 교수는 도쿄대학에서 법의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2012년 11월 17일 카미야 치카라는 암으로 의료형무소에서 73세 나이로 사망한다.

3. 기타


마스터 키튼에서 이 투구꽃 살인사건에서 모티브를 딴 거로 보이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어떤 대기업의 몇몇 임원들이 몇년간 급사한 것이 알고 보니 투구꽃에서 추출한 독 때문이었다는 내용. 이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중간에 키튼 본인이 이 투구꽃 사건을 언급하기도 한다.

[1] 캡슐에 약을 넣어서 마시는 제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