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리코 마르케티
1. 개요
SS 라치오에서 전성기를 보낸 골키퍼로, 현 소속팀은 제노아 CFC이다. 동물적인 반사신경과 선방, 공격수와 1대1 상황에서의 탁월한 대처 능력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집중력이 뛰어나 좀처럼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긴 머리스타일을 고수해 라치오 시절에는 타잔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었다.
2. 클럽
토리노의 유스 출신으로, 베르첼리 임대 시절이던 2002년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데뷔 시즌부터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가능성을 보인 뒤 3부리그의 크로토네와 트레비소에 연달아 임대되었으나 이번에는 단 한경기도 나서지 못하며 성장이 정체된다. 04/05 시즌에는 토리노로 복귀해 서드 키퍼로 자리했으며, 교체로 리그 한경기에 나서기도 했으나 구단은 그에게 별다른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 잔여 시즌 다시 베르첼리로 임대를 보낸 뒤 시즌이 끝나자 방출한다.
05/06 시즌 비엘레세를 거쳐 2006년 알비노레페로 이적한 마르케티는 이듬해부터 주전으로 기용되며 발전을 거듭했고, 07/08 시즌 팀을 승격 플레이오프까지 이끌며 세리에 B 최우수 골키퍼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2008년 7월, 한창 주가가 치솟은 그를 영입하기 위해 수많은 세리에 A 팀들이 달려들었고, 결국 칼리아리가 경쟁에서 승리한다. 마르케티는 칼리아리에서 세시즌 동안 68경기에 나섰으며, 2010 FIFA 월드컵에 차출되기도 했다.
2011년 7월, 갈라타사라이로 떠난 주전 골키퍼 페르난도 무슬레라의 대체자를 찾던 SS 라치오가 그에게 눈독을 들였고, 바이아웃을 지불하며 영입에 성공한다. 한편 칼리아리에서의 마지막 시즌 구단과 마찰을 빚었던 마르케티는 이적 직후 "악몽이 끝났다"는 발언을 하며 칼리아리 팬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라치오에서 마르케티는 팀의 간판 스타이자 세리에를 대표하는 수문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번번이 선방쇼를 선보여 첫 두시즌 모두 유로파리그 진출의 주역이 되었으며, 12/13 시즌에는 팀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즌 말미에 치른 로마 더비에서는 미친듯한 활약으로 1-0 승리를 지켜내며 한동안 외면받아왔던 국가대표팀에도 다시 승선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부동의 주전으로서 라치오의 골문을 지켰으나 16/17 시즌부터 토마스 스트라코샤에 밀리기 시작했고, 17/18 시즌에는 아예 한경기도 나서지 못하다 2018년 6월 자유계약으로 제노아에 이적했다. 제노아에서도 인테르에서 임대된 이오너트 라두에 밀려 서브 키퍼로 출장 중이다.
3. 국가대표
프란체스코 톨도와 안젤로 페루치 이후 살바토레 시리구와 함께 부폰의 백업으로 가장 많이 이름을 올린 골키퍼. 20대 중반부터 동세대 이탈리아 최고의 골키퍼로 올라섰고, 잔루이지 부폰의 유력한 후계자로 평가되었으나 결국 여느 이탈리아 골키퍼들과 마찬가지로 대표팀에서 많은 기회를 받지 못한 채 은퇴해야했다.
칼리아리에서 한창 날아다니던 2009년 5월 처음으로 대표팀에 소집돼 북아일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선발 출장하며 데뷔전을 치렀고, 이후에도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꾸준한 활약을 이어가며 2010 월드컵 명단에 발탁되는 영예를 누린다. 심지어 파라과이와의 F조 개막전에서 부폰이 부상으로 빠지자 교체로 투입되어 월드컵 본선 무대까지 밟아보았으며, 이어진 뉴질랜드전과 슬로바키아전에도 모두 출전했으나 굉장히 부진한 활약으로 이탈리아가 광탈하자 욕만 배터지게 얻어먹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대표팀에는 소집되었으나 그 부폰이 버티고 있는 탓에 경기 출전 수는 굉장히 적었다. 서브 키퍼였던 시리구가 통산 18경기에 그쳤고, 나이는 좀 많지만 동시기 대표팀에 자주 뽑혔던 모르간 데 산치스는 6경기밖에 못뛰었으니 서드 키퍼 위치에 있던 마르케티 역시 많은 기회를 받기는 어려웠다. 2012년에는 라치오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었음에도 시리구와 데 산치스에 밀려 유로 2012 명단에서 탈락했고, 2013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는 데 산치스 대신 합류에 성공했으나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다. 유로 2016 명단에도 포함되었으나 이번에도 출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8강에서의 탈락과 콘테의 사임 이후 더이상 대표팀에 부름받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