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양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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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때에 다시 세운 풍양궁 구궐유지비와 풍양궁 터

1. 개요


'''豐壤宮'''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에 있었던 조선초기 태종 원년에 건립한 이궁이자 행궁.

2. 상세


태종은 세종에게 선위한 후 자신이 머물기 위하여 풍양궁을 건설하였다. 풍양궁을 건설하던 중 태종은 포천과 풍양이 모두 동쪽에 있어서 서쪽에는 피방할 궁이 없으니 무악(毋嶽)에도 이궁을 건설하라고 지시했다. 무악의 이궁은 후에 연희궁이라고 했다. 이로써 피방할 곳으로 남쪽에는 한강변애 있는 낙천정, 동쪽에는 풍양궁을 짓고 서쪽에는 무악에 궁을 지어 때에 따라 옮겨가면서 액운을 피하고자 하였다. 이후 태종은 낙천정풍양궁을 오가며 거처했고, 무악 남쪽에 있었던 연희궁에서 머문 경우는 드물었다.

2.1.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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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수각과 옥류천의 수각. 풍양궁의 수각도 위의 수각들과 비슷한 형태였을 것이다.
풍양궁에는 일반 이궁에서 찿아보기 힘든 수각이 마련되어 있었다. 태종은 이궁 서편에서 물을 끌어 연못을 만들고 돌로 축대를 쌓아 그 가운데에 정자를 짓도록 지시하였는데, 이곳이 풍양궁에서 가장 청아하고 상쾌한 곳이었다고 기록으로 전하고 있다.

3. 관련사건 및 정보


숙종실록 30권, 숙종 22년 1월 15일 임신 2번째기사. 명혜공주방의 궁임·무녀가 신사하니 이를 벌하도록 하다

"어제 수십의 인마(人馬)가 길에 잇닿은 것을 보고 물었더니, ‘명혜공주방의 궁인이 대내의 분부를 받아서, 소를 잡고 제수를 장만하여 '''풍양궁 터에서 이틀 동안 신사(神祀)를 베풀고 파하였는데,''' 그 비용이 지극히 풍성하고 사치하였다.’ 합니다. 이렇게 주검이 길게 가득한 때에 천백 사람의 여러 날 양식이 될 만한 것을, 마침내 요사한 무당의 주머니로 돌아가게 하니, 원근(遠近)에서 지켜보고 탄식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대저 소를 잡아 신사하는 것은 모두 나라에서 금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궁인을 시켜 범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나, 이것은 전하께서 모르시는 것인데 혹 궁노(宮奴)들이 사사로이 가탁(假托)한 것입니까? 또 광릉(光陵)의 침원(寢園)이 멀지 않은 곳에 따로 한 상탁(床卓)을 베풀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곳에 견주어 방울을 흔들고 북을 쳐서 설만(褻慢)하고도 무엄하였으니, 하늘에 계신 선왕(先王)의 영(靈)을 욕되게 하고, 전하께서 선조를 받드는 덕에 누를 끼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궁임(宮任)·무녀(巫女)를 가두어 중률(重律)로 다스리도록 명하셔서, 듣기에 놀랍고 의혹되는 것을 풀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