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란디니
Francesco Landini 또는 Landino
(1325 또는 1335 – 1397)
1. 개요
중세 이탈리아의 작곡가. 프랑스의 기욤 드 마쇼와 더불어 14세기 유럽의 가장 중요한 음악가이며 세속음악, 특히 발라타(ballata) 양식의 대가로 잘 알려져 있다. 마쇼가 프랑스의 신음악 운동인 아르스 노바(Ars Nova)의 대표주자였다면 란디니는 이탈리아의 아르스 노바라고 할 수 있는 트렌센토(Trencento)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란디니에 의해 이탈리아 음악은 프랑스와 북유럽에서 발전한 다성양식(polyphony)과 다른 화성적인 음악양식(homophony)을 구축하였다.
오늘날에는 작곡가로서만 유명하지만 그는 작곡 이외에도 당대의 유명한 시인이자 철학자, 가수, 악기 연주자,[1] 악기 제작자로서 다방면에 능력을 발휘한 인물이었다. 심지어 그는 피렌체의 현안에도 깊이 개입해 있던 정치인이기도 했다.
2. 생애
오늘날 알려진 그의 생애는 당대의 연대기 작가였던 필리포 빌라니(Filippo Villani)가 1385년에 출판한 피렌체의 유명인사들의 인명사전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이 인명사전에 실려 있는 란디니에 대한 기록은 상당수가 그 진위를 의심받고 있는데, 특히 그의 성이 란디니가 맞는지에 대해 논란이 많다. 현재는 이런저런 이유로 그가 란디니 가문 출신이 아니라는 의견이 대세이다. 이 경우 그의 성으로 알려진 란디니는 잘못 붙여진 것이며, 그의 아버지로 알려진 화가 야코포 델 카센티노(Jacopo del Casentino, 본명은 Jacopo Landino)도 실제로는 그의 생부가 아니게 된다.
그래서 많은 연구자들은 '프란체스코 란디니' 라는 이름 대신 '피렌체의 프란체스코(Francesco da Firenze)'와 같은 이름을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으나 이미 란디니라는 이름이 너무 익숙해진 관계로 아직까지는 계속 사용되고 있다. 한편 그의 출생년도도 빌라니의 인명사전에 기록되어 있는 1325년이 아니라 좀 더 나중에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저런 논란이 있긴 하지만 대략적으로 란디니는 1325~1335년경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나이에 천연두를 앓아서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일찌감치 예술쪽에 재능을 발휘하여 이미 20대 초반인 1350대에 피렌체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대시인 페트라르카와도 교류했으며 피렌체에서 시와 음악, 철학, 노래, 음악 연주 등등 다방면에 이름을 날렸다. 빌라니에 따르면 란디니는 1360년대에 베니스에 머무르고 있던 키프로스 왕 페테르 1세로부터 월계관을 받아 계관시인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이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불확시하지만 그가 1360~1370년대에 베니스에 일정기간 머물렀던 것은 거의 확실하다. 당시 베니스 총독이었던 안드레아 콘타리니(Andrea Contarini)에게 모테트를 바쳤다는 기록이 있으며[2] 1370년대 쯤에는 북이탈리아에서도 란디니의 이름이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란디니는 1361년에 피렌체의 산타 트리니타 수도원(Monastery of Santa Trinità)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고, 1365년에는 피렌체의 산 로렌초 교회(San Lorenzo church)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피렌체의 정치와 종교 문제에도 깊이 개입하여 이런저런 논쟁을 벌였는데, 일종의 애국시민(?)이었던 란디니는 나름 정권의 비호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 1379년과 1387년에 각각 산티시마 안눈시아타 성당(Santissima Annunziata Cathedral)과 피렌체 성당의 오르간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피렌체의 유명인사였던 팔방미인 란디니는 1397년 사망했으며, 오르가니스트로 재직했던 산 로렌초 교회에 안장되었다. 한동안 그의 묘비가 사라졌다가 19세기에 다시 발견되기도 했다.
3. 란디니의 음악
전술했다시피 란디니는 이탈리아의 아르스 노바인 '트렌센토'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였다. 현재 그의 작품은 모두 15세기에 피렌체 일대에서 작곡된 음악을 수집한 악보집 스콰르치알루피 코덱스(Squarcialupi Codex)에 실려 있으며 모두 세속음악이다.[3]
이 악보집에 수록된 그의 작품 중에는 압도적으로 발라타가 많은데 89개의 2성 발라타와 42개의 3성 발라타, 9개의 2성/3성 발라타[4] 가 수록되어 있다. 기타 10여곡의 마드리갈(madrigal)[5] 과 1곡의 비를레가 있다.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작품을 남겼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음악만으로도 14세기 이탈리아의 음악 본좌가 되기에는 충분한 수준.
란디니의 음악은 한마디로 '화성적(homophonic)'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물론 란디니가 사용한 화성은 오늘날의 화성체계와는 많이 다른데, 란디니는 맨 위 성부를 주선율로 놓고 다른 성부들이 이 맨 위 성부를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6] 주 선율은 성악에 알맞게 음절적인 음표 배치와 명확한 선율선 및 다양한 장식음을 갖고 있으며, 보조 성부들은 좀더 단순한 선율선을 갖고 있다. 이 보조성부들은 기악으로 연주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주로 기악으로 연주한다.
3.1. 란디니 종지(Landini Cadence)
란디니 음악에서 특기할 것은 14세기 음악에 많이 사용되었던 란디니 종지법이다. 사실 이 란디니 종지법은 란디니가 처음 고안한 것이 아니고 란디니만 사용했던 것도 아니지만 14세기의 종지법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당대의 가장 유명한 음악가의 이름을 붙여 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image]
이 란디니 종지는 곡이 끝나기 전 으뜸음에서 장 7도에 위치한 음이 등장하고 이어 6도로 하강한 후에 2도 상승하여 으뜸음으로 끝을 맺는 방법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곡의 마지막을 시 - 라 - (높은)도 로 끝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위의 악보에도 이런 종지형태가 나타나고 있다(아래 성부는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백문이불여일청, 다음 곡에서 란디니 종지를 직접 들어보자. 란디니의 발라타 'Non avrà ma' pietà Partitura Interpretación'이다.
악보의 맨윗 성부를 보자. 맨 마지막 부분이 F# - E- G 음으로 끝나는데, 으뜸음을 G로 놓으면 F#과 E는 으뜸음으로부터 각각 장 7도와 장 6도의 관계에 있다. 즉 이 세 음은 G장조에서 시-라-(높은)도에 해당되며 이게 바로 란디니 종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