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시카

 




'''Corse'''
코르시카
[image]
정부 로고
[image]
깃발
[image]
국가
프랑스 [image]
면적
8,722㎢
중심도시
아작시오
인구
327,283명
인구밀도
38명/㎢
시간대
UTC+1
홈페이지
#

[image]
[image]
1. 개요
2. 행정
3. 지리
4. 역사
5. 정치
5.1. 분리주의
6. 행정 구역
7. 문화
8. 기타


1. 개요


지중해에 위치한 프랑스령 섬으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 해협(보니파시오 해협) 건너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이 있다. 면적은 8,681㎢으로 지중해에서는 네번째로 큰 섬이다.[1]
한편 이 섬을 위주로 구성된 프랑스의 레지옹을 이르기도 한다. 2018년 영토 집합체로 변경되었으나 여전히 레지옹과 지위는 동등하다.
'코르시카'(Corsica)라는 이름은 지역 토착어인 코르시카어이탈리아어 이름이다. 프랑스어 이름은 '코르스'(Corse).

2. 행정


코르시카 섬 전체를 관할하는 레지옹인 코르시카는 법률에 따라 "영토 집합체"(Collectivité territoriale)라는 공식 명칭을 사용하며 타 레지옹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자치가 허용되어 있다. 오트코르스 주와 코르스뒤쉬드 주를 관할하며, 중심도시는 코르스뒤쉬드 주에 속한 아작시오이다.

3. 지리


대부분의 지형은 험지이나, 그 중 3분의 2는 산지라 목축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고온건조한 여름과 온난습윤한 겨울의 특성을 갖는 지중해성 기후, 산, 빼어난 해안을 바탕으로 관광업도 성한 편이다.
산악지대가 많고 척박한 편이라 이 동네 사람들은 예로부터 유럽 본토에서는 가난한 촌뜨기 취급을 당했다.

4. 역사


현재는 프랑스 영토이지만 이전부터 반달인, 동로마 제국, 롬바르드인, 로마 교황령, 제노바, 심지어 영국까지 이 섬을 영토로 삼은 바 있는 이른바 파란의 땅이다.
지리적으로는 프랑스보다 이탈리아에 더 가까워 이탈리아 쪽의 영향을 더 받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더 거리가 멀리 떨어진 사르데냐 섬이 이탈리아령인데 반해 코르시카 섬은 프랑스령이다.
1767년까지 제노바 공화국의 영토였다가 지속적인 반란 때문에 학을 떼고 프랑스에 팔아버린 게 코르시카 섬이 프랑스령이 된 이유이다. 단순한 반란도 아니고 아예 코르시카 공화국이라는 국가를 건설하려 하였다.[2] 당연하게도 프랑스 지배하에서도 반란이 빈발하였고,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도 많았다. 코르시카 공화국은 프랑스에 의해 망했지만, 지도자 파스콸레 파올리그레이트브리튼 왕국(영국)에 망명했다가 영국군을 끌어들여 한 때 앵글로 코르시카 왕국을 세우기도 했었다. 다만 오래가진 못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출생지로 유명하다. 사실 그의 본명도 이탈리아식인 나폴레오네 부오나파르테였다. 그의 아버지는 샤를 보나파르트[3]로 코르시카 독립투사였던 파울리의 부관 자격으로 독립투쟁을 하며 프랑스군을 상대로 보르고에서 승리를 하기도 하지만 프랑스 본국에서 파견된 지원군에게 격파당했다. 다행히 프랑스인들이 독립투쟁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 무사히 나폴레옹이 태어날 수 있었다. 패배를 겪고 나서 독립 투쟁에 희망이 없다는 걸 알아버린건지 코르시카 총독이었던 마르뵈프에게 바로 붙어버렸는데, 마르뵈프도 코르시카의 주요 귀족이었던 보나파르트 가문이 자신을 위해 일해준다는 것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둘의 우호적 관계는 향후 나폴레옹의 군사학교 진학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하여 군사학교에 진학한 나폴레옹은 유럽을 뒤흔드는 거물이 되어 세계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되었다.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권력자가 되었을 때, 그의 고향인 여기 코르시카 출신들을 대거 불러들여 중용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그의 육촌 필리프 앙투안 도르나노와 오라이스 프랑수아 바스티앵 세바스티아니, 나폴레옹의 주치의로 활동한 프랑수아 샤를 안톰마르키(Francois Charles Antommarchi), 샤를 앙드레 포초 디 보르고(Charles-Andre Pozzo di Borgo), 매형[4] 펠릭스 파스칼 박치오키(Felix Pascal Bacciochi) 등이 나폴레옹 치세 당시 굵직굵직한 자리 하나씩을 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한때 심심하면 독립하겠다고 깽판치던 이 동네가 완전한 프랑스의 강역이 되었다. 프랑스에서 인기 높은 사람의 고향이며,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하고, 무엇보다 코르시카 섬 사람들의 입장에서도 자기네 출신인 보나파르트 가문이 프랑스의 황가까지 되었으니 프랑스에 동화되는 것에 큰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1942년 이탈리아 왕국비시 프랑스의 코르시카 섬을 점령하면서 1년 동안 이탈리아 치하에 들어가지만 이탈리아가 항복하며 철수한다.

5. 정치



북부는 좌파, 남부는 우파 성향이 강한 프랑스 정치 특성상 오랜 기간동안 공화당의 텃밭이었다. 그러나 2017년 총선에서 공화당의 몰락으로 인해 코르시카의 3개 선거구중 코르스 뒤 쉬드 제1구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구를 모두 코르시카 지역주의 정당인 코르시카를 위해에 빼앗기고 말았다.

5.1. 분리주의


오늘날에도 프랑스에 대해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아서 2002년 12월 7일에는 코르시카 민족당이라는 정당이 탄생했으며 코르시카 민족해방전선(Fronte di Liberazione Naziunale di a Corsica)이라는 무장단체까지 존재한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 다시 프랑스로 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늘고있고 지방선거에서 분리독립파 세력들이 승리하는등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2018년 2월 7일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코르시카를 방문하면서 헌법에서 코르시카의 특별함을 인정하는 방안을 논의할 준비가 되었다고 발언하면서 코르시카의 특별지위를 인정했지만, 동시에 자치권 확대에 대해선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6. 행정 구역


2018년에 영토 집합체로 변경되면서 프랑스의 다른 레지옹과는 달리 여러 개의 데파르트망을 두지 않는다. 코르시카는 레지옹이자 데파르트망이다.
2018년 이전 코르시카에는 2개의 데파르트망이 설정되어 있었다.
[image]
  • 오트코르스
  • 코르스뒤쉬드

7. 문화


이탈리아 중세 토스카나 방언 계열의 코르시카어가 토착어로 예로부터 널리 쓰였으나 프랑스 편입 이후 지방 언어들을 하도 때려잡는 통에[5] 오늘날에는 프랑스어가 일반적으로 통용되며, 코르시카어를 모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급감했다.
원래 이탈리아어를 썼던 제노바의 영토였기 때문에 이름은 프랑스식이지만, 성은 주민 대부분이 이탈리아식 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의 육촌[6]인 필리프 앙투안 도르나노(Philippe Antoine d'Ornano)는 코르시카의 아작시오 출신이며 곧 나폴레옹과 고향이 같다. 그의 이름을 보면 주석에서도 볼 수 있듯이 그의 아버지가 오르나노(Ornano)라는 이탈리아식 성을 가져서 이탈리아 사람이고, 이름도 마찬가지로 영어 루이스 앤소니(Louis Anthony)의 이탈리아식 변형인 로도비코 안토니오(Lodovico Antonio)여서 완전한 이탈리아 사람이지만, 그의 아들 필리포 안토니오 오르나노(Filippo Antonio Ornano, 도르나노의 원래 이름인 이탈리아식 이름이다)가 자라면서 코르시카가 프랑스의 영토가 되었고 결국 이름을 프랑스식인 필리프 앙투안으로 바꾸게 된다. 그러나 성은 단지 오르나노(Ornano)에 영어의 전치사 'of'에 해당하는 'd'(de)를 붙여 귀족풍을 띠는 성 '도르나노(d'Ornano)'로, 성은 유지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외에도 같은 코르시카 출신이자 나폴레옹의 충직한 수하 장군이었던 오라스 프랑수아 바스티앵 세바스티아니 드 라 포르타(Horace Francois Bastien Sebastiani[7] de La Porta)의 이름은 원래 이탈리아식 이름인 오라치오 프란체스코 바스티아노(Orazio Francesco Bastiano)[8] 였고 성도 이탈리아식인 세바스티아니였다. 그러나 코르시카가 프랑스 영토가 되고 오라치오가 프랑스 군대에 입대함으로써 그도 그의 이탈리아식 이름은 프랑스식으로 고치고 성은 그대로 놓아두었다. 이렇게 당시 코르시카의 주민들은 이름은 프랑스식으로 고친 채 성은 그대로 유지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후손들인 현재 코르시카에 살고 있는 토착민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식 성을 가지는 것이다.

8. 기타


이 지방 마피아는 특유의 단결력과 끈질김으로 악명이 높다. '유니온 코르스'라고 불리며, 2차 대전 때는 나치에 대항해 드골파와 손잡고 싸웠기 때문에 드골 정권 하에서 정치깡패 역할을 하며 비호를 받아 세력이 커졌다.[9]
해적을 뜻하는 단어 corsair의 어원이 되기도 하였다.
이 섬의 스포츠 클럽으로는 축구 클럽들인 SC 바스티아(바스티아 연고), AC 아작시오, 가젤렉 아작시오(아작시오 연고) 등이 있다.
남쪽에 사르데냐 섬이 있다. 원래 같은 문화권이었고, 지금도 보니파시오 해협 사이로 마주본 곳이라 교류가 많은 편이다. 다만 해협은 항해가 어려울 정도로 암초가 많다.
[1] 시칠리아-사르데냐-키프로스-코르시카-크레타[2] 그보다 20년 전 쯤인 1736년에는 코르시카인들이 테오도르 슈테판 프라이허 폰 노이호프(Theodor Stephan Freiherr von Neuhoff), 훗날 '코르시카의 테오도르'라고 불리게 되는 독일인 모험가를 국왕으로 추대하여 코르시카 왕국을 선포했었다가 그 해에 망했다.[3] 이탈리아어 이름은 카를로 부오나파르테(Carlo Buonaparte).[4] 동생 엘리자(Elisa Bonaparte)와 결혼했다.[5] 자세한 건 프랑스의 지방 언어 문제 참고.[6] 나폴레옹의 할아버지 주세페 부오나파르테(Giuseppe Buonaparte)의 동생의 딸 이사벨라 부오나파르테(Isabella Buonaparte)가 도르나노의 아버지인 로도비코 안토니오 오르나노(Lodovico Antonio Ornano)와 결혼해 낳은 자식이 도르나노이다. 곧 나폴레옹의 당고모(堂姑母)가 도르나노의 어머니인 셈이다. 덧붙여서 도르나노의 외할아버지가 되는 주세페의 동생의 이름은 나폴레옹의 원래 이름인 나폴레오네(이름이 Napoleone Buonaparte)와 같아서 나폴레옹과 그의 작은 할아버지는 동명이인이 된다. 필리프는 아들 한 명을 두었는데 그의 이름은 로돌프(Rodolphe)였고, 그는 여러 명의 자식을 두어 지금 그의 후손들이 프랑스에 많이 살고 있다. 그 후손들 중 한 사람인 기욤 도르나노(Guillaume d'Ornano) 씨는 프랑스의 유명한 미용 회사 랑콤(Lancome)을 세우는 데 기여하였고, 그의 아들인 위베르 도르나노(Hubert d'Ornano) 씨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미용용품, 화장품 등을 개발 및 생산하는 시슬리 파리(Sisley Paris)라는 회사를 세웠는데,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아 돈을 꽤 잘 번다고 한다. 식물에서 채취한 천연 물질로 친환경적 화장품을 만드는 다량의 기술을 보유 중인 회사. 백화점 화장품 중 최고가 라인 중 하나로 인식되며,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다. 2015년 9월에 위베르 도르나노 씨가 89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7] 보통 이탈리아의 성 중 '이탈리아식 이름의 뒤에 '-i'가 붙은 형태'는 해당 이탈리아식 이름을 가진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이 세바스티아니라는 사람은 이 성을 가지게 된 최초의 조상의 아버지의 이름이 바로 세바스티아노(Sebastiano)라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는 이탈리아 이름 거의 전체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안토니오(Antonio)의 아들의 후손들은 '안토니(Antoni)', '안토니니(Antonini)'라는 성을 쓰는 것이고, 파올로(Paolo)의 아들의 후손들은 '파올리(Paoli)'라는 성을, 레오나르도(Leonardo)의 아들의 후손들은 '레오나르디(Leonardi)'라는 성을 쓰는 것이다.[8] 위의 로도비코 안토니오의 예 처럼 영어식으로는 호레이스 프랜시스 배스티언(Horace Fransis Bastian)이 될 것이다.[9]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예언자(영화)에서 주인공이 갇힌 감옥을 지배하는 조직이 코르시카계 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