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투스

 


1. Habitus, 사회학의 개념
1.1. 개요
1.2. 사례
1.3. 기타
2. Avitus, 서로마 제국의 황제
3. Avitus, 워해머의 등장인물


1. Habitus, 사회학의 개념


하지만 상류층 행세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계급 구분이라는 것은 아주 잔인한 메커니즘이다. 졸부는 아무리 많은 돈을 벌게 된다 하더라도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무산 계급의 촌티를 쉽사리 벗어버릴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생선용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할 줄도 모르며, 자기의 페라리 뒷유리창에 원숭이 인형을 매달아둘 것이고, 전용 제트기의 계기판에는 성 크리스토포로의 조각상을 올려 놓을 것이다[1]

. 또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하면서 <매니지먼트> 같은 영어 단어를 서툰 발음으로 섞어 쓸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게르망트 공작부인[2]같은 고상한 사람들에게서는 절대로 초대를 받지 못한다(그는 다리만큼이나 긴 요트를 가지고 있는 자기 같은 사람이 왜 초대를 받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면 속이 끓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中,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방법'[3]

개인의 취향은 배경과 환경, 가치관, 분위기, 혹은 종교, 사상, 권력이나 계층과 같은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야기 혹은 그런 것을 모두 포괄하는 용어. 이것이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고, 짧게는 20~30년, 심하면 수세대간 내려온 경험과 문화가 축적된 것'''이라서 하루아침에 쉽게 바뀌거나 극복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개인의 버릇, 습관 역시 쉽게 고치기 힘든데, 장기간의 경험과 문화가 축적되고 쌓인 것이라면 쉽게 바꾸거나, 쉽게 극복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만든 개념. 원어는 'Habitus'인데, 프랑스어 발음대로 읽으면 'u'가 전설 원순 고모음 /y/으로 발음되어 '아비튀스'에 가깝지만, 외래어 표기가 복잡해져서 라틴어식 표기인 '하비투스'와 짬뽕이 되어 무슨 언어의 어휘인지도 모를 어정쩡한 표기가 되어버렸다.[4] 마치 덩케르크처럼. 한국에서는 보통 '아비투스'라고 하며, 영어 발음은 '해비터스'에 가깝다. 습관을 의미하는 habit과 같은 어원임을 알 수 있다.

1.1. 개요



'''개인의 습관''' 정도로 이해하면 편하다. 홍성민이 쓴 책인 '취향의 정치학'에서는 아비투스를 '습관'으로 썼는데 '아비투스'의 본 의미를 아주 대체해 주지 못하나 어느 정도는 납득되는 번역이다. 아비투스는 뇌 속에 구조화되어 있는 성향체계를 말하는데 우리가 특정 행동에 대해 취하는 특정 제스처나 무언가를 다른 것에 비해 선호하는 경향도 이에 속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이것에 의해 사회 이동이 한계에 부딪힌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아비투스는 사회적 관습도 포함하는데 이것은 계층마다 다르다. 그래서 똑같은 개인이 상류층에 진입하려고 해도 상류층 출신은 아비투스를 공유하고 있어 의사소통이 원활한 반면 하층의 경우 아비투스가 달라 의사소통이 어렵고 그로 인해 상류층 진입이 어려워진다. 예를 들어 하층 계급은 수백만 원 들여가며 해외여행을 가는 경우가 거의 없고, 따라서 하층 계급끼리 초면에 해외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상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중•상류층에게는 해외여행을 가는 것이 흔하므로 초면에 해외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사교적인 행동으로 여겨진다.
하류층 특유의 거친 행동이나 말투는 하류사회에서는 생존에 필수적인 기제로 작동되지만 중류, 상류사회에서는 그런 것을 하면 몰상식하거나 천박하다며 배척당한다.
그러므로 하류층 출신이 고시 합격 등으로 중산층이나 상류층에 편입하였어도 자신의 아비투스를 중산층 내지 상류층의 아비투스로 바꾸지 못하면 그 그룹에서 소외되거나[5] 심지어 낙오되기도 한다. 자수성가한 개천용의 부인이 중•상류층 여성 사교모임이나 모임에 끼이지 못하는 일이 종종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런 현상 때문이다.
이러한 아비투스는 엘리트를 충원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적용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엘리트 충원은 극소수 특권층을 위한 작은 문(petite porte)과 대중을 위한 큰 문(grande porte)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후자는 객관식 시험과 같은 정량평가 방식을 이용하는 반면 전자는 상류층의 아비투스를 통한 정성평가 방식이 애용된다는 것이다. 각종 면접, 추천서 등을 통한 채용 또는 입학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로 치면 전자는 수시 특별전형 내지 학생부종합전형, 후자는 정시 전형에 해당한다. 대기업 채용에서는 전자는 수시채용, 후자는 정기공채에 해당한다. 행정학 용어으로는 각각 엽관주의능력주의에 해당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학교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는데 '''상징 폭력'''이 대표적 사례다. 학교에서 보통 교사들은 중산층이고 따라서 중산층의 아비투스를 가지고 있다. 또한 학교의 교육과정 역시 중산층의 아비투스에 부합하게 만들어진 편이다. 그래서 중산층, 상류층과 달리 그들의 아비투스를 공유하지 않은 하층은 학습에서 불이익을 보게 되고, 경쟁에서 불리해진다.
부르디외는 안정된 사회일수록 계층이 고정되는 이유가 이것이라고 보았다. 속칭 '교양'이라는 것도 부유층과 일부 상위 중산층에 한정된 아비투스로 볼 수 있다. 이것을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어느 정도 재력과 지위를 손에 획득했는데도 '''졸부라고 무시당하는 계층, 개인'''이 있다는 것도 주목해볼 점이다. 계층별 아비투스 차이의 예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루비 페인의 <계층이동의 사다리>[6]라는 책을 참고해볼 것.
어느 국가나 민족뿐만 아니라 지역적인 수준에서도 아비투스는 다를 수가 있다. 이러한 아비투스 차이로 인한 상징 폭력은 언론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가령 여의도의 XX배라는 표현이나, 재난시 서울을 비껴가서 다행이라는 보도 등. 경기도민,지방민에 대한 서울시민의 멸시(인천권에 대한 서울시민의 멸시 정서, 일부 서울시민들이 경기도를 서울에서 밀려난 거지들이 사는 곳으로 멸시하는 정서 포함), 서울내에서도 강남 3구와 비강남권의 갈등, 경기도 남부와 북부의 갈등, 도쿄인과 오사카인 간의 지역감정 등이 지역별 아비투스의 차이로 인한 것들이다.

1.2. 사례


기초 질서의식과 시민윤리가 부족한 저소득층과 중산층 간의 무질서에 대한 갈등과 대립, 사회적 약자나 다른 집단이나 개인에 대한 배타성과 폭력성을 보이는 저소득층 및 빈곤층의 문화와 이것을 용납하기 힘든 중산층간의 갈등, 상위 1%에 속하는 상류층의 타락과 위선에 대한 중산층의 반감과 거부감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나라는 8.15 해방과 6.25 전쟁을 겪으며 전 국토의 황폐화 및 경제재건 등 극심한 사회변동으로 계층간 갈등이 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가 조금씩 진전되며 비 상류 계층도 다양하게 분화하게 되고, 1999년을 전후해서 각 가정마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정보가 자유롭게 유통되면서, 중산층-상류층간, 중산층-저소득층간, 빈곤층 상호간의 아비투스 차이가 널리 알려지게 되자 상호간 갈등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이런 갈등은 단순한 경제적인 차이로 인한 갈등, 대립, 질시가 아니라, 몇세대에 걸쳐서 형성된 가치관과 환경적, 문화적 차이이다 보니 쉽게 극복하기 힘들다는 문제점이 있다. 한국의 경우 군사독재정권하에서, 일본의 경우 2차 대전 전후 복구 차원에서, 경제 재건 및 사회 단결 목적을 위해 계층간 가치관의 차이와 관점의 차이를 언급하는 것이 금기시되다보니 한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일례로 동두천, 인천, 안산, 시흥 등지의 수도권 서민밀집지구 출신으로, 서울의 중위권 또는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 그 대학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7] 되려 서민층인 초중고 동네 동창들과 어울리다가 9급 공무원이나 어릴때 살던 동네의 학원 강사, 공인중개사 정도에서 진로가 마무리되는 등 학벌을 제대로 써먹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채널A의 서민 갑부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모범사례인데, 자수성가해서 돈은 많이 벌었지만, 긴 노동시간과 강도높은 육체노동,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가족이나 친척들이 진로를 포기하고 가업을 돕거나, 지가가 낮은 시골지역이나 지방에서 계속 살거나 서민적인 생활양식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면 이러한 아비투스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엿볼 수 있다.
부동산 갤러리에서는 서민 주거지를 일컬어 민도가 낮은 지역이라 나쁘게 보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서민층과 중상류층 간 아비투스의 차이와도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
드라마 등에서 흔히 나오는 '못 배운 티 내지 마라' 등의 대사 역시 이 아비투스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겠다.

1.3. 기타


소위 행복지수가 높다고 알려진 나라들이 언급되는데, '''이러한 나라들은 대부분이 절대적으로 빈곤하다.''' 이 나라들의 전반적인 사회상을 곱씹어보면 국민들의 절대다수가 가난한데다 그만큼 아비투스의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서 상대적 박탈감이 덜하다. 그래서 행복지수가 상대적으로 높아보이는 것.
다른 예로 사람의 몸매도 아비투스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어 비만인 사람이 살을 빼지 않는 것도 그 주변인들도 비만체형인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되는 계기가 물론 성인병 등에 대한 위협도 있겠지만, 그보다도 주변 환경이 갑자기 바뀌면서인 경우가 많다.
'''서로 다른 가정환경에서 만나서 결혼했다가 시집, 처가와의 갈등을 겪거나, 이혼, 가정폭력을 당하거나''', 동질혼이 성행하는 것도 이 아비투스 문제가 크다.

2. Avitus, 서로마 제국의 황제



[image]
'''제호'''
아비투스
'''휘'''
마르쿠스 마킬리우스 플라비우스 에파키우스 아비투스
(Marcus Maecilius Flavius Eparchius Avitus)
'''생몰년도'''
380년/395년 ~ 457년
'''재위기간'''
455년 7월 9일 ~ 456년 10월 17일
서기 380년 또는 395년에 클레르몽에서 태어난 갈리아계 로마 귀족. 421년경에 콘스탄티우스 3세를 알현해 자신의 고향에 대한 세금 감면을 요구해 성사시켰고 425년에서 426년경에 서고트 왕국에 사절단으로 가서 국왕을 만났다. 이때 그는 당시 왕자였던 테오도리크 2세와 친분을 맺었다. 이후 플라비우스 아에티우스의 부관으로서 군 생활을 시작한 그는 여러 전투에 참가했고 사절로서 서고트 왕국과의 우호 조약 체결에 기여했다. 특히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 군대가 갈리아를 침공했을 때 아비투스는 아에티우스의 사절로서 서고트 왕국을 찾아가 테오도리크 1세를 설득해 로마와 힘을 합쳐 훈족에 맞서 싸우게 했다. 그 결과 서고트 왕국군과 아에티우스의 로마군은 연합군을 결성해 카탈라우눔 전투에서 아틸라를 격파했다.
455년, 아비투스는 고향에서 은거하던 중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 황제의 명령을 받들어 서고트 왕국의 국왕이 된 테오도리크 2세를 찾아갔다. 그는 테오도리크 2세와 일찍이 맺었던 친분을 활용해 서고트 왕국이 새 황제에게 지지를 표명하게 했다. 그런데 얼마 후 반달족이 로마를 쳐들어왔고 페트로니우스 황제가 도망치다가 시민들에게 맞아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아비투스는 속주민들과 갈리아 주둔 로마군의 추대를 받아 황제를 칭했고, 테오도리크 2세는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아비투스는 자신을 도와준 테오도리크 2세에게 보답하는 의미로 서고트 왕국이 세력을 히스파니아로 확장하는 걸 용인했다. 이로서 히스파니아는 명목상 로마 제국의 영토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서고트 족의 세력권이 되었다.
이후 아비투스는 3개월 동안 갈리아에 머물며 세력을 강화한 뒤 9월 21일 로마로 진군했다. 원로원과 이탈리아 방위군의 지지를 받은 아비투스는 콘스탄티노플에 사절을 보내 자신의 황제 즉위를 알리며 지지해줄 것을 청했다. 하지만 동로마 제국은 그의 즉위를 승인해주긴 했지만 그가 임명한 집정관 2명을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아비투스는 로마를 약탈했던 반달 왕국의 가이세리크 왕과 대립해 수차례 전투를 벌였다. 456년 3월 반달족 함대가 카푸아를 습격해 파괴하자, 아비투스는 리키메르 장군을 파견해 시칠리아를 지키게 했고 리키메르는 아그리겐토 인근에서 두 번 전투를 치뤄 반달족을 격파했다.
그러나 로마 귀족들은 공직에 갈리아계 귀족들을 임명한 아비투스에게 격분했다. 게다가 반달족의 로마 약탈로 인해 식량부족은 심해졌다. 마침 반달족을 무찌른 일로 명성을 얻어가던 리키메르는 이 분위기를 타서 아비투스를 폐위하려 하였다. 아비투스는 세력 근거지인 갈리아에서 병력을 모은 후 이탈리아로 돌아와 리키메르의 군대와 싸웠으나 패배하였다. 리키메르는 아비투스를 플라켄티아의 주교로 임명하고 제위에서 쫓아냈다.
457년, 아비투스는 사망했다.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불확실하다. <로마 제국 쇠망사>에 따르면, 원로원이 그의 사형을 선고했고 아비투스는 곧바로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또 다른 기록에 따르면, 아비투스는 원로원의 사형 선고를 회피해 갈리아로 도망치다가 병사했다고 한다. 그의 뒤를 이은 마요리아누스 황제가 그를 목졸라 죽이거나 굶어죽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3. Avitus, 워해머의 등장인물


아비투스(Warhammer 40,000: Dawn of War 2)항목참조.
[1] 이게 왜 이상한지 모르겠다면, 외제차 뒷유리창에 인형뽑기로 뽑은 인형이 걸려있다거나 전용기 계기판 위에 달마상이 놓여있는 모습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일반 자가용이라면 몰라도, 최고급 외제차나 전용기에 그런 장식을 하면 '싼티'나 보이기 때문. 즉 '개 발에 편자', '가게 기둥에 입춘'과는 반대의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등장인물.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사교인들의 꿈은 게르망트 공작 부인의 살롱에 초대받는 것이다. 게르망트 사람들은 각종 은어와 사교 의례로 중요한 의견을 교환했는데,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게르망트의 살롱에 초대받지도 못하고, 초대받는다 하더라도 겉돌 수밖에 없었다.[3] 에코는 '대단히 복잡하고 지극히 긴급한 업무 때문에 자기들에게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 온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과시하고 싶어하는 자'들에 대해 언급하며 위 인용문을 썼는데(당시 - 1991년 - 에는 휴대폰이 귀했기 때문에 지니고 다니면서 으스대는 것도 꼴불견이었지만 공공장소에서 마치 자랑인양 통화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쯤으로 여겼다), '진짜로 성공한 사람들'은 집사나 비서가 중요한 소식을 전달해주므로 굳이 전화를 받기 위해 휴대폰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으므로 휴대폰으로 업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중산층이라는 내용이다.[4] 'h'음을 대개 생략하는 교회 라틴어나 로망스어권(루마니아 제외) 신 라틴어 발음을 따른다면 라틴어로 볼 수는 있다. 그러나 대체로 고전 라틴어 표기 및 발음을 따르는(가령 과거 외래어 표기법 용례집에 수록된 '라틴어 표기 원칙'의 사례가 있음) 한국어 용례 상, 이는 통상적인 라틴어 표기로 간주하기 어렵다.[5] 예를 들자면, 공무원 행정직 임용이나 대기업 정규사무직 입사 이후에도 하류층 특유의 거친 언어 습관을 버리지 못해 직장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6] 원 제목은 A Framework for Understanding Poverty(Ruby K. Payne). 책에 나오는 사례 중 식생활을 예로 들면, 하류층은 "그거 양 많냐?", 중류층은 "그거 맛있냐?", 상류층은 "그거 예쁘게 나왔냐?"를 기준으로 삼는 식이다. 상류층 파티에서 얼음이나 당근을 깎아서 만든 봉황 같은 장식(중류층 이하의 관점에서 보면 '먹는 거 갖고 장난하냐'라는 말이 나올법한)이 나오는 것도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7] 대표적인 사례로, 학자금 대출에 쪼들리는 흙수저 학생과 방학때마다 밥먹듯이 해외여행을 다니는 금수저 학생 간의 위화감. 특히 SKY대의 경우 국가장학금 미대상자(동수저 이상)가 70%가 되는 등 집안 배경이 좋은 자제들이 명문대에 집중되는 현상이 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