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광

 



'''韓廣 (?~기원전 206년)'''
1. 생애


1. 생애


초한쟁패기연(燕)나라의 왕. 원래 조나라의 상곡군의 낮은 군리로 일했다. 진시황(秦始皇)의 공격으로 조(趙)나라가 망한 뒤 실업자 가 되었다.
진시황이 죽은 뒤 영호해가 2세 황제가 되자 조고와 짜고 폭정을 저질러 진승·오광의 난이 일어났을 때 진승(陳勝)이 진군(陳郡)을 차지하고 장초(張楚)의 왕을 칭하자 많은 유력 군벌이 독립했다. 대표적으로 무신(武信)이 장초에서 독립해 조나라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그 무신이 한광에게 연나라 땅을 정벌하라고 했다. 그러자 한광은 연나라 땅을 차지했는데, 연나라의 백성들이 태자 단이 연왕 희에게 죽어 적통 왕손이 없어서인지 한광에게 독립을 요구했는데, 한광은 자신의 가족이 조나라에 있어서 할 수 없다고 밝혔으나, 결국 요청에 못이겨 연나라의 왕이 되었다. 이에 무신은 화가 났지만, 자신 또한 진승으로부터 독립한 전력이 있어 결국 그 부모는 물론 처자식도 연나라로 보내주었다.[1]
기원전 208년 한광은 진나라 장수 장한(章邯)과 왕리가 조나라를 공격할 때[2] 한광은 부하인 장도(臧荼)를 보내 돕게 했다. 그리고 조나라를 구원하러 온 항우(項羽)는 장한을 물리쳐, 초나라의 위상을 드높였다.
기원전 206년 항우가 제후들을 분봉할 때 한광이 친히 와서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광을 요동왕으로 임명하고, 직접 와서 도운 장도는 연왕으로 봉했다.[3] 이에 한광은 그 조치에 불만을 품었고 요동으로의 전봉 역시 거부한다.[4].그런데, 장도는 그것을 빌미로 연나라의 군대를 동원해 한광의 근거지인 무종(無終)[5]을 공격해서 한광을 살해하고 유일한 연왕이 된다.[6]
[1] 이것은 당시 진나라가 기울어가면서, 제후국들이 일어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2] 이때 무신은 죽임을 당했고, 이때 조왕으로 있었던 사람은 조나라의 왕손인 조헐(趙歇)이다.[3] 다만, 일관성이 없는 조치인게, 유방을 따라 입관한 매현 덕에 파현의 현령인 오예는 장사왕이 되었으니 불공평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그 매현은 10만호의 제후가 되었다.[4] 한광 입장에서 보자면 느닷 없이 부하랑 동급에 놓이게 되고 본래 살던 곳에서 강제 이사(...) 당하게 된 것. 말이 좋아서 요동왕이지 요동이 제대로 개발 되기 시작한건 후한 무렵이다.[5] 베이징톈진 사이에 위치. 장도가 도읍을 둔 계(薊) 역시 가까이에 있었다.[6] 그러나 그 일로 항우의 분노를 샀기 때문에, 훗날 유방에게 붙게 되는 원인이 된다. 그 이유는 말할 거 없이 한광 또한 항우가 임명한 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