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나라
연(燕)나라는 중국의 옛 국가 명칭이다. 주로 허베이성 일대를 칭함
전한의 초대 황제 한고제가 친구 노관에게 봉한 제후국이다. 노관은 연왕으로 봉해졌으나 쿠데타에 실패하고 흉노로 망명하여 폐지되었다.
삼국시대 위나라의 요동 지역 군벌인 공손연이 위에 반기를 들고 선포했던 국가 이름이다. 동연(東燕), 공손연(公孫燕)이라고도 한다. 공손연은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을 격퇴한 뒤 237년에 스스로 연왕(燕王)을 칭하고 연호를 소한(素漢)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다음 해 사마의가 이끄는 위나라 관군에 패퇴해서 장남 공손수와 함께 붙잡혀 참수당해서 연나라는 금방 소멸되었다.
오호십육국 때의 국가들 중에 '연'이라는 국호를 가진 나라가 다섯 있었다. 모두 선비족 계열로 '모용씨'를 왕으로 삼았다. 현재는 전연, 후연, 서연, 남연, 북연으로 구별한다. 이는 후대엔 이렇게 구별하나 당시 저 나라들 국호는 모두 연, 또는 높여서 대연(大燕)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전연, 후연, 서연, 북연, 남연이 따로 개설되어 있다. 항목 참조.
수말당초 고개도가 세운 할거정권이다. 통칭 고연(高燕).
안사의 난 당시 안록산이 756년 1월, 낙양에서 스스로를 대연 황제라 칭하며 즉위했다. 때문에 통감이나 기타 기록 중에는 안록산군 휘하 장수들을 '연의 ~~' 하는 식으로 꼬리표를 달아놓기도 한다. 아무래도 본거지가 과거 연나라가 있었던 범양[1] 이라서 그런 듯.
911년 ~ 913년
걸연(桀燕)이라고도 하며, 단명정권이라 십국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본래 당나라의 노룡 절도사에서 시작된 세력으로, 911년 유수광(劉守光)이 후량(後梁)으로부터 자립하여 스스로를 연왕이라 칭하였다. 그러나 2년 뒤인 913년 뒷날 후당을 세우게 된 이존욱의 공격으로 멸망당하였다.
일전에 이존욱은 유언으로 하북의 유인공 부자를 처리해줄 것을 원했다. 유인공의 아들 유수광은 아버지를 가두고 스스로 절도사가 되어 형을 잡아다 죽였으며, 온갖 해악과 악행을 멈추지를 않았다. 이런 인물들이 항상 그렇듯 욕심은 터무니없이 커서 느닷없이 크기만 했다.
911년 8월 13일, 유수광은 국호를 대연이라고 칭했다. 또한 연호를 응천이라고 바꾸었고, 수하들을 어사대부니, 좌상이니 하고 삼으니 연의 사람들은 놀라워하고 "이게 뭔일이여" 하는 식으로 당황하였다.
이존욱은 이 말을 듣고 그렇게 웃긴 일이 없다는듯 한참을 크게 웃더니 말했다.
"저들이 햇수로 점치는 것을 기다렸다가, 내 마땅히 그 점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볼 것이다."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정복하고 나라의 운명이 몇년이나 갈지를 점친 것을 빗댄 말로, 과연 얼마나 저 황제 노릇이 갈지 지켜보겠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이존욱의 수하 장승업도 한술 더떠 아예 사신을 파견해 치하하자는 의견을 내었는데, 적을 교만케 하자는 것이었다. 이존욱은 이를 받아들였다.
황제가 된 유수광은 2만의 군사를 이끌고 용성을 공격했다. 의무 절도사인 왕처직은 이존욱에 구원을 요청했고, 이존욱은 수하의 명장 주덕위에게 3만의 군사를 주어 왕처직을 도와주게 했다. 주덕위는 왕처직을 구원함은 물론, 연나라 땅인 탁주를 포위하여 항복시키는 공을 세웠다.
그러자 겁을 먹은 유수광은 영토 내의 모든 장정들을 소집해 얼굴에 글자를 새겨 병사로 삼는가 하면, 후량에도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주전충은 스스로 50만의 대군이라 일컬으며 이존욱을 물리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였다.
이때 후량은 국지전에서 계속해서 패배하고 있었고, 주전충은 극도로 민감해져 사람을 마구 죽여 부하들은 공포에 떨었다. 주전충은 6군을 통솔하며 이존욱을 물리치려고 했는데, 밤중에 땔나무를 하던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돌아와서 소리쳤다.
"진왕이 온다! 대규모로 도착하였다."
그 말을 들은 주전충은 모골이 송연해져 군영을 불태우고 밤중에 도망가다 길까지 잃게 되었고, 도중에 '''밭갈이하던 농부들이 괭이와 몽둥이를 들고 쫒아오자 도망가는 통에 군수물자와 병기를 전부 잃어버리기까지 하였다.''' 뒤늦게 알고보니 이존욱의 부대는 본대가 아닌 선봉대에 불과했는데 그걸 보고 겁에 질려 도망쳤던 것이고, 이 사실을 깨달은 주전충은 너무나 부끄러워 건강이 악화되고 말았다.
한편 그때 이존욱은 다른 방면으로는 주덕위와 이사원을 파견해 유수광을 지근지근 밞아주고 있었다. 믿고 있던 후량이 개털리자 유수광은 발악으로 거란을 끌어들이려 한연휘를 파견하지만, 야율아보기는 한연휘를 오히려 자기 부하로 만들어버렸다.
유수광은 이제 모든 희망을 잃고 사신을 주덕위에게 파견하여 화친을 구걸했는데, 사신의 목소리가 매우 애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덕위는 냉랭하게 말하였다.
"대연 황제(유수광)은 어찌 암컷같이 납작 엎드리는가? 나는 명령을 받아서 죄인을 토벌하려 왔을 뿐이고 동맹을 맺는 일은 내 소관이 아니다."
유수광은 정말 공포에 질려 몇번을 사신을 파견해 애원하였고 주덕위는 못이기는 척 이존욱에게 이 말을 전하였다. 이존욱은 그 말을 듣고 스스로 유주로 떠났고, 홀로 성 아래에 도착해 여유있게 유수광에게 말했다.
"나는 본래 공과 더불어 당조를 부활시키고자 하였으나, 공은 저 주전충이 한 짓을 따라하였소(황제를 참칭한 것). 장부의 성패란 본래 모름지기 향하는 대로 될뿐이니 공은 어찌하겠소이까?"
"나는 도마위에 올려진 생선일뿐이오. 오직 왕께서 판단해주시구려."
그러더니 유수광은 도망가버렸고, 이존욱은 유주에 입성하여 갇혀있었던 유인공을 잡았다.
유수광은 멀리 도망치다가 발에 동상이 걸리고 길을 잃어 자신의 부인에게 밥을 구걸하게 하다가 잡혀서 이존욱의 앞으로 끌려오게 되었다. 이존욱은 연회를 즐기고 있던 중에 유수광을 보자 비웃었다.
"어찌 주인께서 손님을 피하여 먼 곳에 갔던 것이오?"
그 후 애원하는 유수광을 단칼해 처형해 버렸다.
1. 춘추전국시대의 연
- 항목 참고.
2. 전한의 제후국 연
전한의 초대 황제 한고제가 친구 노관에게 봉한 제후국이다. 노관은 연왕으로 봉해졌으나 쿠데타에 실패하고 흉노로 망명하여 폐지되었다.
2.1. 역대 군주
2.2. 관련 문서
3. 요동 공손씨 정권 공손연이 선포했던 나라
삼국시대 위나라의 요동 지역 군벌인 공손연이 위에 반기를 들고 선포했던 국가 이름이다. 동연(東燕), 공손연(公孫燕)이라고도 한다. 공손연은 유주자사(幽州刺史) 관구검을 격퇴한 뒤 237년에 스스로 연왕(燕王)을 칭하고 연호를 소한(素漢)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다음 해 사마의가 이끄는 위나라 관군에 패퇴해서 장남 공손수와 함께 붙잡혀 참수당해서 연나라는 금방 소멸되었다.
4. 오호십육국시대의 국가들
오호십육국 때의 국가들 중에 '연'이라는 국호를 가진 나라가 다섯 있었다. 모두 선비족 계열로 '모용씨'를 왕으로 삼았다. 현재는 전연, 후연, 서연, 남연, 북연으로 구별한다. 이는 후대엔 이렇게 구별하나 당시 저 나라들 국호는 모두 연, 또는 높여서 대연(大燕)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전연, 후연, 서연, 북연, 남연이 따로 개설되어 있다. 항목 참조.
5. 수말당초의 고연(高燕)
수말당초 고개도가 세운 할거정권이다. 통칭 고연(高燕).
6. 호연(胡燕)
안사의 난 당시 안록산이 756년 1월, 낙양에서 스스로를 대연 황제라 칭하며 즉위했다. 때문에 통감이나 기타 기록 중에는 안록산군 휘하 장수들을 '연의 ~~' 하는 식으로 꼬리표를 달아놓기도 한다. 아무래도 본거지가 과거 연나라가 있었던 범양[1] 이라서 그런 듯.
7. 오대십국시대의 유연(劉燕)
911년 ~ 913년
7.1. 소개
걸연(桀燕)이라고도 하며, 단명정권이라 십국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본래 당나라의 노룡 절도사에서 시작된 세력으로, 911년 유수광(劉守光)이 후량(後梁)으로부터 자립하여 스스로를 연왕이라 칭하였다. 그러나 2년 뒤인 913년 뒷날 후당을 세우게 된 이존욱의 공격으로 멸망당하였다.
7.2. 건국과 멸망
일전에 이존욱은 유언으로 하북의 유인공 부자를 처리해줄 것을 원했다. 유인공의 아들 유수광은 아버지를 가두고 스스로 절도사가 되어 형을 잡아다 죽였으며, 온갖 해악과 악행을 멈추지를 않았다. 이런 인물들이 항상 그렇듯 욕심은 터무니없이 커서 느닷없이 크기만 했다.
911년 8월 13일, 유수광은 국호를 대연이라고 칭했다. 또한 연호를 응천이라고 바꾸었고, 수하들을 어사대부니, 좌상이니 하고 삼으니 연의 사람들은 놀라워하고 "이게 뭔일이여" 하는 식으로 당황하였다.
이존욱은 이 말을 듣고 그렇게 웃긴 일이 없다는듯 한참을 크게 웃더니 말했다.
"저들이 햇수로 점치는 것을 기다렸다가, 내 마땅히 그 점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볼 것이다."
주나라 무왕이 상나라를 정복하고 나라의 운명이 몇년이나 갈지를 점친 것을 빗댄 말로, 과연 얼마나 저 황제 노릇이 갈지 지켜보겠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이존욱의 수하 장승업도 한술 더떠 아예 사신을 파견해 치하하자는 의견을 내었는데, 적을 교만케 하자는 것이었다. 이존욱은 이를 받아들였다.
황제가 된 유수광은 2만의 군사를 이끌고 용성을 공격했다. 의무 절도사인 왕처직은 이존욱에 구원을 요청했고, 이존욱은 수하의 명장 주덕위에게 3만의 군사를 주어 왕처직을 도와주게 했다. 주덕위는 왕처직을 구원함은 물론, 연나라 땅인 탁주를 포위하여 항복시키는 공을 세웠다.
그러자 겁을 먹은 유수광은 영토 내의 모든 장정들을 소집해 얼굴에 글자를 새겨 병사로 삼는가 하면, 후량에도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주전충은 스스로 50만의 대군이라 일컬으며 이존욱을 물리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였다.
이때 후량은 국지전에서 계속해서 패배하고 있었고, 주전충은 극도로 민감해져 사람을 마구 죽여 부하들은 공포에 떨었다. 주전충은 6군을 통솔하며 이존욱을 물리치려고 했는데, 밤중에 땔나무를 하던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돌아와서 소리쳤다.
"진왕이 온다! 대규모로 도착하였다."
그 말을 들은 주전충은 모골이 송연해져 군영을 불태우고 밤중에 도망가다 길까지 잃게 되었고, 도중에 '''밭갈이하던 농부들이 괭이와 몽둥이를 들고 쫒아오자 도망가는 통에 군수물자와 병기를 전부 잃어버리기까지 하였다.''' 뒤늦게 알고보니 이존욱의 부대는 본대가 아닌 선봉대에 불과했는데 그걸 보고 겁에 질려 도망쳤던 것이고, 이 사실을 깨달은 주전충은 너무나 부끄러워 건강이 악화되고 말았다.
한편 그때 이존욱은 다른 방면으로는 주덕위와 이사원을 파견해 유수광을 지근지근 밞아주고 있었다. 믿고 있던 후량이 개털리자 유수광은 발악으로 거란을 끌어들이려 한연휘를 파견하지만, 야율아보기는 한연휘를 오히려 자기 부하로 만들어버렸다.
유수광은 이제 모든 희망을 잃고 사신을 주덕위에게 파견하여 화친을 구걸했는데, 사신의 목소리가 매우 애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덕위는 냉랭하게 말하였다.
"대연 황제(유수광)은 어찌 암컷같이 납작 엎드리는가? 나는 명령을 받아서 죄인을 토벌하려 왔을 뿐이고 동맹을 맺는 일은 내 소관이 아니다."
유수광은 정말 공포에 질려 몇번을 사신을 파견해 애원하였고 주덕위는 못이기는 척 이존욱에게 이 말을 전하였다. 이존욱은 그 말을 듣고 스스로 유주로 떠났고, 홀로 성 아래에 도착해 여유있게 유수광에게 말했다.
"나는 본래 공과 더불어 당조를 부활시키고자 하였으나, 공은 저 주전충이 한 짓을 따라하였소(황제를 참칭한 것). 장부의 성패란 본래 모름지기 향하는 대로 될뿐이니 공은 어찌하겠소이까?"
"나는 도마위에 올려진 생선일뿐이오. 오직 왕께서 판단해주시구려."
그러더니 유수광은 도망가버렸고, 이존욱은 유주에 입성하여 갇혀있었던 유인공을 잡았다.
유수광은 멀리 도망치다가 발에 동상이 걸리고 길을 잃어 자신의 부인에게 밥을 구걸하게 하다가 잡혀서 이존욱의 앞으로 끌려오게 되었다. 이존욱은 연회를 즐기고 있던 중에 유수광을 보자 비웃었다.
"어찌 주인께서 손님을 피하여 먼 곳에 갔던 것이오?"
그 후 애원하는 유수광을 단칼해 처형해 버렸다.
[1] 현 북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