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극함
1. 개요
조선 중기의 무신. 임진왜란 당시 함경북도 병마절도사를 지내고 있었다.
1.1. 일생
함경북도 병마절도사로, 가토 기요마사와 전투에서 한 차례 승리한 적이 있는 능력있는 장수다. 가토 기요마사의 부대가 함경도로 막힘없이 전진해오자 한극함이 기병과 사수부대를 이끌고 해정창(현재 북한 김책시)에서 막아섰다.. 한극함의 함경도 정예기병들은 신들린 말타기로 기요마사의 부대의 공격을 모두 피하고 활로 한 명씩 죽여가며 결국 1차전에서는 승리하였다. 그러자 가토 기요마사가 해정창 창고로 도망갔는데 한극함이 그 창고를 빙 둘러 포위하자 창고에서 전열을 정비한 왜군의 총알이 빗발쳐 결국 한극함의 부대는 괴멸했고, 잠시 후퇴한 시간에 가토 기요마사가 새 철포부대를 데리고 와 결국 패배했다. 이 전투가 바로 해정창 전투이다.
이후, 한극함은 경기도로 도망가려고 했으나 결국 왜군에게 붙잡혔다. 그 후 가토의 포로가 된 임해군, 순화군 일행에 합류하여 철수하는 왜군과 함께 한양 인근까지 왔을때 단신으로 탈출, 고언백의 조선군 부대에 구출되었으나, 해정창 전투 패전의 책임과, 두 왕자를 끝까지 호종하지 않고 혼자 살려고 도망쳤다는 탄핵이 빗발쳐 1593년 5월 16일 사형을 당했다.
2. 일본 문화에서
임진왜란 후에는 일본에서 실제보다 그 활약이 크게 과장되어, 모쿠소호간(김시민 장군)과 쌍벽을 이루는 조선의 대장군 캐릭터(대충 김시민이 조선 남부 4도의 총대장, 한극함이 북부 4도의 총대장으로 과장되었다)로 임진왜란을 다루는 일본의 문학, 연극 등에 최종보스로 자주 등장하게 되었다. 키가 8척이 넘는 거인이었으나 용맹한 가토 기요마사에게 패했다는 식으로 가토의 용맹을 높이는데 사용되었다. 김시민 장군이 직함인 목사판관의 일본어인 모쿠소호간으로 불린 것처럼 한극함도 직함인 절도사가 일본어로 전해진 '''세루토스(せるとうす)'''라고 불렸는데, 후일 조선 통신사가 일본에 가서 이런 작품들을 접하면서도 일본어를 잘 몰라 줄거리 파악도 잘 안되는데다가 세루토스가 절도사인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하고 '세루토스라는 외국인이 조선에 표류해 살다가 왜군의 앞잡이가 되었다'라고 잘못 와전해서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