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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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명석(韓命錫)
족보명
한취석(韓驟錫)

윤덕(允德)
본관
청주 한씨[1]
생몰
1900년[2] 6월 28일 ~ 1962년 3월 18일[3]
출생지
전라북도 임실군 신안면 신안리
(현 전라북도 임실군 임실읍 신안리)[4]
사망지
전라북도 전주시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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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차 조선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된 후 촬영된 사진.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한명석은 1900년 6월 28일 전라북도 임실군 신안면 신안리(현 임실읍 신안리)에서 생원시에 급제한 아버지 한흥교(韓興敎)와 어머니 전주 이씨 이영우(李英宇)의 딸 사이의 4형제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20년대 후반 전라북도 임실군 일대에서 대중 운동과 사회 운동을 펼쳤고, 신간회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던 때인 1928년 신간회 임실지회 설립에 참여해 재정부 총무간사를 역임했다. 또한 청년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임실청년동맹 검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공산주의 사상에 감명받은 그는 조선공산당 조직에 투신했고, 1929년 2월 임실면 갈마리에서 조선공산당 '임실야체이카'를 조직하기 위해 임실면 신안리 책임자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 8.15 광복 후 전주로 이주했고, 1962년 3월 1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한명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공안공파 30세 석(錫) 항렬.[2] 청주 한씨 제7교 대동족보에는 1899년생으로 기재되어 있다.[3] 음력 2월 13일.[4] 청주 한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한계석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