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혁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한창혁은 1881년 9월 20일 함경남도 장진군 신남면 중흥리(현 장진군 만풍노동자구)에서 아버지 한만승(韓萬昇)과 어머니 원주 원씨 원사길(元士吉)의 딸 사이의 1남 2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4일 오후 4시 신남면 고토리에서 주민 200여 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시가를 행진하다 헌병주재소 앞에 이르러 만세를 불렀다. 이에 헌병들은 시위대에게 칼과 몽둥이를 휘두르며 마구 폭행을 가하였다. 격분한 군중들도 이에 맞서 큰 충돌이 벌어졌다. 헌병들은 군중에게 무차별사격을 가하였고 군중들은 헌병대 안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이때에는 이미 전신 시설이 파괴되어 외부와의 연락이 완전히 두절되었다.
이 때 헌병보조원 1명이 탈출하여 하통리 헌병대에 달려가, 시위대가 헌병을 무참히 살해했다고 거짓 보고를 했다. 이에 하통리 헌병대는 즉시 하갈리 헌병대의 지원 아래 고토리에 와서 시위 군중을 짓밟고 해산시켰다. 이때 체포된 사람만도 100여명에 달하였다. 이 일로 체포된 한창혁은 1919년 6월 2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경성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한창혁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