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정보통신학교
1. 개요
대한민국 해군 해군교육사령부 예하의 부대이다. 1946년에 진해특설기지사령부 휘하에 통신교육대 생겼고 이듬해인 1947년에 조선해안경비대 통신학교로 개편되었다. 1948년 8월 15일에 해군이 발족하면서 해군통신학교가 되었고 1956년 3월에 교육단(현재의 교육사)이 생기면서 통신학교와 전자학교로 분리되었다. 1987년에는 기술병과학교 소속의 일개 학부(통신전자학부)로 격하되었으나 2003년에 독립하였다. 학교장은 해군 정보통신병과 대령이 보임된다.
이 항목은 육군정보통신학교나 공군정보통신학교보다 늦게 생겼다. [1]
2. 구성
- 교수부
3. 생활상
정통교 생활관 바로 옆의 생활관 건물은 해군기술행정학교 중 구 기술병과학교 소속 부서가 들어와 있는 건물이다. 2003년 정통교 설립 초기에는 기병교 건물이었는데 기병교와 정통교간 은근 라이벌 의식같은게 있기도 했다.
교육생의 동초근무는 구 생활관이 있던 시절엔 앵곡동 교회쪽 통문과 그 위쪽으로 있는 산중턱(이라고 해 봐야 별로 안높은)에 있는 비포장도로(길을 쭉 따라가면 헬기장이 나온다. 그렇다고 근무지 이탈은 하지 말자.) 통문 2군데에서 했다. 그리고 2010년경 신축 생활관이 완공된 이후에는 별도의 동초근무 없이 생활관 내에서 층별로 부사관교육생 2명, 수병교육생 2명이 2시간씩 교대로 불침번근무를 서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앵곡동 교회쪽 통문은 평일 야간에는 거리도 짧고 언덕을 오를 일이 없어서 힘들지는 않지만 수요일과 일요일에는 각 학교에서 몰려드는 종교인원을 보고하느라 아주 머리가 아파진다.
수병 후반기교육 2주차쯤 되면 복지를 마음대로 갈수있게 해주는 경우가 많은데 복지가 기행교에 있다보니 도보로 10분정도 소요되는게 단점이다. 또한 당연하게도 라면같은건 숙소내 반입금지다. 식당은 건물안에 있어서 편하고 TV가 있어서 조리병이나 타 실무병, 간부들이 틀어놓은 채널을 시청하는것이 가능하다.[3] 전반적인 생활은 인원이 적은탓인지 타 학교보다 편한편이라고 알려져있다.
4. 관련 문서
[1] 사실 위키러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수병 출신은 적을 수 밖에 없다. 40만명이 넘는 육군병과 4만에 가까운 공군병에 비해 해군은 해병대를 제외하면 전체 인원이 4만명 정도이고 부사관의 비율이 높아 수병의 숫자가 2만이 안 된다. 더군다나 정통교에서 훈련받는 전공, 전산, 통신, 전자전은 수병들이 많이 몰리는 직별인 갑판, 전탐, 헌병등에 비해 인원이 훨씬 적다. 실제로 정통교 수병 교육생은 많아봐야 기수당 150명 남짓한 정도로 타학교 사람많은 직별 한개정도 인원에 불과하다. 추가로 음탐은 수병을 아예 선발하지 않는다.[2] 여기서 전공이라는 직별은 전화공사의 줄임말로, 학과 전공(major)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2012년 전공병 교육 과정을 기준으로 전화선 가설 및 전화기 설치, 디지털 키폰 설치, 전화 중계기 관리, 광통신장비 관리, M/W중계기 관리 등의 업무를 한다. 육상부대에서는 유선시험실에서 업무를 보고 수면을 취한다. 공군의 표현을 빌리자면 "직감"과 같다. 간혹 부대 경비업무를 맡은 경비병이 제초작업도중 전화선을 끊어먹으면 전공부사관과 전공병이 귀찮은 표정을 하고 나타나 유선공사를 다시 했다.[3] 5층 정도 있는데 625기 당시 5층은 쓰지 않았고 2층은 간부 3,4층은 오로지 병만 있기에 훈병들끼리 채널 선택권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