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견

 

許堅
? ~ 1680년
1. 개요
2. 말썽과 경신환국


1. 개요


남인의 수장인 허적서자이자 숙종 초기 큰 영향력을 미치던 남인을 파멸로 이르게 한 장본인.

2. 말썽과 경신환국


원래 허견은 말썽쟁이 + 돌아이였다. 당장 숙종실록만 봐도 허견은 그 기록이 차고 넘치며 그중의 반은 말썽 저지른 이야기다(…). 아버지의 위세를 믿고 팔도에서 뇌물을 들여오지를 않나, 폭행 사건을 일으키지는 않나, 서억만(徐億萬)의 아내 이차옥(李次玉)를 납치하여 죄를 지었지만, 그러나 역시 실권자 허적의 아들인지라 유야무야 넘어갔다. 하지만 '''이 일마저 유야무야 넘어갈 수는 없었다'''.
삼복[1]들과 '''역모성 발언을 했다고 고변을 받은 것이다.''' 결국 그 일이 발단이 되어 경신환국이 일어났고,[2] 국문을 받은 뒤 허적과 함께 처형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경신환국 참조.
장희빈을 다룬 사극이 나올 떄에, 전채요리로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허견의 행각으로 남인이 몰락했고 이 시기에 장희빈이 처음으로 궁에서 쫓겨나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등장하므로 조선의 문제아들 중에서는 인지도가 꽤 있다.
[1] 인조의 손자인 복선군, 복창군, 복평군.[2] 하지만 순전히 허견의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다. 원래부터 김석주는 남인을 실각시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을 때 허견이 들어온 거니까. 경신환국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