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룽(군인)

 



허룽 (賀龍, 하용 혹은 하룡[1])
(1895 ~ 1975)
1896년 3월 22일 후난성 쌍즈현 훙자관에서 출생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도 변변히 마치지 못했고, 어려서부터 소작 농사를 짓고 마부를 따라 다니며 소금이나 약재 등을 팔다가 1914년에 쑨원이 이끄는 중화혁명당(中华革命党)에 가입했다. 1차 국공합작이 진행되던 1926년 중국국민당군 제20군단장이었는데 이때 중국공산당에 입당했다. 4.12 사건 이후 장제스와 중국국민당 우파가 공산당을 탄압하기 시작하자 1927년 8월 1일 저우언라이, 주더와 함께 난창 폭동을 일으켰고 당시 홍군 제2방면군을 총지휘하였으나 봉기가 실패한 뒤 상하이로 달아났다가 후난성 일대에서 게릴라 전을 지휘하였다.
장정(長征)에서 런비스와 함께 홍 2군단과 홍6군을 동시에 지휘했고 1936년 7월, 중국공산당 중앙의 지시에 따라 홍2,6군단을 간쯔(甘孜)에서 홍2방면군(红二方面군)으로 조직하고 총지휘를 담당했다. 중일전쟁 시기에 팔로군 120 사단장을 재직했다. 1949년 12월, 허룽은 화베이야전군 제18병단등 부대를 인솔해 류보청, 덩샤오핑이 지휘하는 제2야전군과 합동작전을 펼쳐 청두 등지에서 적군 수십만을 섬멸했다. 1955년 9월 27일, 원수 계급을 수여받았다.
문화대혁명의 와중에 실각되고 반당 분자로 낙인 찍혀 투옥되었다가 1969년 옥사하였고, 1974년 복권되었다.

[1] 성씨 뒤의 이름에 두음 법칙을 적용하는지는 일관된 기준이 없어서 둘 다 병기. 같은 龍자임에도 신태용은 적용하였지만 성룡은 적용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