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나우두/광팬

 





1. 개요
2. 광팬들의 논리와 그에 대한 반박


1. 개요


호나우두의 광팬에 대한 비판을 서술하는 문서. '''광팬에 대한 비판이 유독 호나우두의 문서에만 작성된 이유는 날조, 지나친 찬양 및 신격화와 과대포장을 지양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다.''' 즉, 호나우두의 모든 팬을 비판하는 문서가 아니고 다른 선수들을 깎아내리며 호나우두만을 지나치게 신격화하는 일부 팬들에 대한 비판이다.

2. 광팬들의 논리와 그에 대한 반박


극성 호돈빠와 인터뷰.jpg
사실 201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거의 필요가 없어진 것으로 보이는 이 항목이 작성된 이유는 한국 웹에 영웅 서사시급으로 휘황찬란한 호나우두 찬가가 무분별하게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위키 문서만 해도 그 시점에서는 근거도 없는 호나우두 최강전설이나 날조된 커리어와 립서비스로 가득찼던 시기가 있었다. 이 지나치게 길어보이는 항목만 해도 당시 연이어 벌어지는 근거가 없거나 사실과는 다른 서술[1]을 한 번에 정리할 목적으로 길게 작성된 것이며 저 기나긴 개인 커리어 부분도 어느 정도는 호나우두의 커리어를 확실히 하며 사실날조를 지양하자는 목적하에 서술되기도 했다.
몇몇 팬들은 호나우두가 활약하던 당시의 PSV 에인트호번, FC 바르셀로나, 인테르를 호나우두 원 맨 팀으로 몰아간다거나, 호나우두가 불리한 자료는 쏙 빼놓는다거나, 선수의 기량이나 업적을 평가하는 잣대를 이중적으로 사용하는 작태를 보이며 호나우도를 메시나 호날두와 같은 당대 최고의 선수들은 물론, 마라도나나 펠레, 크루이프 등 역대 최고 수준의 선수들보다 한 단계 높은 신적인 존재로 추켜올리는 태도를 보인다.
팬들의 행태 중 가장 골아픈 것이 펠레 - 마라도나 - 호나우두라는 계보를 작성하는 것이다. 흔히 월드컵 성적과 코파 아메리카 성적 등으로 뒷받침된다. 호나우두는 분명 그 부분에서 괄목할 만한 선수다. 하지만 다른 부분에선 미진한 점도 있기에 펠-마-호라는 계보가 작성되면 예를 들어 공미로서 발롱도르, 득점왕 3연패를 이룬 플라티니도 저 계보에 들어가야 하는 것인가 등등 수많은 논란거리가 일시에 산적하게 된다. 즉 무리수이며, 대강 11년 이후로는 메시가 너무 올라가 버리는 탓에 저런 드립도 생명력을 다했다.[2]
웹에 만연한 호나우두에 대한 찬사는 근거 없는 낭설이나 한 때의 립서비스에 불과한 것도 있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만 해도 그렇다.

기자: 당신 제자들 중에 호나우두가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다면서요?

파비오 카펠로: 아 그랬지, 근데 그거 구라여. 그 때 좀 치켜세워주려고 그랬지. 사실 내 제자 중 최고 스트라이커는 판바스턴이야.

즉, 립 서비스였다. 애초에 카펠로가 부임한 06-07 시즌 호나우두의 나이는 서른 살이 넘었고 몸무게는 축구선수 생명에 지장이 올만큼 늘었으며 더 이상 월드클래스의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했다. 또한 카펠로는 호나우두를 “레알마드리드 선수단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선수이며, 그가 이적한후 레알마드리드는 달라졌다.” 라는 발언을 한 적도 있다. 이에 호나우두는 카펠로가 부임하자마자 "나는 그가 구식 감독임을 알고있었다"라며 카펠로를 지적했다. 근데 카펠로 이 양반, 최근에는 또 호나우두가 판바스턴보다 뛰어났다고 언급했다. 2008년에는 판바스턴이 호나우두보다 뛰어난 선수이며 완벽한 센터포워드라고 언급했으나, 이후 2017년 인터뷰에서는 다시 호나우두가 내가 지도한 선수중 최고였고, 판바스턴보다 뛰어나다고 말을 바꿨다.
펠퇴호탄설(펠레가 은퇴한 날에 호나우두가 탄생했다)도 대표적 낭설인데, 호나우두는 1976년생이고 펠레는 그 이듬해인 1977년에 뉴욕 코스모스 소속으로 은퇴했다. 물론 딱 1년 차이 나는 정도야 헷갈릴 수도 있고 웃으며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나 웹을 배회하는 펠퇴호탄설은 아예 펠레가 은퇴한 '날'에 호돈이 태어났다는 것인데 연도부터 어긋남은 물론, 펠레의 은퇴일은 10월 1일이고 호나우두의 생일은 9월 22일이기에 사실이 아니며 펠레의 국가 대표 은퇴일조차 1971년 7월 18일이다. 하지만 한국 인터넷에선 펠레 은퇴만 검색해도 이 펠퇴호탄설과 함께 '''시대는 두 황제를 동시에 허락하지 않았다'''는 식의 매우 높은 수준의 낭만성을 지닌 영웅 서사시가 쉬이 발견된다. 1997년에 경향신문에서 이런 낭설이 사실인 것처럼 보도된 적이 있고, 2002 월드컵 특집으로 KBS에서 했던 프로그램인 '비바 월드컵'도 펠레가 은퇴한 날에 호나우두가 태어났다는 내용을 방송한 것으로 보아 아마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부터 이런 낭설이 글이나 입을 통해 퍼져나갔을 가능성도 있다. 인터넷에서 펠레 은퇴일과 호나우두의 생일을 검색해도 어렵지 않게 이 말이 사실이 아님을 알아낼 수 있는데 사실 오히려 낭설이 잘 퍼지는 수단도 인터넷이기도 하다.
크루이프, 마라도나, 호마리우 등 전세대 선수들은 대부분 월드컵에서나 볼 수 있는 선수였으며 본격적인 해외 축빠 시장이 형성되기 전의 선수들이다. 국내 해축빠들 중 지금은 원로급을 차지하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호나우두 전 세대 선수들의 클럽경기까지 챙겨봤을 뿐이다. 그렇기에 메시-호날두가 등장하기 전까지 가장 높은 수준으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던 호나우두는 국내 해축빠들에게 있어서 시장이 형성되게 하는 전설의 시발점, 향수의 원형과도 같은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웹상에 얼마나 호나우두 찬가가 만연했었는가 하면, 10/11 챔스 결승전 직전 네이트에서는 '1경기 1골이 부진해보였던 게 호나우두, 이래서 메시는 안 돼'라는 취지의 리플이 베플을 먹으며 엄청난 지지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1경기 1골은 호나우두의 베스트 시즌인 96/97 바르셀로나 시절(48경기 45골)에도, 94/95 네덜란드 시절에도 36경기 35골로 달성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 이후에는 쳐다도 못 볼 기록이고,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메시와 호날두가 경이적인 득점력으로 치고 올라가는 바람에 호나우두 찬가의 생명력이 거의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지지를 얻었다.
호나우두가 동시대의 원탑 스타들과 비교해서 많이 까이는 이유는 다름아닌 '광빠들의 타 선수 까내리기'에 대한 반감이다. 대표적인 희생양으로는 메시, 호날두를 비롯하여 게르트 뮐러 등이 있다. 예를 들어 2010년 전쯤까지만 해도 아이러브사커에서 게르트 뮐러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내용은 '호나우두의 실력은 게르트 뮐러의 3배'라는 크루이프의 발언이 대부분이었다. 현재에는 그 반례도 매우 많이 존재한다.
최근 이 호나우두 팬들의 공격에 휘말리고 있는 대표적인 선수는 미로슬라프 클로제. 월드컵 통산 득점 타이 기록을 세울 때만 해도 그러려니 하는 반응이 많았으나 미네이랑의 비극이 터지고, 클로제가 호나우두의 기록을 갈아치우면서(심지어 이 장면을 호나우두가 직접 봤다!!!) 클로제에 대한 찬사가 있자, 클로제는 국대용이네[3] 임팩트가 부족하네 [4]하면서 그를 깎아내리고 있다. 이를 본 클로제 팬 및 호나우두 안티들도 반격을 가하면서 최근엔 메시 VS 호나우두 못지않게 떡밥이 꽤 크다.
어쨌든 이런저런 얘기가 있어도 호나우두가 정말 대단했던 공격수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굳이 '''다른 대단한 선수들까지 까면서''' 호나우두를 무분별하게 찬양해야 하느냐는 점이다. 광팬들은 자신들의 무분별한 찬양 때문에 정상적으로 호나우두를 인정하는 사람들까지 호빠라고 욕 먹게 하고 있다.
[1] 대표적으로 호나우두가 출전하지 않아 브라질 올림픽 패배 등이 있다.[2] 실제 세계 최고로 꼽히는 선수 5명을 뽑으라면 펠레, 마라도나, 크루이프, 디 스테파노, 베켄바우어가 거의 대부분 언급된다.[3] 잠시 국대에서만 잘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는 부상과 그로 인한 부진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호나우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클로제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발롱도르까지 차지했던 호나우두에 비하면 임팩트나 활약상 그리고 경기당 골수에서 호나우두한테 밀리는건 사실이지만 클럽 경력만 봐도 무시 못할 선수는 절대 아니다. 또한 악성 호나우두 팬들의 주장처럼 클로제가 월드 클래스 축에도 전혀 낄 수 없는 선수는 절대 아니다.[4] 호나우두는 월드컵 19경기 15골로 경기당 0.79이다. 그러나 경기당 득점률로 따지면 호나우두도 '''13경기 14골로 경기당 1.07을 기록한 게르트 뮐러나 6경기 13골로 경기당 2.17골을 기록한 쥐스트 퐁텐 앞에서는 닥치고 버로우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