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황후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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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화사황후 조씨(和思皇后 趙氏, ? ~ 675년)
중종의 영왕(英王)시절의 영왕비(英王妃)였다. 별칭은 공황후(恭皇后)이다.
아버지는 조괴(趙瑰)이고 어머니는 고조의 일곱째 딸인 상락공주(常樂公主)이다. 따라서 부군인 중종과는 친척 관계이다.
2. 생애
그녀는 위황후가 중종의 황후가 되기 전의 정실이었다. 고종은 며느리인 그녀를 마음에 들어했지만, 시어머니인 측천무후에게는 그다지 애정을 받지 못했다.
얼마 후 상락공주가 무측천에게 미움을 받게 되자 조씨는 이에 연루되어 유폐되고 이후 내시성에서 죽임을 당한다. 이후 그녀의 공석을 위황후가 영왕비가 되어 채운다.[1][2]
후에 중종이 제위에 복위한 후에, 위황후가 당 현종의 정변으로 폐위되어 중종을 홀로 태묘에 봉안하게 되자, 그녀를 중종의 황후로 하여 같이 부묘하였고 중종의 정릉(定陵)에 배장되었다.
3. 참고문헌
임사영, 류준형 옮김, 『황제들의 당제국사』, 푸른역사, 2016.
4. 둘러보기
[1] 사실 무측천에 의해 죽음을 당한 며느리는 더 있다. 당 예종의 부인인 유씨와 두씨가 그 사례이다.[2] 황사가 된 예종의 삶은 그다지 평온하지 못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무측천이 총애하는 여자 노비 위단아(韋團兒)가 이 우울해하는 황사를 마음에 들어해 사사로운 정분을 나누려 했다.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던 예종은 훗날 화가 될까 걱정해 그녀의 접근을 거절했다. 이로 인해 예종은 단아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고 그녀는 곧 예종의 비인 유씨와 덕비 두씨(현종의 생모)가 거주하는 곳에 나무인형을 몰래 묻어 두었다가 그들이 요법을 부려 무측천을 저주한다는 고발을 했다. 장수 2년(693)년 정월 2일 유씨와 두씨는 무측천을 알현하기 위해 입궁했다가 가예전(嘉豫殿)에서 죽임을 당했다. 이들은 궁궐 안의 비밀 장소에 묻히게 되었고 이후 아무도 이들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이들의 매장지는 이후에도 밝혀지지 않아 훗날 예종이 다시 황위에 오른 후에도 그저 혼을 부르는 의식을 거행한 후 장례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 두 부인이 돌연 실종되었지만 예종은 감히 무측천에게 물어보지도 못하고 그녀 앞에서 그저 아무 일도 없었던 마냥 태연한 척 할 뿐이었다. 임사영 <황제들의 당제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