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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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황운정(黃運正)
이명
황운정(黃云丁)
생몰
1899년 9월 11일 ~ 1989년 12월 31일
출생지
함경북도 온성군
사망지
카자흐스탄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황운정은 1899년 9월 11일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빈농 가정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는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19년 3월 함북 종성 및 온성 일대에서 발발한 3.1 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1920년 중국 지린성 오아청현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러시아로 이주하여 1920년부터 1922년까지 연해주 추풍 솔밭관 한족공산당 행정부원으로 활동했다.
1920년 6월 연해주 추풍에서 조직된 솔밭관 한족공산당은 러시아 내전 와중에서 연해주 주둔 일본군과 러시아 백위군에 맞서 싸웠으며, 러시아공산당과 적군을 지지하였다. 한족공산당은 주간신문『군성(群聲)』과 잡지『한살림』을 발행하여 항일선전과 맑스주의 보급에 노력하였다. 또한 ‘우리동무군’이라는 비정규 무장부대를 창설하여 일본군·러시아 백위군·중국인 마적부대들과 맞서 투쟁하였다.
황운정은 이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빨치산 활동을 수행했고, 1920년부터 1921년까지 일본군과 중국 동북 일대의 마적단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치렀다. 1921년에는 러시아 공산당에 입당해 연해주 한인청년혁명조직 서기로 선출됐다. 1922년 황운정의 부대는 인민혁명군과 함께 일제와 백위군으로부터 극동 지역을 탈환하기 위한 전투에 투입되었다.
러시아 내전 종결 후 경제활동에 종사했으나 이오시프 스탈린대숙청 때 일제의 부역배로 낙인 찍해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강제노동을 수행해야 했다. 1956년 하바롭스크 군사재판소에서 복권된 뒤 카자흐스탄에서 여생을 보내다 1989년 12월 3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황운정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9년 그의 유해를 국내로 봉환하여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