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문왕

 


'''진(秦)나라 30대 국군
제4대 왕
효문왕
孝文王
'''
'''생몰'''
기원전 302년 ~ 기원전 250년
'''재위'''
기원전 250년
''''''
영(嬴)
''''''
조(趙)
''''''
주(柱)[1], 식(式)[2]
'''군호'''
안국군(安國君)
'''부모'''
부왕 소양왕
'''왕후'''
화양부인
'''자녀'''
진 장양왕
1. 소개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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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진(秦)나라의 제30대 군주이자, 제4대 왕. 휘는 주(柱) 혹은 식(式). 기원전 250년에 즉위하여 딱 3일간 통치하고 죽은 비운의 군주.

2. 생애


소양왕의 차남이었지만, 장자였던 영탁(탁태자)이 위나라에 인질로 갔을 때 살해를 당해서 운이 좋게 태자가 되었다.
태자 시절에 안국군(安國君)이라는 칭호로 불렸다. 20명 이상의 자식이 있었는데 서자 중에 이인(異人)의 어머니인 하씨를 총애하지 않는 데다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이인을 조나라의 인질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정실부인인 화양부인과의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는데, 서자가 후계자가 되면 힘을 잃을 것을 두려워한 화양부인이 이인을 자신의 양자로 삼고 안국군을 설득하여 후계자로 삼는다.
효문왕 원년(기원전 250년), 소양왕이 사망하자, 죄인을 사면하고 소양왕 때의 공신을 표창하면서 친척들을 후대하고 정원을 개방했다. 소양왕의 상을 마치고 즉위했다가 3일 만에 사망했는데, 이인의 후원자였던 여불위독살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딱히 증거도 없고 사기색은에 따르면 소양왕이 장수했기 때문에 즉위 당시 효문왕의 나이는 53세였는데, 그냥 갈 때가 되어 갔다는 설이 주류이긴 하다. 당시 평균수명으로 보아 효문왕은 어차피 갈날이 멀지 않았고, 이미 영화가 보장되어있는 여불위 입장에서는 굳이 그런 무리수를 둘 이유가 없다. 거기다 50대 나이로 상을 치렀다면 몸이 망가질만도 하다. 고대에 50이면 요즘으로 치면 70세 이상의 고령이다. 그 뒤를 이어 아들인 자초(이인)가 진왕으로 즉위하였다.
[1] 사기색은(史記索隱)에 기록된 이름.[2] 광홍명집(廣弘明集)에 인용된 도공연기(陶公年紀)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