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순공주

 



'''조선 중종의 왕녀
효순공주 | 孝順公主
'''
'''이름'''
옥련(玉蓮)[1]
'''출생'''
1522년(중종 17년)
'''사망'''
1538년(중종 33년)
(향년 17세)
'''부왕'''
중종
'''모후'''
문정왕후 윤씨
'''부군'''
능원위 구사안(具思顔)[2][3]
'''자녀'''
친자 없음
(양자) 구홍(具宖)
'''묘소'''


강원도 춘천시 남면 추곡리 243-10
1. 개요
2. 생애


1. 개요


조선 중종의 적3녀. 어머니 문정왕후의 차녀로 명종동복 누나가 된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각종 사건 사고를 달고 다녔던 의혜공주, 경현공주에 비하면 별다른 이야기가 없는데, 이는 요절한 탓으로 보인다.

2. 생애


1533년(중종 28) 11세의 나이로 동갑이었던 감찰 구순의 아들 구사안을 부마로 맞이하였다. 구사안은 영응대군의 사위였으며, 중종반정을 도운 정국공신 구수영의 증손자였다. 또한, 구사안의 어머니 전주 이씨는 의신군 이징원의 딸이었는데, 모계 쪽으로 효령대군의 후손이었던 점 또한 부마 간택에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4]
이 때문인지 공주의 집을 지을 때 효령대군 옛 집의 목재와 돌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였고, 중종은 사용할 수 있는 목재와 돌은 사용하라고 승낙한 일이 있다.[5]
1538년(중종 33) 공주는 17세의 나이에 난산으로 사망하였다. 한편 부마는 재혼할 수 없고, 첩을 둘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효순공주가 세상을 떠나자 구사안은 첩을 두고 3남 2녀의 자식을 보았다. 이로 인하여 구사안은 부마의 직첩을 빼앗겼다.
[1] 선원록에 기재되어 있다. [2] 본관은 능성, 자는 중우(仲愚)이다. [3] 인조의 어머니 인헌왕후의 큰아버지가 된다. [4] 효령대군 이보-보성군 이합-평성군 이위-의신군 이징원으로 이어진다. [5] 중종실록 72권, 중종 27년 2월 2일 신사 1번째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