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평황후 왕씨

 




孝平皇后 王氏
원수 2(기원전 9)년 ~ 왕망 지황 4(23)년
전한 평제의 황후이자 전한을 찬탈하여 신나라를 건국한 왕망의 장녀.
평제가 9살의 나이로 즉위하자, 효원황후 왕씨는 태황태후의 자격으로서 섭정하여 왕망에게 정치를 위임하였다. 왕망은 곽광의 고사에 따라 자신의 장녀를 황제에게 시집보냈는데, 효원황후는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왕망이 꾸민 계책에 따라 효원황후는 결국 이를 부득이하게 허락했다.
왕망은 섭정이자 자신의 고모 효원황후를 바탕으로 하는 외척보정의 자격 이외에도 황제의 국구라는 지위를 얻어 자신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였다. 실제로 효평황후가 황후가 된 뒤, 재형(宰衡)이라는 칭호를 얻어 제후왕보다도 상위에 위치하게 되었다.
몇 년 뒤에 아버지 왕망이 평제를 독살하고 나이 2살의 유자영을 세우자 그녀는 황태후가 되었다. 이도 오래지 않아 왕망이 한나라의 제위를 끝내 찬탈하고 유자영을 정안공(定安公)으로 삼자 그녀는 정안공태후(定安公太后)가 되었는데 당시 나이 고작 18살이었다. 그녀는 자기 아버지에 의해 한나라가 무너진 것을 부끄럽게 여기어 병을 칭하며 나서지 않았는데, 왕망은 이를 경탄하면서도 안타까워하여 전한의 황후라는 자격을 지우고 자신의 황녀라는 의미로 황황실주(黃皇室主)라는 칭호를 주고는 개가시키고자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하였다.
이후 현한의 경시제가 군사를 이끌고 처들어 올 때 왕망을 주살하고서 놓은 불이 미앙궁(未央宮)까지 타오르자 그녀는 "내 무슨 면목으로 한나라 황실을 볼 수 있으리!"라고 하며 불 속으로 몸을 던져서 사망하였다. 그때가 향년 33세.
비슷한 처지의 인물로 북주의 황후→황태후였다가 그녀의 아버지인 외척 양견이 정제(靜帝)에게 억지로 선양을 강요하여 황제로 즉위해버린 탓에 낙평공주(樂平公主)가 되어버린 양려화(楊麗華)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