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혜황후 장씨

 



孝惠皇后 張氏
기원전 202년 ~ 기원전 163년
전한 혜제(전한)의 황후로, 장이의 아들인 선평후(宣平侯) 장오(張敖)와 고황후 여씨의 맏딸인 노원공주(魯元公主)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정사에는 이름이 없으나 당나라 때 사마정이 지은 『사기색은(史記索隐)』에서 서진 시절 황보밀의 지적을 인용하여 황후의 이름을 "장언(張嫣)"이라 하였고, 야사인 『한궁춘색(漢宮春色)』에서는 황후의 이름을 마찬가지로 장언(張嫣), 자는 맹영(孟英), 소자(小字)는 숙군(淑君)이라 하였는데 신뢰도에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혜제가 즉위하자 여태후는 친족을 중시하고자 하였고, 이에 자신의 외손녀이자 혜제에게는 조카뻘이 되는 황후를 맞아들였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하여 권력을 장악했던 여태후와 여씨 일족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혜제와의 사이에서 소생을 두지도 못하였다. 또한 혜제 사후에도 여태후로 인해 태후라 칭하지도 못하고, 그저 효혜황후라 불렸을 뿐이었다.
이러한 처우는 여태후 사후 여씨 일족이 제거되고 문제(전한)가 즉위한 이후에도 북궁(北宮)으로 제한되어 생활하였지만 문제의 형수로서 여전히 효혜황후로 예우를 받았다.
이후 문제 후원(後元) 원(기원전 163)년 봄 3월에 병으로 사망하니 혜제와 함께 안릉(安陵)에 합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