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와라노 요리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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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藤原 賴經 (ふじわら の よりつね)'''
1. 개요
후지와라(藤原) 가문 출신의 가마쿠라 막부의 제4대 쇼군.
8세에 호조 가문에 의해 쇼군으로 옹립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쇼군의 정무를 대리하는 싯켄 호조와 정치적 실권을 두고 대립하기 시작했지만, 싯켄 호조에 의해 강제로 해임되어 아들에게 쇼군 직을 양위하고 물러나야 했다. 이후 복귀를 꾀하다 실패하여 교토로 추방되었다. 별칭은 '미토라(三寅)', 쿠조 요리츠네.
2. 생애
후지와라노 요리츠네는 1218년 쿠조 가문의 3대 당주 쿠조 미치이에(九条道家)와 사이온지가 출신인 노리코(倫子) 사이의 3남으로 태어났다.[1] 3대 쇼군 미나모토노 사네토모가 후손 없이 시해되자 쇼군 후계자로 선택되어[2] 2살 때 가마쿠라로 옮겨왔다. 하지만 1221년 고토바 상황이 막부 토벌을 위해 군사행동을 일으키는 등 어수선한 정국 분위기로 인해 8세에 관례를 올리고, 9세에 가마쿠라 막부 4대 쇼군에 임명되었다.
전임 쇼군이었던 미나모토 사네토모가 조카 구교에 의해 살해되면서 겐지 쇼군가의 대가 끊기자 호조씨는 쇼군을 황족 출신으로 정했으면 한다는 상주문을 지어 교토로 보냈다. 그러나 고토바 상황이 반대하여 결국 요리츠네가 쇼군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다 이미 쇼군의 정무를 대리하는 싯켄(執権) 호조 가문에서 막부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탓에 요리츠네는 정치에 관여하기가 어려웠다.
나이가 들면서 요리츠네는 싯켄 호조 가문의 정권 장악에 불만을 갖기 시작했고, 조금씩 정치에 관여하고자 하면서 호조 가문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측근이던 호조 미쓰토키나 미우라 야스무라 및 싯켄 정치에 불만을 갖고 있던 이들과 힘을 합쳐 차츰 세력을 키워갔다. 이에 위협을 느낀 싯켄 호조 쓰네토키는 1244년 요리츠네를 쇼군의 자리에서 해임하였다.
쇼군의 자리에서 물러난 요리츠네는 형식적으로는 출가를 하여 ‘행하’라는 법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마쿠라에 머물면서 자신의 뒤를 이어 쇼군의 자리에 오른 아들 요리츠구를 보좌하며 영향력을 행사했다. 1246년에는 나고야 미쓰토키 등 호조 가문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싯켄 호조를 무너뜨리고 요리츠네를 다시 쇼군으로 옹위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은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로 끝났으며, 츠네토키의 뒤를 이어 5대 싯켄이 된 호조 도키요리는 요리츠네를 교토로 추방했다.
요리츠네의 교토 송환 이후 1252년에는 그의 뒤를 이어 쇼군이 된 아들 요리츠구도 쇼군 직에서 해임되면서 천황의 후견인 섭정 · 관백을 세습하는 섭관가(攝關家) 출신 쇼군은 이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요리츠네는 1259년 39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는데, 그 다음 달에 아들 요리츠구도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