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

 


11회

12회

13회
1972 삿포로 동계올림픽

1976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

1980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Olympische Winterspiele 1976'''
'''XII Olympic Winter Games'''
[image]
대회기간
1976년 2월 4일 ~ 1976년 2월 15일
개최국가/도시
오스트리아 / 인스브루크
마스코트
슈니먼[1]
참가국
37개국
참가선수
1,123명
(남자: 892명, 여자: 231명)
경기종목
6개 종목, 37개 세부 종목
개회 선언자
루돌프 키리히슐레거
오스트리아 대통령
선수 선서
베르너 델레 카르트
심판 선서
빌리 쾨스팅거
성화 점화
크리스틀 하스
요제프 파이스트만틀
개·폐회식장
베르기젤
1. 소개
2. 유치
4. 기타


1. 소개


1976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개최된 동계올림픽.

2. 유치


1976년 올림픽 유치 투표 과정
국가
도시
1차투표
2차투표
3차투표
결과
'''미국'''
'''덴버'''
'''29'''
29
'''39'''
'''유치 선정'''
스위스
시옹
18
'''31'''
30
유치 탈락
핀란드
탐페레
12
8
-
유치 탈락
캐나다
밴쿠버
개러볼디[2]
9
-
-
유치 탈락

원래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는 올림픽 유치 신청조차 하지 않았다. 1970년 IOC 총회에서 선정된 원래 개최지는 미국 콜로라도 주덴버. 그런데 환경문제와 시설 건설비용이 오일쇼크로 인해 당초 예상보다 300% 이상 급증하자 덴버 시장주민투표를 제안하여 주민투표에서 '''유치권 반납'''을 의결했다. 주민투표에서 올림픽 유치권 반납을 의결한 전무후무한 일로, 이로 인해 유치권을 반납받은 IOC는 고민에 빠졌다.
한편 1974년 단독후보로 선정된 미국 레이크플래시드1980년 대신 1976년 올림픽을 개최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해왔으나 IOC는 일단 거부하였고,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역시 신청을 했으나 IOC는 당근 거부. 유치전에서 덴버와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스위스(시옹)와도 접촉을 하였으나 스위스가 거부하였다. 제1회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프랑스 샤모니도 유치신청을 낸 상황. 여러모로 고심을 거듭한 끝에 IOC는 1964년 올림픽을 개최한 적이 있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 유치권을 주게 된다. 이로써 인스브루크는 불과 12년 만에 다시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다.
인스브루크에 유치권이 돌아가게 된 이유는 좀 복잡한데, 올림픽 일정을 최대한 유지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덴버 측에서 반납 시 미국 콜로라도 덴버와 가장 유사한 기후적 특징을 보이는 도시를 선택하라는 반납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IOC는 이 반납 조건에 맞는 도시를 여러곳 수소문했으나 선택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인스브루크가 덴버와 기후가 비슷해서 유치권이 이리로 돌아간 것. 덕분에 인스브루크는 이후 미국 동계스포츠 선수단들의 전지훈련지로 각광받게 된다.

3.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성적


■ 1976 12회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 (1976 Winter Innsbruck Olympics)
[image]

4. 기타


  • 중국 참가 문제로 계속 시끄러웠다. 중화민국이 중국을 대표하는 IOC 팀으로 참가하였다. 중화 타이베이가 아닌 중화민국으로 참가한 마지막 대회.
  • 위에 서술한 내용대로 우여곡절 끝에 유치한 올림픽이었지만 나름대로 잘 치러진 올림픽이었다. 결과적으로 인스브루크는 1964 인스브루크 동계올림픽에 이어서 2번 동계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가 되어 서유럽지역의 동계 스포츠 중심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 하지만 여러 차례 제기되었던 동계 올림픽 무용론이 다시 대두되었다. 우선 중국 국호 문제로 논란이 계속되었고, 개최지로 확정된 곳에서 자진하여 개최권을 반납하는 사고를 터뜨려 개최지가 변경되는 소동을 빚었다. 그리고 오륜마크가 무색하게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한 나라도 참가하지 않아 세계적으로 고작 37개국만 참가하는 데 그쳤고, 그 중에서 북미유럽 선수들만 메달잔치를 벌여 동계 올림픽 저변 확대 시도도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여러 문제점이 제기되어 동계 올림픽 무용론이 대두되었다.
  • 대한민국에서는 세계 주니어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에서 우승한 이영하[3]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5000m에서 11위를 하여 당시 동계올림픽 출전 사상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다만, 기대했던 메달은 획득하지 못하여 여전히 높은 세계의 벽을 확실하게 실감하였다.
  • 마스코트는 티롤 눈사람 Tyrolean snowman 였다. "대회의 간단함"을 상징한다고.
  • 리히텐슈타인이 동메달 2개를 확보하며 다음 해의 대박을 예고하였다.

[1] 독일어로 눈사람 이라는 뜻[2] 개러볼디 산맥(Garibaldi Ranges)을 말한다. [3] 이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기도 했다. 2019년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