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 삿포로 동계올림픽
1. 소개
1972년 일본 삿포로에서 개최된 동계 올림픽으로서 아시아 지역 최초의 동계 올림픽이며 유럽과 미국 외의 지역에서 개최된 최초의 동계 올림픽이다.
2. 유치
원래 일본 삿포로는 1940년 동계 올림픽 개최 예정지였다. 그러나 중화민국에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본 제국은 1940년 삿포로 올림픽 유치권을 박탈당했다. 1940년 동계 올림픽 유치권은 스위스를 거쳐 독일로 넘어갔으나, 1940년 동계 올림픽 개최 몇 달 전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 대전이 터지자 아예 취소되었다.
그 후 1966년 일본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동계올림픽을 유치해야 한다는 읍소 작전으로 1972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신청, 개최지 선정 투표에서 높은 득표율을 얻으며 유치에 성공했다.
일본 삿포로는 사실 투표에서 과반수에 미치지 못했는데도 개최지로 선정되었다. 당시 선거권이 있던 총 IOC 위원 수는 64명으로 무효가 2표 있어서 삿포로는 딱 50%. 과반수에 1표가 모자랐다. 하지만, 1차 투표 발표 이후 2차 투표를 위해 라흐띠, 솔트레이크시티가 동반 탈락하게 됐는데, 캐나다 밴프까지 그냥 동반 사퇴를 하여 단수 후보로 삿포로가 남아버린 것.
3. 대한민국 동계올림픽 성적
■ 1972 11회 삿포로 동계올림픽 (1972 Winter Sapporo Olymp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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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타
- 삿포로는 역대 동계 올림픽 개최지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로, 개최 당시에도 이미 인구가 100만을 넘던 대도시였다. 다만, 광역권까지 포함할 경우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과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토리노와 밴쿠버 광역도시권의 인구가 더 많다. 하지만 차후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개최되면 2100만명이 넘는 베이징의 압도적인 인구 앞에서 기록이 새로 쓰일 예정(...)
- 네덜란드의 스헹크가 남자 스피드 스케이팅 3관왕에 올랐다. 이외에도 네덜란드는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 1개를 더 추가하는 등 스피드 스케이팅 한 종목에서만 모두 금 4, 은 3, 동 2를 따서 종합 4위에 오르는 대단히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 스키점프 남자 노멀힐 경기에서 일본 선수들이 금, 은, 동메달을 휩쓸었다[1] .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고 다른 종목은 노메달. 11위로 체면 치례만 했다. 그래도 금메달리스트 카사야 유키오는 유럽과 북미 이외의 지역 출신 선수로는 처음으로 동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 우승은 1위 탈환을 벼르고 있던 소련이 금 8, 은 5, 동 3으로 멋지게 1위에 복귀를 했고, 동독이 금 4, 은 3, 동 7으로 2위가 되었다. 스위스가 금 4, 은 3, 동 3으로 3위였다. 전년도 우승국인 노르웨이는 다시 금 2, 은 5, 동 5으로 메달 수로는 3위였지만 전체 순위는 7위로 부진했다.
- 이번에도 대회 전부터 분단국인 한국과 중국 참가문제로 시끄러웠다. 한국은 대한민국이 계속 한국(Korea)으로 참가하고,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 Korea)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참가하게 되었다[2] . 중국은 이번에도 중화민국(타이완)이 IOC를 대표하였고, 처음으로 동계올림픽에 참가하였다. 독일은 1968년 동하계 올림픽 때 이미 각각 독일민주공화국(동독)과 독일연방공화국(서독)으로 따로 참가하기로 합의를 보아 참가한 바 있고, 이번 대회부터는 각각의 국기도 별개로 사용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동독 국기가 올림픽에서 최초로 게양된 대회가 된다[3] . 또한 이때부터 동독의 경이적인 메달 획득이 두드러지게 된다.
- 앞서 언급한 중화민국 외에 열대지방 국가인 필리핀이 동계 올림픽에 처음 참가하여 눈길을 끌었다. 아시아에서 열려 동계올림픽 저변 확대를 기대했으나, 참가국 수는 오히려 전대회보다 줄어들어 35개국만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