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 AFC 아시안컵 이란
1976 AFC ASIAN CUP
아시아 축구 연맹 주관의 AFC 아시안컵 6회 대회
1. 경기장
2. 진행 방식
- 개최국이면서 지난대회 우승팀 이란에게 자동 출전권이 주어졌다. 남은 5장의 본선 티켓을 놓고 14개국이 예선에 참가하였다.
- 아시안컵 예선은 4개조로 나뉘어 각 조 1,2위팀이 본선에 진출한다.
- 본선에선 원래 8개팀으로 치러야 하나 3개팀이 기권을 선언하는 바람에 3개팀 2개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실시하여 각 조 상위 1,2위팀이 4강에 진출한다. 4강부터는 토너먼트로 실시한다.
- 1976년 6월 3일 쿠웨이트와 말레이시아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결승전인 6월 12일까지 약 2주간 진행된다.
3. 지역예선
당초 그룹 편성은 다음과 같다.
- 그룹1 : 이란, 쿠웨이트, 남예멘, 바레인, 레바논, 파키스탄[2] , 시리아
- 그룹2 :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이라크,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방글라데시, 인도, 요르단, 네팔
- 그룹3 : 브루나이, 홍콩[3] ,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버마, 스리랑카
- 그룹4 : 일본, 중국, 대한민국, 베트남 공화국, 이스라엘, 크메르 공화국, 라오스, 필리핀
- 그룹1 : 쿠웨이트, 남예멘
- 그룹2 :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이라크,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 그룹3 : 브루나이, 홍콩, 중국, 북한, 일본, 싱가포르
- 그룹4 : 말레이시아, 태국, 대한민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공화국
3.1. 그룹1
바레인, 레바논, 파키스탄, 시리아가 모두 기권하여, 남은 두팀 '''쿠웨이트'''와 '''남예멘'''의 본선 자동진출이 확정되었다.
3.2. 그룹2
1975년 4월 2일~1975년 4월 14일까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개최되었다.
홈&어웨이 방식의 풀리그로 진행되었다.
카타르, 아프가니스탄 공화국, 사우디 아라비아는 예선 첫출전이었고, 이미 지난 대회 본선출전 경험이 있는 이라크는 홈버프에 힘입어 예선을 매우 쉽게 풀어나갔다. 사우디 역시 만만치 않은 전력을 자랑하며 2위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사우디 아라비아는 예선 종료이후 기권을 하게되어, 그룹2의 본선진출국은 '''이라크''' 단독 진출이 되었다.
3.3. 그룹 3
그룹 3은 6팀이라 3팀씩 2조로 나뉘어 풀리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1975년 6월 14일~26일까지 홍콩 정부 경기장에서 개최되었다.[4]
- 그룹 배정경기
3.3.1. 그룹리그
브루나이는 사실 전력이 좋을 리가 없었고, 그룹배정경기까지 합하면 19실점을 하며 광탈.
홍콩은 결국 동아시아 팀과 경기를 가지게 되었으나, 브루나이라는 승점자판기 덕분에 최하위를 면하며 다음 토너먼트로 진출했다. 대회 첫출전의 중국은 그룹배정경기부터 북한을 꺾고, 브루나이를 상대로 무려 10골을 득점하며 기대를 모았다.
중국과 홍콩이 다음 토너먼트로 진출했다
10년전 월드컵 8강에 진출했던 북한이 아시안컵 예선에 첫등장했고, 2승을 따내며 다음 라운드에 진출했다. 일본은 북한에게 패했지만, 오치아이와 나가이의 골로 싱가폴을 제압하며 2위로 진출.
북한과 일본이 다음 토너먼트로 진출했다
3.3.2. 준결승전
중국은 리 유티에, 크 우샹의 연속골로 아라이의 만회골에 그친 일본을 가볍게 제압하고 결승진출, 북한은 홍콩과 3골씩 주고받는 난타전끝에 승부차기에 돌입했고, 각각 11명의 선수가 승부차기를 한끝에 북한이 결승에 진출했다.
3.3.3. 3,4위전, 결승전
와타나베의 골로 일본이 3위, 북한은 그룹배정경기에서 패배를 안겨줬던 중국을 2-0으로 제압하며, 북한이 우승했다. 북한과 중국의 첫 본선진출이 결정되었으나, 북한이 기권하며 '''중국'''만 대회에 나서게 되었다.
3.4. 그룹 4
5개의 팀이 풀리그로 경기를 치러 상위 2개팀이 본선에 진출했다.
1975년 3월 15일~24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개최되었다.
동남아시아의 반란이라고 불릴정도의 예선이었다. 지난 대회를 개최하며 본선에 올랐던 태국은 말레이시아에게만 패했고, 특히 대한민국을 최종전에서 1-0으로 꺾으면서 2회연속 진출을 달성했다. 말라야 반도시절부터 꾸준히 예선에 참가했던 말레이시아는 가장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조 1위를 차지하며 첫 본선진출을 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은, 최종전 태국전에서 원정경기의 어려움끝에 패배하며 탈락하게 되었다. 나름 아시안컵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베트남 전쟁을 치르면서 정상적인 전력을 구리기 어려웠던 베트남 공화국을 상대로도 1골밖에 못넣는든 예선 내내 빈공에 시달렸던게 패인. 초대대회때부터 매번 예선 참가했던 베트남 공화국이 마지막으로 예선에 참가한 대회다.
말레이시아와 태국이 본선에 진출했다. 그러나 태국이 이후 기권하여, '''말레이시아''' 단독진출이 되었다.
4. 본선 진출국
5. 진행 경과
5.1. 조별 리그
5.1.1. A조
A조의 경기는 타브리즈, 바그 소말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쿠웨이트는 첫경기부터 알 안베리, 알다킬의 골로 말레이시아를 대파했고, 중국과 말레이시아는 다하리, 왕 지리안의 골을 서로 주고받으며 대회 첫승점을 획득했다. 쿠웨이트는 중국마저 파티 카멜의 골로 이기며 조선두로 진출, 1골 차이로 중국이 말레이시아를 제치고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쿠웨이트'''와 '''중국'''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5.1.2. B조
B조의 경기는 테헤란 아리아메르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개최국 이란은 라이벌 이라크를 나세르 누레이, 로샨의 골로 가볍게 제압하며 아시안컵 10연승을 달성했다. 이라크는 첫출전의 남예멘을 상대로도 빈공을 보이다가 후반 왈르의 골로 간신히 승점을 따냈다. 남예멘은 마지막경기에서도 이란에게 8골이나 두들겨 맞으며 승점을 거두지 못한체 탈락했다. 골람 후세인 마즐루미는 이번 대회 첫 헤트트릭을 달성했다.
'''이란'''과 '''이라크'''가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5.2. 토너먼트
이후 경기는 테헤란 아리아메르 스타디움에서 개최되었다.
5.2.1. 준결승 1경기 쿠웨이트 3 - 2 이라크
1976년 6월 11일
전반 11분에 터진 이브라힘의 골에 이라크는 끌려가기 시작했으나, 후반 시작하자마자 압둘 잘릴의 만회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린다. 파티 카멜이 77분 골을 터트리고, 이라크의 하산이 다시 85분에 골을 터뜨리며 연장전에 돌입했다. 두번째 골의 주인공 파티 카멜이 연장전에 다시 대회 3호골을 터뜨리며 쿠웨이트가 사상첫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5.2.2. 준결승 2경기 이란 2 - 0 중국
1976년 6월 11일
개최국이자 디펜딩챔피언이며 아시안컵 11연승의 강자 이란을 상대로 실점을 하지않고 잘버텨 연장전에 돌입했으나 연장전에서 코르시디, 로샨의 골에 패배했다.
5.2.3. 3-4위전 중국 1 - 0 이라크
1976년 6월 13일
중국은 허 지아의 골로 이라크를 제압하며 아시안컵 첫 승리를 거두었고, 첫출전에 3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대회를 마무리 했다.
5.2.4. 결승전 이란 1 - 0 쿠웨이트
1976년 6월 13일
두팀다 조 1위로 본선리그를 통과하고, 연장전을 치르는 고난끝에 결승에 진출했지만, 파르빈의 골에 힘입어 홈팀 이란이 아시안컵 13연승이라는 괴물같은 성적과 함께 아시안컵의 유일한 3연패 국가로 남게 되었다.
6. 결과
- 득점왕 : 나세르 누레이(1954~)(이란), 골람 후세인 마즐루미(1950~2014)(이란), 파티 카멜(1955~)(쿠웨이트) 3골
- 최우수선수 : 알리 파르빈(1946~)(이란)
7. 이야깃거리
- 개최국 이란은 전승 무실점으로 우승하며 3개 대회 연속으로 우승하였다. 지난 두개대회까지 본선에서 13경기를 치뤄서 단한번도 비기거나 지지않고 모두 이기며 70년대 아시아 최강자임을 증명했다. 아시안컵 13연승이라는 대기록과 더불어 3회 연속 득점왕 배출은 덤.
- 상술했듯이, 기권 한번 없이 꾸준히 예선을 치뤘던, 베트남 공화국이 마지막으로 참가했던 대회다. 본선진출에는 실패했지만. 1975년에 3월 23일에 치룬 말레이시아와의 예선경기가 마지막 경기로, 이유는 한달뒤인 4월 30일 나라가 정말 멸망해버렸기 때문이다.
- 남예멘 역시 처음이자 마지막 본선진출로, 12년뒤 한번더 본선진출을 도전하지만, 실패했고, 이후 예멘에 흡수 통일되었다. 결국 승점 1점, 득점 1점을 못한채 사라졌다.
- 꾸준히 예선에 참가했던 중화민국 축구대표팀이 참가하지 못했는데, 이유는 AFC에서 축출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의 대회 참가가 가능했던것. 16년뒤에야 복귀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전대회 항목에 서술한대로, 이번대회 예선에서 축출당한뒤로 영원히 AFC와는 바이바이 하게되었다.
- 결승전의 관중수는 만석인 10만명. 깨지지 않을 기록이다.
- 대한민국이 예선 탈락해서 참가하지 못한 두번째 대회다.
[1] 1974년 아시안 게임을 위해 건설되었으며,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에는 현재의 이름인 아자디 스타디움으로 불리고 있다.[2] 본래 그룹 2에 가야하지만, 그룹2의 인도와 경기를 거부 하여 그룹1로 편성되었다.[3] 지정학적 위치는 그룹4가 맞으나, 그룹3으로 분류되었다. 베트남 공화국, 크메르 공화국, 라오스 조차도 그룹4로 분류되었건만. 이렇게 피해갔지만.....[4] 제 1회 아시안컵이 열렸던 그 경기장이다.[5] 현대회 본선진출 제외 횟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