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image] '''이라크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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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공화국'''
''' جمهورية العـراق | كۆماری عێراق'''

'''Republic of Iraq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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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국기'''
'''국장'''
'''الله أَكْبَر'''
'''Allahu Akbar'''
'''신은 위대하시다'''
'''국가 정보'''
<colbgcolor=#cf0921><colcolor=#fff> '''국가(國歌)'''
나의 조국
'''면적'''
438,317 km²
'''인구'''
41,179,358명(2021년) | 세계 36위
'''수도'''
바그다드
'''공용어'''
아랍어, 쿠르드어
'''정치 체제'''
공화제, 의원 내각제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중 '''118위'''(2020년)[권위주의]
'''대통령'''
바흐람 살리
'''총리'''
무스타파 알카드히미
'''시간대'''
GMT+3
'''민족'''
아랍인 75%~80%, 쿠르드족 15%~20%, 기타 5%
'''전체 GDP'''
2,259억 달러(2018년)
'''1인당 GDP'''
명목 6,900$, PPP 7,100$(2014)
'''국부'''
$3,270억 / 세계 55위(2019년)
'''화폐단위'''
이라크 디나르 (D)
'''남북수교현황'''
'''단독수교'''(대한민국: 1981년, 북한: 1968년 수교, 1980년 단교)
'''여행경보'''
'''여행금지 : 전 지역'''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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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징
2.1. 국기
2.2. 국가
4. 인문환경
4.1. 언어
4.2. 종교
5. 행정구역
10. 문화
10.1. 관광
10.2. 스포츠
11. 기타
12. 이라크 국적, 출신의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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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공화국. 수도는 페르시아어로 '신의 선물' 이라는 의미의 바그다드. 1932년에 영국에서 독립했고 영국이 들어오기 전에는 오스만 제국의 땅이었다. 고대에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라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이 대부분 이라크 땅이다.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강인 유프라테스 강티그리스 강이 모두 이라크 전국을 지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대 오스만 전선에 아랍인들을 이용하고자 무함마드의 자손이며 메카의 샤리프(شريف, 귀족)였던 후세인 이븐 알리(حسین بن علی)와 협상을 벌여 1915년 아랍인의 독립 국가를 건설해주겠다는 '맥마흔 선언' 을 발표하고 아랍 반란을 이끌어낸다.[1]
▼ 현대의 이라크에 대한 정리된 영상이다. 쿠르츠게작트의 것.


2. 상징



2.1.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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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왕국 시기의 국기(1932~1959). 요르단 국기와 매우 유사하다. 그도 그럴 게 당시 이라크 왕실은 요르단과 같은 가문인 하심 가문이었으며, 요르단과 이라크는 혈맹+형제국으로 매우 우호적인 사이었다. 뭐 1958년 쿠데타로 이라크에서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국이 된 현재에도 이라크와 요르단의 관계는 나쁘지만은 않다. 국기에 들어있는 7각별 두 개는 이라크의 주요하천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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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심 장군의 쿠데타 이후 들어선 공화국 정권(1959~1963)의 국기. 1963년 바트당의 쿠데타로 카심 정권이 전복될때까지 약 5년밖에 사용되지 못 했다. 아랍국가의 국기이면서도 국기 중앙에 이라크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민족 상징인 태양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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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당 쿠데타 이후의 국기(1963~1991). 가로 적백흑의 삼색기 안에 초록색 별 3개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 국기 안에 들어간 초록색 별 3개는 원래 이라크의 아랍 연합 공화국(이집트와 시리아가 결성한 연합 공화국) 참가 구상을 상징했었으나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사담 후세인 정권 초기였던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쓰였으며, 같은 시기 바트당의 쿠데타로 바트당이 집권했던 이라크의 이웃나라 시리아에서도 1960년대에 이 국기를 사용했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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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 전쟁 당시에 제정된 국기(1991~2004). 1990년 쿠웨이트를 상대로 걸프전쟁을 일으킨 와중에 전쟁 발발 이듬해인 1991년에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별 사이에 아랍어 문자인 알라후 아크바르를 추가해 새로 개정했으며 초록색 별의 상징도 바트당 정부의 슬로건인 "통일, 자유,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사담 후세인 독재 정권 말기까지 사용되었다. 사담 후세인이 물러난 이후 2004년 초기까지도 잠시 쓰이기도 했었으며 그러다가 2004년 8월 5일에 문자 형태를 약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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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에 쓰던 국기(2004~2008). 별 사이에 새겨진 아랍어 문구의 글씨체가 고대 아랍어 문자인 쿠픽체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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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국기.''' 2008년에 바뀐 것이다. 이전에 사용하던 국기에서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이 이끌던 바트당의 슬로건인 '통일, 자유, 사회주의' 를 뜻하는 세 개의 초록색 별을 삭제하고 'الله أكبر (알라후 아크바르)' 라는 문구만 남기었다. 사실 후세인 정권 시기 억압받았던 이라크의 쿠르드족들이 별이 그려진 후세인 시대때 사용되어 온 이라크 국기 사용에 격렬하게 반대했었고, 후세인 축출 후 새로 집권한 이라크 정부 측에서도 후세인 잔재를 없애자며 2008년에 국기 개정을 추진해 결국 초록색 별 3개를 삭제하고 별 사이에 끼워져 있던 아랍어 문구만 남기고 개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라크 내 일각에서는 이 국기가 너무 밋밋하고 국가를 상징하는 상징성이 없는 깃발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다, 원래 초록색 별이 그려진 이라크의 국기는 후세인 집권 이전에도 썼는데 왜 삭제를 했냐며 별 3개와 쿠픽체로 수정된 아랍어 문구가 그려진 2004년 후세인 축출 이후 제정된 국기를 다시 부활시켜서 국기 안의 초록색 별의 상징을 새롭게 변경, 적용하거나, 알라후 아크바르 문구를 지우고 1963년에 제정된 별 3개만 그려진 이전 이라크 국기를 다시 꺼내서 쓰거나, 옛날 하심 왕정 시대때 쓰던 국기를 다시 국기로 제정해 쓰거나,[3] 이도 저도 아니면 1963년 이래 쓰던 기존의 적백흑 3색기 국기를 없애고 새로 국기를 제정하자는 의견들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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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제안되었던 새 이라크 국기. 이 새로운 국기는 아랍권에서 외면하던 월성기를 이슬람권이라는 이유로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 이라크인들은 물론 이라크군이나 친미 정부 수반들조차도 아예 거들떠도 안 보고 듣보잡 취급하여 잊혀졌다.
실제로 이라크군 공식 행사에서 이 국기를 매달자 그 자리에 있던 친미 수반들이 벌떡 일어나서 당장 내리라고 항의했고 군인들도 노려보는 탓에 미국 측이 놀라 이 깃발을 내리고 종전 깃발을 할 수 없이 매단 적도 있다.
이는 하얀색-파란색 배치가 적대 국가인 이스라엘의 국기를 연상시키는 점도 한 몫 했거니와 초승달을 보통 노랑, 녹색, 빨강, 흰색으로 칠하고 파란 초승달은 찾아볼 수 없는 이슬람권의 배경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만들었다. 사실 파란 배경에 초승달이 들어간 국기는 우즈베키스탄이나 위구르, 혹은 이라크 투르크멘처럼 튀르크권에서는 꽤 흔한 편이고, 아예 1930년대 동투르키스탄의 국기처럼 파란 초승달이 들어간 국기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파란색은 튀르크족의 상징색처럼 쓰인 거라 아랍권 국가인 이라크에서 사용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초승달과 별이라는 디자인 자체도 월성기 항목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튀르크계 국가들이 국기로 주로 쓰기 때문에 서아시아의 아랍권 나라에선 이 국기를 하나도 쓰지 않으며 오히려 오스만 제국 시절에 탄압받은 적이 있어 이 문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4] 그런데 그걸 모르고 그저 "초승달=이슬람"일 것이라고 무지로 만들어 낸 미국의 실수다. 그래서 이 깃발은 하루도 매달지못한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2.2. 국가




이라크의 국가 موطني(나의 조국)은 팔레스타인의 유명 시인 이브라림 투칸이 쓴 시에 곡조를 붙인 노래이다. 이 노래는 팔레스타인에서 사용되다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 붕괴 후 국가로 사용되고 있다.

3. 역사





4. 인문환경



4.1. 언어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쿠르드어쿠르드족 자치구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그리고 주요 외국어는 영어이다.

4.2. 종교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절에는 수메르 신화, 아카드 신화, 바빌로니아 신화 같은 토착 신앙이 주류였으며, 아케메네스 왕조, 파르티아,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을 때는 페르시아인의 영향을 받아 조로아스터교로 개종하는 이들도 존재했다.[5] 그러다가 이라크와 이란 모두 이슬람 제국에 정복되면서 두 나라 모두 이슬람교가 주류 종교가 되었다.
군부 독재시절에는 소수라고 해도 기독교인들은 차별이 있을지언정 같이 공존했고 이슬람 과격파가 여기 시설을 공격하면 세금으로 복원하고 범인들을 응징하였다. 과격파들에겐 어차피 군부 독재자도 적이기에 후세인에게도 적이기 때문이었고 소수 종파를 배려하여 자신을 지지하게 만들면 나쁠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세인은 수니파 지도자고 이라크의 다수 종교는 시아파라는 사정도 있다.[6] 덕분에 집시들도 이라크에선 그럭저럭 지낼 만 했으며, 그 밖에 야지디교라든지 바하이교 같은 소수 종파들도 공존했다.
사실, 이런 것은 특별한 현상은 아니고, 종교의 영향을 슬슬 벗어난 단계의 근대 서구 문화와 탈교권이 진행된 국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국민교육을 통해 종교불문하고 국민의 힘을 통합해 국가 역량을 키우고, 분리독립의 싹을 자르며, 정교분리 및 정권에 도전하는 조직화된 반대 세력의 성장 견제 등. 독일 제2제국의 비스마르크도 종교정당과의 투쟁이 독일 통일 자체보다 더 오래 애쓴 과제였고, 19세기까지의 프랑스는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획득한 영토와 말이 많이 다른 지방에 표준어를 보급해 국민을 통합하는 데 열심이었다. 독재정권의 생존 방편이기도 한 이 세속주의 정책은, 나름 탈종교 근대화 수순으로서도 기능하고 있었으나, 반대로 아직 일반 국민의 의식은 여전히 종교에 크게 의지했기에, 멀게는 이란 혁명 가깝게는 전쟁과 아랍의 봄과 터키 쿠데타 등을 거치며 세속주의를 추종하는 구 정권이 권좌에서 내려오자 이 지역 거의 모든 국가에서 종교에 심취하려는 역풍을 맞고 있기도 하다.
미군 철수 이후 시아와 순니 이외 소수 종교에겐 지옥이 열렸다.[7] 기독교의 경우 칼데아 가톨릭이나 아시리아 동방교회 같은 토착 종파가 있었고, 1997년 통계에 따르면 신도가 130만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2015년엔 그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기독교계 이라크 국회의원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에 이은 헬게이트가 없었다면 이라크 내 기독교 인구는 지금쯤 200만 명을 돌파했었으리라고 탄식하였다.
또한 대다수인 시아파(인구 60% 이상)가 득세하면서 골치를 겪고 있다. 2012년 와서 정치수반인 알 말리키(시아파)가 순니파인 알 무틀라크 부총리와 부통령인 알 하셰미 탄핵 및 구속을 이뤄냈고 순니파가 다수인 쿠르드인 지역에 간섭하면서 말이 많았다. 이라크 내 순니파에선 이란의 원조를 받는 시아파가 득세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내전 양상이란 세간에 널리 퍼져있는 잘못된 인식과는 달리 실질적으로 일반 국민들간의 종파간 갈등은 미미한 편이고 도리어 '''옆동네 시리아 내전의 불똥이 튀어 외국에서 테러 단체들[8]의 유입과 그로 인한 묻지마 차량 폭탄 테러로 신음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무슬림이든 비무슬림이든간에 일반 시민들은 테러하면 아주 학을 떼며 질색해하는게 일반적인 정서다. 2010년대에도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테러가 벌어지고 있는 판이고 중부지역에서도 테러가 펼쳐지던 2000년대 중 후반 당시에는 하도 테러사고가 연달아 벌어지다보니 버스나 자동차도 목숨잃을까봐 조마조마하면서 타는건 물론이고 축제 때도 테러가 벌어지는 판이었으며[9] 테러 때문에 치안도 덩달아 나빠져서 인프라 사업 재건도 지지부진했으니[10] 일반인들이 테러에 질색하는건 당연한 일이다.[11]에 이라크 및이란에서 오래전부터 거주하던 기독교 및 소수 종교인들은 꽤나 고생 중.
#그런데 2018년 12월 이라크 정부가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기독교 기념일인 성탄절을 국경일로 지정했다. 이라크 내각은 성탄절을 일부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이라크 전체 국민이 쉬는 휴일로 정하는 국경일법 개정안에 승인했다. 사실 법 제정 전에도 이라크 기독교인들은 자체적으로 성탄절을 휴일로 지켜왔다.
대중들은 이슬람에 미친 나라라고 알고있으나 현실은 개종이 불법이 아니며 샤리아를 기반으로한 법이 아닌 대륙법을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법적으로도 무신론도 불법은 아니라고 한다.

5.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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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그다드 주 (바그다드)
2. 살라딘 주 (티크리트)
3. 디얄라 주 (바쿠바)
4. 와시트 주 (쿠트)
5. 마이산 주 (아마라)
6. 바스라 주 (바스라)
7. 디카르 주 (나시리야)
8. 무탄나 주 (사마와)
9. 카디시야 주 (디와니야)
10. 바빌 주 (힐라)
11. 카르발라 주 (카르발라)
12 나자프 주 (나자프)
13 안바르 주 (라마디)

  • 튀르크 지역[12]
14 니나와 주 (모술)
15 키르쿠크 주 (키르쿠크)

16 다후크 주 (다후크)
17 아르빌 주 (아르빌)
18 술라이마니야 주 (술라이마니야)
19 할라브자 주 (할라브자)

6. 정치




7. 경제




8. 군사




9. 외교




10. 문화



10.1.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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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압바스 왕조의 수도였던 사마라의 대모스크
북부 쿠르디스탄의 산악 도시 아메디 (알 아메디야)
기원전 4000년대까지 올라가는 매우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수많은 국가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 남겨놓은 건축물들이 많기 때문에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현재 이라크 남부는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13]이며 이라크에 이미 체류하고 있는 한국인들도 대부분 남부에서 체류하고 있다. 반면, 이라크 북부는 2017년까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라는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장악되어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으나 현재 IS는 공식적으론 이라크에서 완전 소탕된 상태이다. 그러나 아직 테러리스트의 활동이 빈번하고 인프라가 무차별적으로 파괴되어 여전히 전후 혼란을 겪고 있기에 방문하기 위험한 곳이다. 아직까지 이라크는 여권법으로 입국이 금지된 국가이므로 대한민국 국민은 가지 않아야 한다. 다만 2017년 12월 IS와의 전쟁이 이라크군의 승리로 끝난 이후에 테러와 유혈충돌도 이전보다는 많이 잦아들었고 쿠르드 자치정부가 지배하고 있는 북동부 지역을 제외한 국토 전역을 이라크 정부가 통제하고 있는데다 국가재건도 빠르게 가속화되는 등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이다.
이곳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났던 메소포타미아 평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대 도시 우루크, 우르, 바빌로니아신바빌로니아(칼데아)의 유적지인 바빌론이나 아시리아, 수메르, 사산 왕조의 크테시폰, 아바스 왕조 당시의 유적지들이 있기에 충분히 여행객들을 매료시킬 수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 및 다에쉬의 만행으로 인해 아시리아의 유적지, 하트라가 파괴되었고 다른 문화재들도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지금과 달리 걸프전이 발발하기 전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했다. 걸프전 이후에도 방문이 힘들긴 했지만 요르단을 통하여 이라크로 방문할 수는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라크 전쟁 이후에는 불안정한 치안과 분쟁 때문에 더욱 방문하기 어려워지게 되었고,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1월 이라크 전 지역을 당시 여행경보 3단계였던 '긴급한 용무가 아닌 한 되도록이면 귀국하라'는 여행자제로 지정했다. 2004년 4월엔 결국 이라크에 대한 방문이 사실상 금지되었다. 이라크 방문 시엔 반드시 외교부에 신고서를 제출토록 했는데 신고서 없이 방문한다 해도 관련 법률 미비로 현실적인 제재 방안이 없었다.[14] 그러다 2007년 8월 여권법 개정으로 여행금지제도를 정한 이후에서야 이라크 방문은 확실히 금지되었다. 해외의 경우,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2004년 초반까지는 미국이나 영국같은 나라에서 관광 등 목적으로 방문이 잠시 가능했다고 하지만 상황이 악화되어 내전이 터지자 자국민을 즉시 대피시켰고 사실상 여행 금지국으로 지정한다.
지금은 여행금지국가지만, 이웃나라 시리아나 남쪽 먼 나라 예멘, 북아프리카의 리비아[15], 인도양 바다건너 소말리아[16] 같은 다른 아프리카, 중동권의 여행금지국가들로 지정된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상황이 그나마 많이 좋아진 편이다. 2017년 12월 이후 현재 다에쉬들을 모두 축출하여 전쟁이 사실상 끝났고, 전후 수니파 이슬람교와 시아파 이슬람교가 권력을 두고 싸웠던 적대감정을 청산하고, 쿠르드족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다면, 여행금지국가에서 해제될 가능성도 있다.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경우 이라크 본토보다 훨씬 안전하고 우리나라 여권으로는 무비자 입국까지 가능하다.참고로, 여행금지국가들중 여행금지가 먼저 해체될 것으로 보이고 있다.[17]

10.2. 스포츠


역시 오일머니로 인한 투자도 있었고, 하여튼 과거에는 여러모로 축구 강호였다. 지금은 혼란스러운 자국 사정도 그렇고 하여서 예전에 비하면 강호에서는 조금 멀어졌지만, 그래도 아시아 내에서만큼은 여전히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대에 대한 자세한 것은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 참조.
그 밖에 클럽 축구도 인기가 많지만, 역대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준우승 2번(1971, 1989)만 기록했다. 중국조차도 역대 이 대회 우승을 거둬들인 걸 보면 화려한 리그 강호라고 볼 수도 없으며, 지금은 AFC컵에 나오고 있다.
과거 포항 스틸러스에서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었던 압바스 자심이 이 나라 출신이다.
또한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질로안 하마드는 현재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뛰고 있다.

11. 기타


  • 국호인 이라크는 아랍어로 '낮은 땅'이라는 뜻이다.
  • 한국군 비전투병이 파병되었던 아르빌은 쿠르드족 자치구역인 쿠르디스탄 지방정부(Kurdistan Regional Government)가 세워지면서 그럭저럭 안정을 찾았고 전쟁으로 박살난 이라크 프로리그도 열렸다. 이 지역이 연고지인 아르빌 FC가 한때 AFC 챔피언스리그에도 나오기도 했다.[18] 물론 쿠르드인 자치정부라 이웃한 터키가 종종 대포를 쏴대며 시비를 거는 문제는 있지만...
  • 오랜 내전으로 이라크 사회 전체가 병영화되었다는 소리를 듣는다. 중동 전문매체 MEE에 따르면, "학생들이 군복을 입고 다니고 심지어 여성들도 군복 무늬의 속옷을 입는 게 유행이 됐을 정도"라고 한다.#
  • 엑소시스트의 첫 부분에서 메린 신부가 참가한 발굴 현장은 이라크의 유적이다. 그리고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2에선 왠지 몰라도 소련군의 일원으로 등장한다. 국가별 특수 유닛 중에서 가장 흠좀무한 성능을 자랑하는 데졸레이터가 이라크의 유닛이라서 소련 플레이어들은 너도나도 이라크를 고르는 경우가 많았다.
  • 내무부 대변인 사드 만 이브라힘(Saad Maan Ibrahim)이 독일 ARD와 인터뷰를 했는데 영어로 슬픈 사람이란 뜻인 'sad man' 을 떠올린 사람들이 많고 때마침 본인도 적절히 슬픈(?) 표정을 지어줘서 거의 필수요소로 떠올랐다. 해당 프로그램 전부.
  • 이라크 바스라는 최고 기온이 58.8도였다!
  • 2005년 이라크는 기존의 토요일~수요일에 근무하던 것을 일요일~목요일에 근무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금요일은 여전히 휴일인 대신 목요일을 평일로 바꾸고 토요일을 주말로 지정한 것.
  • 이라크도 한국처럼 10월 3일이 공휴일이다.

12. 이라크 국적, 출신의 캐릭터


이라크 내 쿠르드족이다.

[권위주의] 3.62점[1] 이때 당시 후세인의 아들 파이살과 함께 행동했던 영국 정보원 로렌스의 일대기가 《아라비아의 로렌스》란 작품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여러모로 과대포장된 이야기다.[2] 다만 이 국기를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까지 써먹던 이라크와 달리 시리아는 1970년대 아사드 정권의 집권으로 이 국기를 폐지하고 이집트, 리비아와의 아랍 공화국 연방을 구상하고자 이집트, 리비아와 같이 노란색 매 문장이 들어간 국기를 쓰기도 했었고, 제4차 중동전 이후 이집트의 이스라엘 화해 정책에 격분한 나머지 1980년에 이집트와 시리아가 결성한 아랍 연합 공화국 시기의 별 두 개가 들어간 국기를 도로 제정해 쓰게 되었다.[3] 2011년 카다피 정권이 붕괴되고 카다피 정권 이전인 1950, 60년대 알 세누시 왕정 시대때 쓰던 적흑녹의 3색기 국기를 다시 채택한 리비아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다만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카다피 정권을 부정하는 의미에서 60년대 알 세누시 왕정 시기에 쓰던 국기를 다시 꺼내썼고, 카다피 정권 축출 이후에 정치적 혼란과 정부의 분열, 군벌 무장단체들간의 내전을 현재 진행형으로 겪으며 카다피 독재 정권과 카다피 축출 후 들어선 신 정부에 대한 불만과 반대급부로 옛날 왕정 시절에 대한 자국민들의 향수가 꽤 남아있는 리비아와는 달리 이라크는 현재 후세인 축출 이후에 정국 혼란을 거치면서 최근에 안정궤도로 접어들고 있는데다 하심 왕정 폐지 이후에 여러번의 쿠데타와 내분 등 정치적 혼란을 거듭하면서 왕정 시대의 잔재가 싸그리 사라져버려 왕정에 대한 국민들의 향수 분위기가 크게 남아있지 않아서 이라크가 리비아의 사례처럼 하심 왕정 시절때 쓰던 예전 이라크 국기를 다시 제정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4] 자국 국기에 초승달, 별 문양을 넣어서 사용하고 있는 알제리나 리비아, 튀니지 같은 북부 아프리카의 아랍국가들은 제외.[5] 물론 아케메네스 왕조 때는 오늘날의 이라크 땅을 포함한 비페르시아권 지역의 토착 신앙이 존중되었기 때문에, 조로아스터교로 개종하는 이들도 대부분 출세를 위해 자발적으로 개종하는 경우였다.[6] 수니파가 다수고 시아파가 소수며 그 시아파의 지도자가 아사드인 시리아와는 사정이 반대다. 단, 아사드 일가는 알라위파이다.[7] 2008년 쿠르드족의 야지디 교도들이 살던 지역에선 야지디교인 소년이 이슬람 시아파 소녀를 사랑한다며 이슬람에 대한 증오가 넘치던 야지디 교도들이 가서 그 소녀를 때려 죽였다. 이걸 찍은 동영상이 해외로 퍼져 한국 방송에서도 나왔고 이에 대한 시아파 과격파들의 보복 공격으로 많은 야지디 교인들도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기독교 외 다른 소수 종교들도 헬게이트가 열렸다.[8] 주로 알 카에다나 그 분파들이었지만 알 카에다 지도부가 다에쉬와의 결별을 선언하면서 별개의 단체가 되었다.[9] 2007년 아시안컵에서 이라크가 연이은 선전을 거두어서 축제분위기가 되었을때에도 테러가 터졌고 선수의 가족들도 테러의 마수에서 피해가지 못할 판이었으니 말 다했다.[10] 물론 미군이 전후복구작업을 무능하게 진행하고, 부정부패로 인해 중간에서 빠져나가는 금액도 상당한 영향이 크지만 테러의 영향으로 치안이 불안해지다보니 인프라 공사가 줄줄히 지연먹은점은 결코 무시할수가 없다.[11] 무법천지를 기회삼아 먹고 살기 힘들고 치안공백인 지역에선 서로 청소하려고 덤빈다.[12] 현재까지 이 지역의 다수를 차지하는 튀르크멘족은 이라크 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이나 혼란이 계속되면서 차라리 터키로 합병하자는 분리주의자들도 늘고있다.[13] 하지만 다에쉬가 한때 장악한 이라크 북동부 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나을 뿐이지, 이라크 남부 지역 역시 치안 상황이 나쁜 건 마찬가지다.[14] 참조.[15] 테러가 빈번한 데르나, 토브룩 정부 지역인 벵가지바이다, 시르테 정도를 제외하면 협상으로 많이 안전해졌다. 하지만 토브룩 정부가 공격을 가할 경우 미스라타트리폴리까지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다.[16] 이곳 역시 소말릴란드 지역의 경우 여행경보를 '''전부 해제해도 될 만큼 안전해졌다.'''[17] 여행금지만 풀리지 최소한 여행자제-(시리아 국경 근처)철수권고는 발령될것으로 보인다.[18] 아르빌 FC는 챔피언스리그에서 동네북 되면서 지금은 AFC컵에 나오고 있다. 2011년에는 이라크 알 타라바와 같이 이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