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우크라이나 에어쇼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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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시의 사진. 조종사는 비상 탈출로 탈출에 성공했다.
1. 개요
2002년 7월 27일 우크라이나 리비우 인근 비행장에서 우크라이나 공군 소속 Su-27 전투기가 조종사의 실수로 저공 비행 도중 관중이 밀집되어 있는 장소에 추락, 폭발해서 '''에어쇼를 관람하던 77명이 사망하고 600명(100명 가량 중상)이 부상 당한''' 최악의 에어쇼 참사 중 하나.
문서 상단에 첨부된, Su-27이 지면에 격돌하기 직전에 조종사만 절묘하게 사출되는 장면이 포착된 사진이 일견 웃겨보여서 이 사고의 사진이 인터넷에서 자주 돌아다닌다. 만약 저게 훈련 도중 벌어진 일이었다면 조종사도 생존하고 기체만 파괴된 만큼 웃긴 사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고의 정황을 생각해보면 웃기기는커녕 굉장히 잔혹하고 처참한 사진이다.''' 일단 상술했듯 이 사고로 발생한 사망자 수만 해도 77명에 부상당한 사람은 600여명이나 된다.
2. 사건 개요
우크라이나 지역 공군 부대의 창설 60주년을 기념해 열린 에어쇼의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사고가 터졌다. 사고 당시 우크라이나 공군 제14사단 소속 Su-27 전투기가 2분여 가량 공중 곡예비행을 하던 중 갑자기 비행소음이 멈추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현지의 한 TV 기자에 따르면 왼쪽으로 급선회하면서 추락하던 사고기는 활주로 인근 나무에 날개 끝부분이 부딪친 뒤 지상에 대기 중이던 다른 비행기의 날개와 스치듯 충돌했다. 화염에 휩싸인 채 왼쪽 날개 끝부분이 지상에 끌리며 거꾸로 미끄러지던 사고기는 관중이 '''밀집해있는 곳으로 돌진하면서 옆으로 수차례 나뒹군 뒤 폭발했고''',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사진에 보이듯 조종사는 전투기 추락 후 기체가 분해되는 와중에 아슬아슬하게 탈출에 성공했다.[1] 조종사라도 살아남은 것은 사출좌석의 성능[2] 덕이었다. 하지만 이는 조종사는 살리는 결과를 가졌지만 관객들은 살리지 못했다.
당시 현장은 에어쇼를 보러 온 가족들이 많아 실종된 자녀를 찾는 가족들의 울부짖는 소리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으며, 시신을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모습도 여기저기서 목격됐다.
사고기의 조종사는 추락하는 순간까지 관객이 모여 있는 곳에 추락하는 것을 피하려고 애쓰다가 탈출했지만, 결과적으로 오히려 끝까지 조종을 시도한 것이 독이 되었다. 영상을 보면 당시 저고도에서 저속으로 급선회 도중 엔진이 꺼지면서 바로 실속에 빠졌는데 실속이란 것은 단순히 속도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체에 대한 제어력을 상실'''하는 것이다. 이 경우 조종간을 밀어 하강하면서 충분한 속도를 얻어야 제어력을 회복할 수 있는데 이 사고에서는 그럴 만한 충분한 고도가 없었으니 추락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조종사가 무리하게 조종간을 당겨 고도를 회복하려 하였으나 오히려 실속을 부채질하고...결국 롤 방향으로 크게 기울어지면서 관객을 덮쳤으며, 이때 이미 조종사는 기체에 대한 제어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 차라리 실속한 순간 바로 탈출했으면 혹시 사람이 적은 쪽으로 내리꽂혀서 피해가 덜했을지도 모른다.
두 조종사를 구속한 뒤 사고 조사위원회가 정밀조사를 한 결과, 행사 관계자들이 관중의 안전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고 조종사가 비행계획과 안전 수칙을 제대로 숙지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거기에 정비 미숙으로 인한 기체 결함까지 합해졌으니...결국 결론은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인재로 조종사 한 명의 잘못이 아니라 정비 담당, 넓게 보자면 비행을 계획한 사람 등 여러 사람의 잘못으로 인한 인재였다.
조종사 볼로디미르 토포나르(Volodymyr Toponar)는 14년형을, 부조종사 유리 예고로프는 8년형을 각각 선고받았다. 조종사가 어떤 것을 선택했어도 참사는 불가피했고 추락 순간까지 사고를 피하려 노력한 정황을 우크라이나 정부가 고려했기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도 처벌이 매우 관대했던 것이다. 거기다가 대통령이 이들의 형량을 줄이면서 부조종사는 3년 반의 복역을 마치고 2008년에 출소했고, 조종사는 8년 간의 복역을 마치고 2013년 석방되어 우크라이나 공군 조종사들을 위한 시뮬레이터 개발을 돕고 있다고 한다.#
3. 후폭풍
페트로 슐리아크 참모총장이 해임되고 볼로디미르 슈키드첸코 국방장관도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빅토르 스트렐니코프 공군 참모총장과 에어쇼에 참여한 공군 제14사단 세르게이 오니스젠코 사령관 등 4명의 공군 간부들이 모두 이 에어쇼 참사와 관련해 줄줄이 감옥에 갔다.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 1천만 흐리브냐(미화 190만 달러, 2015년 기준으로 한화 약 22억 원)가 위로금으로 지급되었다.
이후에도 자신이 탈출함으로써 민간인들의 대량 피해가 예상된다면 장렬히 산화하는 쪽으로 선택하는 군 조종사들도 생긴 듯 하다. 한국에서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는데, 김도현 소령 (추서계급)은 사고 발생시 탈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탈출하지 않고 자신의 비행기를 다른 쪽으로 유도하여 민간인 피해없이 기체와 함께 산화했다.
4. 유사 사고
[1] 동영상을 잘 보면 Su-27이 땅에 부딪혀 얼마간을 미끄러져 가는 도중에 캐노피가 분리되고 조종사가 사출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문서 상단의 사진을 보자.[2]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 공군기에 채용된 즈베즈다 사출좌석은 영고도에서 정지상태에서도 사출 시 조종사를 보호할 능력(제로-제로)을 갖추고 있다. 현대에 만들어진 신형 전투기들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기능이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아서 대부분의 사출좌석들이 '''일정 속도, 일정 고도 이상'''에서만 조종사의 안전한 탈출을 보장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의 상황은 추락 직후의 사출로 인해 가해지는 관성에, 사출 각도마저 전방으로 기울어진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었음에도 즈베즈다가 조종사를 살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