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C CSKA 소피아
1. 소개
불가리아의 화려한 기록을 가진 구단
불가리아의 수도인 소피아에 연고지를 둔 구단이다. PFC CSKA 모스크바와 똑같이 육군 중앙 스포츠 클럽 산하의 축구 구단이며 따라서 여러 종목의 스포츠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나 PFC CSKA 모스크바 서포터와는 형제 사이로 유명한 팀이다. 이름만큼 서로 정보공유도 빠른셈이다. 레브스키 소피아와는 대립관계에 있다. 팀 자체가 유명해진 것은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와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이 두 선수 덕분에 알려졌으며 현재까지 불가리아에서 리그와 컵 최다 우승 팀으로 남아있다. 물론 현재 PFC 루도고레츠 라즈그라드가 우승과 컵을 휘어잡고 있는 실정이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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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이 아닌 역사가 19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단 창단은 1948년이 맞지만 그 토대가 된 것은 1923년에 창단된 아틀레틱 슬라바 소피아가 활동을 시작한 시기이다. AS-23 슬라바 소피아라고 불리기도 했다지만 아틀레틱이라는 이름보다는 AS-23이라는 이름을 더욱 많이 쓰였다. 창단 후 1931년에는 차르컵 등 여러 리그에서 활약하고 1938년에는 현재 군대경기장이라고 불리는 AS-23 경기장을 세워 축구 경기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역사는 오래가지 못했는데 1944년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구단이 파산당했지만 곧 바로 새로 구단을 창단하게 되었는데 4년뒤인 1948년에는 소비에트 연방의 축구 클럽처럼 종합적인 스포츠 운영단을 꾸리고자 계획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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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종합 스포츠 클럽 산하의 축구단으로 재창단하였으며 이때부터 정식적으로 역사가 시작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전의 역사는 축구단 창단의 토대가 되었으며 1948년 5월 5일에 등록이 완료되었다. 물론 첫 경기과 두 번째 경기는 라이벌 팀인 레브스키 소피아와 슬라비아 소피아등과 가졌으며 무승부 또는 패배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창단 시절부터 우승컵을 들었고 2년동안 라이벌팀에게 우승 트로피를 내줬지만 50년대에는 리그 독주를 이어가게 되었다. 1956-57시즌에는 디나모 부쿠레슈티를 꺾고 유러피언 컵 8강까지 진출했지만 츠르베나 즈베즈다에게 패배하였고 역시나 60년대에도 거의 독주를 이어가는 시기에도 1966-67시즌에 4강에서 뼈아프게 인터밀란에 승부차기에서 패배해 우승 목표는 좌절되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4강이나 8강에 진출한 적도 있었으며 찬란한 시기를 보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물론 소련이 붕괴 후에는 이상하게 타국가팀인 CSKA 소피아의 경기력이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실제로 2007-08시즌 후에는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3부 리그까지 떨어졌던 적이 있으며 고전한적이 있었으나 현재는 다시 1부리그에 올라와 루도고레츠에 이어 2인자로 재도약하였다. 과거에 비하면 새로 창단된 유럽 내 강호팀들이 많아진 덕분에 입지는 거의 없는 상태이다.
3. 유명 선수
- 불가리아
-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1984–1990, 1998
-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1998–2001
- 루마니아
- 이아니스 지쿠: 2011~2012
- 브라질
- 마우리데스: 2018~2019
4. 기타
PFC CSKA 모스크바, 스테아우아 부쿠레슈티, PAOK FC등 동맹 구단들과 형제 관계를 형성하였다. SNS에서도 서로에 대한 애착이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 러시아어에서는 체스카라고 읽지만, 불가리아어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여기선 체세카라고 읽는다.[2] 러시아어로는 붉은색은 크라스니예라고 읽힌다. [3] 좌석 수는 18000개 정도이다. [4] 이때 우승은 비공식적이라 공식적으로는 20회 우승이 맞다고 보면 된다. [5] 2차세계대전의 소련군을 기리기 위한 축구 토너먼트이다. 그만큼 불가리아인들의 러시아에 대한 애정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