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V-33 우랄
1. 제원
2. 개요
'''우랄급 전자전정보 수집및 정찰선 (Большой атомный разведывательный корабль ССВ-33 или «Урал»)'''은 소련 해군이 건조하여 소련 해군과 러시아 해군이 운용했던 정보함이다.
함명은 ССВ-33 'Урал' (SSB-33 우랄)로 명명되었으며 나토 코드명은 양배추라는 뜻의 Kapusta이다.
3. 함생
3.1. 건조
소련 해군은 여러 종류의 정보함을 운영했는데, 대부분 5000톤을 넘지 않는 규모였다. 하지만 화석연료를 써 추진하는 방식이라 바다에서 오래 활동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크기 또한 크지 않아 악천후 시에는 운용이 어려웠다. 또한, 그 공간의 협소함으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으며, 신 장비를 도입하기도 힘들었다. 특히 당시 경쟁상대던 미국에 비해 부족한 소련의 국방예산은 여러 종류의 전자정보선을 운용하기 힘들게 만들었고, 소련 해군은 배 한척으로 최대한 많은 일을 수행하기를 원했다.
냉전 막바지였던 1980년대, 소련 해군은 차기 정보함으로 장기간 여러 임무를 수행하기를 원했고, 마침 소련 해군 선박중 가장 큰 축에 드는 군함인 키로프급 미사일 순양함의 설계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함을 건조하기로 한다.
키로프급의 선체를 원래보다 10 미터 가량 늘리고, 선폭을 넓혀 안정성을 높힌 설계가 채택되었다. 진수일은 키로프급 1번함이 실전배치 된 이후인 1983년이었다. 하지만 선내에 쓰일 각종 신형 레이더를 탑재하는 작업은 지지부진하기만 했고, 작동 시험에만 상당한 시일을 소모했다. 당시 복잡하던 내부 정세와 맞물려 1989년에야 취역할 수 있었다.
우랄함은 키로프급에 쓰인것과 동일한 CONAS 추진체계(KN-3 원자로 2기, 2축 추진)을 사용했지만, 증가한 톤수와 넓어진 선형의 한계로 최고 속도는 21.6 노트였다. 이런 목적을 띈 배들이 다 그렇듯, 자체 무장은 함포 2문과 대공미사일 발사기 정도로 빈약했다. 하지만 정보함 치고는 3만 8천톤이라는 엄청난 무게와 핵추진 설비를 보유한 만큼, 장착되는 장비의 종류와 출력은 기존 정보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세개의 마스트와 초대형 레이돔 아래에는 MP-750 'Фрегат-МА' 레이더와 MP-212/201 'Вычегда-У',네만 P, 아톨 등의 수많은 레이더들이 자리잡았다.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시스템은 해군 감시 시스템인 'Коралл(산호)' 였는데, 이 시스템은 'EU-1046'과 'Elbrus'라는 병렬 슈퍼컴퓨터로 작동했다. 또한 수중 감시 체계도 탑재하고 있었는데, CIM-335M "Аргунь"과 MG-747 "Амулет" 이 바로 그것이다. 냉전 후 공개된 문서에서는 위 소나 시스템으로 음문 수집 임무 또한 맡았다고 서술되어 있다. 핵 미사일 관측을 위한 광전자 관측장비인 'Лебедь(백조)'또한 장착되어 있었다.
당시 소련 해군의 기술을 있는데로 긁어다 만든 이 배는 그 능력 또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는데, 위 시스템의 도움으로 우랄함은 1500km 떨어진 곳의 우주 비행체의 특성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으며, 미군 탄도미사일이 쓰는 연료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배기가스의 조성 또한 분석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랄함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는데, 앞서 서술한 음문 수집 임무와 탄도미사일 추적 임무, 전자 정찰 임무, 통신 중계 임무, 기함 임무까지 맏을 수 있었다.
3.2. 운용
1989년 취역한 우랄함은 태평양 함대에 배속되었다. 이 정도 크기의 배를 민간 선박 잡신호로 가득 찬 북해 같은 곳에 배속할 수는 없으니...
원자력 잠수함의 호위를 받으며 시작한 항해는 처음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배에 탑승한 엔지니어들은 당시 발사된 미국 우주 왕복선인 컬럼비아호를 추적하는 것을 시작으로, 우주 궤도상의 비행체들을 관측하며 시스템의 오류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쪽 원자로의 냉각계에 문제가 생겼지만, 이는 선상에서 끝내 수리되지 못했다. 거기에 승무원들의 숙련도가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이런 배를 운용해 본 적이 없었고(이는 미국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지휘함으로 가장 큰 배라고 해봐야 2만톤가량 하는 블루리지 함이 전부였다), 승무원들은 선내의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배는 태평양 함대 기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했지만,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막상 도착하고 보니 태평양 함대 본부에는 우랄과 같은 260미터가 넘는 배를 계류할 자리조차 없었고, 우랄은 근처 해상에 닺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 지상에서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니 우랄은 정박한 후에도 끊임없이 원자로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야 했고, 이는 후술할 사고의 원인중 하나가 된다.
1990년 여름, 우랄함의 발전기 인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헬기 데크 아래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 발전기가 파손되면서 우랄함은 원자로를 제대로 작동시킬 수 없었고, 결국 원자로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 후, 우랄함이 쓰는 전기는 모두 보조 디젤 발전기로만 공급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 안습한 운명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그 해 가을에는 근처 탄약창에서 큰 화재가 났고, 하마터면 혼자 격발된 미사일에 피격될 뻔한 사태도 있었다. 자체 동력을 사실상 상실한 우랄함은 예인선에 이끌려 겨우 안전지대로 피신했다. 태평양 함대에서는 우랄함의 원자로 수리를 위해 크램린에 연락을 취했는데...
'''소련이 망했다(...)'''
3.3. 퇴역
소련 해군에서 사용이 불가능한 고철 상태의 군함 그대로 러시아 해군으로 인계되어 퇴역을 기다리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결국 우랄함은 영원히 수리되지 못하였으며, 배치된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엔진실을 홀랑 날려먹은 화재로 앉은뱅이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 후 계속 항구에 계류 상태로 남았고, 결국 2001년 일선에서 퇴역하였다.
2000년대 후반 경매를 통하여 고철 처리업체에게 팔렸고, 2017년 해체가 마무리 되었다.
4. 기타
한국에서는 유독 우랄함이 건조하다 만 키로프급 5번함의 선체를 뜯어고쳐 만들었다는 낭설이 퍼져있는데, 이는 말도 안되는 소리. 당장 우랄함의 진수 시기가 키로프급 1번함 취역 후고, 취역한 것은 1989년인데 이때는 키로프급 5번함은 건조 중단조차 확실하지 않았던 때였다. 키로프급 선체의 설계를 이용해 건조했다는 것이 와전된 모양.
5. 미디어에서의 등장
- 세계대전 Z 소설판에서 자유 지구 방송의 중계 기지가 된다.
- 에반게리온:파에서 우랄 2세라는 이름으로 잠깐 등장하는데 가공의 2번함으로 추정된다. 베타니아 베이스 근해에서 떠다니는데 설정상 기지의 실질적인 지휘와 관제는 이 함에서 전부 처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