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스파르타쿠스)
[image]
스파르타쿠스 : 저주받은 자들의 전쟁에서 등장인물.
애초에 크라수스의 부하로 참전한 것이지만 무언가 역사에서 군재는 하급 이하였던 크라수스보다 천재적인 군재와 뛰어난 통치/정치 행정 능력을 가진 카이사르가 한 수 아래의 인물로 묘사되는 어색함이 있으며 크라수스보다는 크라수스의 아들 티베리우스와 머리 싸움을 하는 것이 특징.
전쟁 후 재산이 바닥난 카이사르에게 크라수스가 돈을 대주는 것을 조건으로 참전한다. 첫 등장부터 만만치 않은 놈이라는 걸 보여줬는데, 2화에서 크라수스가 자신을 기다리게 했다고 하인들을 두들겨 패는 불한당 같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명문이지만 몰락한 귀족가 출신의 야심만만한 청년으로 재력은 충분하지만 명성이 부족한 크라수스와 명성은 충분하지만 가진 게 없는 자신과의 조합은 천생연분이라는 크라수스의 동업 제안을 받아들여 스파르타쿠스 토벌 원정대에 참여하게 된다. 크라수스의 아들인 티베리우스와 대립각을 세운 상태.
크라수스의 명령에 따라, 스파르타쿠스가 점령한 시누엣사에서 도망 노예로 위장해 잠입했다. 그리고 칼 솜씨와 언변을 통해 노예 군단을 분열시키는 작업에 들어갔다. 스파르타쿠스가 군자금으로 쓰기 위해 노예들이 약탈했거나 삥땅친 돈들을 다 거두어 버리는데 남몰래 불만을 품은 노예들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시작해 로마인들을 몽땅 다 죽여버리자는 노예 군단 내 강경파[1] 들을 음양으로 부추겨 온건파[2] 나 스파르타쿠스들과의 대립을 조장하기 시작했다.
크라수스의 아들 티베리우스와 지휘권을 두고 갈등을 빚으며 작중에선 대부분 크라수스 부자에게 놀아나는 등 역사 왜곡 성향이 좀 강하다. 게다가 스파르타쿠스 진영에 노예 행세를 하며 위장 잠입까지 했다. 칸니쿠스와의 스파링에서 '주인의 양떼를 지키던 양치기'였다는 설정으로 적당히 상대하다 패해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고 경계심을 풀었다. 그리고 제일 과격파에 붙어서 로마인들은 다 죽여야한다며 선동하고[3] 이게 결정적으로 스파르타쿠스와 크릭수스가 틀어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결국 5화에서 큰 일을 낸다. 스파르타쿠스를 기습해 등에 큰 상처를 내고, 자신의 정체를 밝힌 뒤 의외의 실력으로 아그론과 가니쿠스를 상대로도 잘 버티다가, 기지를 발휘해 문에 기름통을 잔뜩 던져서 기름범벅으로 만들고 마지막에 횃불을 던져 서서히 불태워서 로마군이 들어올 수 있게 돕는다. 결국 수세에 몰려 아그론에게 죽을 뻔 하다가 딱 타이밍 좋게 성문이 부셔지고 노예들을 향해 '이제 도망갈 시간이다.'라고 말한다.
[image]
이후 흑화된 티베리우스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급기야 8회에서는 '''강간까지 당했다'''.
카이사르는 티베리우스가 크라수스의 첩 코레를 강간한 것을 빌미로 협박했지만, 티베리우스는 오히려 부하들을 시켜 카이사르를 제압시키고 카이사르가 자신의 병사임을 깨닫게 하고 자신이 카이사르의 상관임을 알게 해 주겠다며 강간을 했고 함부로 입을 놀리면 카이사르가 자신에게 여자처럼 강간당한 것을 소문내겠다고 역으로 협박했다. 덕분에 국내외로 카이사르의 이미지는 바닥까지 떨어졌다.[4]
"나는 줄리어스 '''씨발''' 시저다!"라며 저항하지만 티베리우스의 매직스틱에 그만... 로마에서 동성애자 '수'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걸 감안하면 치욕 중의 치욕이다. 다음 전투에서는 엉덩이가 아픈지 말을 타지 않는다 (...). 이 장면이 얼마나 쇼킹한지 국내도 해외도 '''크릭수스의 죽음이 묻혀버렸다'''.[5]
이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이는 로마의 문화였다. 로마 이전 그리스에서 동성애가 유행했던 것은 유명하다. 로마에서도 동성애가 있었다. 다만 흔히 말하는 "수비"는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여겨졌다. 그 이유인 즉슨 "남자"가 "여자"처럼 수비의 위치에 있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기 때문.[6] 그 반대인 "공격"은 "남자가 어디에 박든 뭔 상관이야~!"라며 흐지부지 넘겼다. 또한 남자가 여자를 애무하는 행위도 남자가 수비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쳐서 치욕으로 여겼다.
일단 스파르타쿠스 진영에서나 크라수스와의 갈등에서나 권모술수에 굉장히 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 반대로 전략에 있어서는 다소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런 카이사르를 크라수스가 지략으로 풀어나가고 폼페이우스가 어부지리로 공을 가로채 가자 화가 난 카이사르에게 크라수스가 후의 삼두정치를 예상하고 카이사르를 달랜다.
원정대 참여 사실도 그렇지만 극중에서 묘사되는 카이사르의 모습은 역사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아주 많이 차이가 난다. 바람둥이야 당시 실제 인물도 그랬었지만 역사적으로는 호리호리한 체격에 점잔빼는 멋쟁이[7] 스타일로 알려져 있는데, 극중에서는 우락부락한 체격의 금발머리 파락호 스타일로 등장하고 있고[8][9] 신체 능력도 칸니쿠스와 겨루었을 때 칸니쿠스가 주목할 정도로 상당한 검술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걸로 나온다.[10] 일설에는 머리 좋은 토르 짝퉁이라 칭할 정도다.[11][12]
상당히 기묘하게도 그는 본작에서 교활한 술수와 배신을 즐겨 사용했는데 그의 죽음이 그 때문인 것을 생각하면 크라수스와 마찬가지로 아이러니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카이사르가 노예로 위장해서 잡입했다는 기록은 없다. 정말로 잠입을 해서 조직을 분열시켰으면 기록이 있을 법도 하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일단 카이사르가 크라수스 휘하에서 싸웠을 확률은 있다. 크라수스가 법무관 시절(BC 73 혹은 72), 스파르타쿠스 전쟁(BC 73 ~ 71) 상대로 전쟁을 치뤘는데 이때 카이사르는 막 '명예로운 경력'의 초기 단계인 군사 대대장(military tribune)직에 선출되었기 때문이다(BC 72). 다만, 카이사르가 이 스파르타쿠스 전쟁에 참여했다면 카이사르의 본인의 기록이나 아니면 따른 역사가들의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는 걸 봐서 카이사르가 스파르타쿠스 전쟁에 참여했을 확률은 매우 낮다.
스파르타쿠스 반란 때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에 체류하고 있었고 당시 대대장 자격을 획득한 것은 사실이지만 카이사르가 크라수스의 토벌대에 참여했다고 명확하게 밝혀진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크라수스가 토벌에 나설 때는 스파르타쿠스에게 전직 / 현직 집정관들이 지휘하는 로마 정규군들이 연패를 당하고 있던 위기상황이라 당시 풋내기에 불과했던 카이사르가 굳이 중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1. 개요
스파르타쿠스 : 저주받은 자들의 전쟁에서 등장인물.
애초에 크라수스의 부하로 참전한 것이지만 무언가 역사에서 군재는 하급 이하였던 크라수스보다 천재적인 군재와 뛰어난 통치/정치 행정 능력을 가진 카이사르가 한 수 아래의 인물로 묘사되는 어색함이 있으며 크라수스보다는 크라수스의 아들 티베리우스와 머리 싸움을 하는 것이 특징.
2. 작중 행적
전쟁 후 재산이 바닥난 카이사르에게 크라수스가 돈을 대주는 것을 조건으로 참전한다. 첫 등장부터 만만치 않은 놈이라는 걸 보여줬는데, 2화에서 크라수스가 자신을 기다리게 했다고 하인들을 두들겨 패는 불한당 같은 모습으로 등장했다.
명문이지만 몰락한 귀족가 출신의 야심만만한 청년으로 재력은 충분하지만 명성이 부족한 크라수스와 명성은 충분하지만 가진 게 없는 자신과의 조합은 천생연분이라는 크라수스의 동업 제안을 받아들여 스파르타쿠스 토벌 원정대에 참여하게 된다. 크라수스의 아들인 티베리우스와 대립각을 세운 상태.
크라수스의 명령에 따라, 스파르타쿠스가 점령한 시누엣사에서 도망 노예로 위장해 잠입했다. 그리고 칼 솜씨와 언변을 통해 노예 군단을 분열시키는 작업에 들어갔다. 스파르타쿠스가 군자금으로 쓰기 위해 노예들이 약탈했거나 삥땅친 돈들을 다 거두어 버리는데 남몰래 불만을 품은 노예들을 끌어들이는 것으로 시작해 로마인들을 몽땅 다 죽여버리자는 노예 군단 내 강경파[1] 들을 음양으로 부추겨 온건파[2] 나 스파르타쿠스들과의 대립을 조장하기 시작했다.
크라수스의 아들 티베리우스와 지휘권을 두고 갈등을 빚으며 작중에선 대부분 크라수스 부자에게 놀아나는 등 역사 왜곡 성향이 좀 강하다. 게다가 스파르타쿠스 진영에 노예 행세를 하며 위장 잠입까지 했다. 칸니쿠스와의 스파링에서 '주인의 양떼를 지키던 양치기'였다는 설정으로 적당히 상대하다 패해서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고 경계심을 풀었다. 그리고 제일 과격파에 붙어서 로마인들은 다 죽여야한다며 선동하고[3] 이게 결정적으로 스파르타쿠스와 크릭수스가 틀어지게 되는 계기가 된다.
결국 5화에서 큰 일을 낸다. 스파르타쿠스를 기습해 등에 큰 상처를 내고, 자신의 정체를 밝힌 뒤 의외의 실력으로 아그론과 가니쿠스를 상대로도 잘 버티다가, 기지를 발휘해 문에 기름통을 잔뜩 던져서 기름범벅으로 만들고 마지막에 횃불을 던져 서서히 불태워서 로마군이 들어올 수 있게 돕는다. 결국 수세에 몰려 아그론에게 죽을 뻔 하다가 딱 타이밍 좋게 성문이 부셔지고 노예들을 향해 '이제 도망갈 시간이다.'라고 말한다.
[image]
이후 흑화된 티베리우스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급기야 8회에서는 '''강간까지 당했다'''.
카이사르는 티베리우스가 크라수스의 첩 코레를 강간한 것을 빌미로 협박했지만, 티베리우스는 오히려 부하들을 시켜 카이사르를 제압시키고 카이사르가 자신의 병사임을 깨닫게 하고 자신이 카이사르의 상관임을 알게 해 주겠다며 강간을 했고 함부로 입을 놀리면 카이사르가 자신에게 여자처럼 강간당한 것을 소문내겠다고 역으로 협박했다. 덕분에 국내외로 카이사르의 이미지는 바닥까지 떨어졌다.[4]
"나는 줄리어스 '''씨발''' 시저다!"라며 저항하지만 티베리우스의 매직스틱에 그만... 로마에서 동성애자 '수'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걸 감안하면 치욕 중의 치욕이다. 다음 전투에서는 엉덩이가 아픈지 말을 타지 않는다 (...). 이 장면이 얼마나 쇼킹한지 국내도 해외도 '''크릭수스의 죽음이 묻혀버렸다'''.[5]
이 부분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이는 로마의 문화였다. 로마 이전 그리스에서 동성애가 유행했던 것은 유명하다. 로마에서도 동성애가 있었다. 다만 흔히 말하는 "수비"는 씻을 수 없는 치욕으로 여겨졌다. 그 이유인 즉슨 "남자"가 "여자"처럼 수비의 위치에 있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기 때문.[6] 그 반대인 "공격"은 "남자가 어디에 박든 뭔 상관이야~!"라며 흐지부지 넘겼다. 또한 남자가 여자를 애무하는 행위도 남자가 수비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쳐서 치욕으로 여겼다.
일단 스파르타쿠스 진영에서나 크라수스와의 갈등에서나 권모술수에 굉장히 능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 반대로 전략에 있어서는 다소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다. 그런 카이사르를 크라수스가 지략으로 풀어나가고 폼페이우스가 어부지리로 공을 가로채 가자 화가 난 카이사르에게 크라수스가 후의 삼두정치를 예상하고 카이사르를 달랜다.
원정대 참여 사실도 그렇지만 극중에서 묘사되는 카이사르의 모습은 역사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아주 많이 차이가 난다. 바람둥이야 당시 실제 인물도 그랬었지만 역사적으로는 호리호리한 체격에 점잔빼는 멋쟁이[7] 스타일로 알려져 있는데, 극중에서는 우락부락한 체격의 금발머리 파락호 스타일로 등장하고 있고[8][9] 신체 능력도 칸니쿠스와 겨루었을 때 칸니쿠스가 주목할 정도로 상당한 검술 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걸로 나온다.[10] 일설에는 머리 좋은 토르 짝퉁이라 칭할 정도다.[11][12]
상당히 기묘하게도 그는 본작에서 교활한 술수와 배신을 즐겨 사용했는데 그의 죽음이 그 때문인 것을 생각하면 크라수스와 마찬가지로 아이러니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3. 실제 역사에서
카이사르가 노예로 위장해서 잡입했다는 기록은 없다. 정말로 잠입을 해서 조직을 분열시켰으면 기록이 있을 법도 하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일단 카이사르가 크라수스 휘하에서 싸웠을 확률은 있다. 크라수스가 법무관 시절(BC 73 혹은 72), 스파르타쿠스 전쟁(BC 73 ~ 71) 상대로 전쟁을 치뤘는데 이때 카이사르는 막 '명예로운 경력'의 초기 단계인 군사 대대장(military tribune)직에 선출되었기 때문이다(BC 72). 다만, 카이사르가 이 스파르타쿠스 전쟁에 참여했다면 카이사르의 본인의 기록이나 아니면 따른 역사가들의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는 걸 봐서 카이사르가 스파르타쿠스 전쟁에 참여했을 확률은 매우 낮다.
스파르타쿠스 반란 때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로마에 체류하고 있었고 당시 대대장 자격을 획득한 것은 사실이지만 카이사르가 크라수스의 토벌대에 참여했다고 명확하게 밝혀진 기록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크라수스가 토벌에 나설 때는 스파르타쿠스에게 전직 / 현직 집정관들이 지휘하는 로마 정규군들이 연패를 당하고 있던 위기상황이라 당시 풋내기에 불과했던 카이사르가 굳이 중용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4. 관련 문서
[1] 대표로 크릭수스, 네비아.[2] 칸니쿠스. 엄밀히 말해서, 칸니쿠스는 온건파라기보다는 회의파로서, 대장장이 아티우스의 죽음으로 무차별적 폭력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3] 성적으로 학대를 당해 자신을 죽여달라는 로마 귀족여인을 눈물을 머금고 안락사 시켜주고 과격파에 의해 붙잡힌 로마인들이 죽어가면서 이를 착잡하게 지켜본다. 카이사르 입장에서는 대의를 위한 소수의 희생.[4] 강간한 쪽이 더럽다고 욕먹기보다 당한 쪽이 욕먹는 건 일단 넘어가자.[5] 특히 디씨 미드 갤러리의 경우 한동안 이 주제만 계속 나와서 '''시저 후장 갤러리'''라고 자조적으로 부르는가 하면, 시저 배우의 SNS도 이전에는 멋있다 등등의 표현이 많았는데 이 장면 방영후 아예 접속자가 뚝 끊겼다고(...)[6] 남자가 공격의 위치에서 삽입하는 행위를 남성적인 것으로 여겼고 중시했다.[7] 역사서에 따르면 머리를 긁을 때도 손가락 몇 개로 긁는 게 더 멋져 보이는지 고민했다고 한다.[8] 단 이는 시에눗사에 잠입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수염과 머리를 기르게 한 것이다.[9] 애초에 카이사르는 금발벽안이 아니라 검은 머리에 갈색눈을 가졌었다. 오히려 카이사르의 선배격인 술라가 금발벽안이였는데, 반면에 이 인간은 관상이 매우 매섭고 신경질적이였지 우락부락한 파락호 스타일은 아니였다.[10] 이는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카이사르는 신체 능력이 뛰어났고, 하급 병사 시절 소아시아에서 동료를 전장터에서 구한 일로 오크나무 시민관을 받은 일이 있었다.[11] 실제로 카이사르가 스파르타쿠스 토벌전에 참가했는지 여부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설사 참가했더라도 당시 카이사르는 민회에서 대대장에 뽑혔기 때문에 대대장으로 참여했다면 모를까, 저런 침투 정보원 노릇을 했을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12] 실제로 카이사르는 후방에서 지휘만 했지 직접 싸우는 일은 없었다. 간혹 사기를 북돋기 위해 전선 가까이 간 적도 있고, 자신을 잘 보라고 붉은 망토를 두르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