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팔이
1. 개요
듣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의 감성을 자극할 만한 이야기 또는 행위를 함으로써 물질적, 정신적, 제도적인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행위. 영어로는 Appeal to pity.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감성적인 주장을 하여 논지를 흐리는 경우나 범죄를 저지른 인물이 대중 매체에 등장하여 가족 이야기 같은 것을 하는 식으로 자신이 저지른 죄를 무마하려 하는 경우, 마지막으로 TV 프로 등에서 마법의 편집 같은 장치로 억지 감동을 유발하는 경우에 쓰인다. 보다시피 안 좋은 의미로 사용되며, 감정에 호소하는 오류와도 상당부분 겹친다.
2. 문제점
마케팅에서는 감성을 자극하는 것이 기본이다. 광고의 공식 중 하나가 3B로 미인(Beauty), 동물(Beast), 아기(Baby)를 노출시키라는 것이다.
감성은 인간 내면의 본능이고 자연스럽게 유도하기만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감성 그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상황에 맞지 않게 억지로 감성을 자극하거나 사안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과 논리를 무시한 채 순간적인 감성에만 치우치는 것, 특히 공적 영역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역효과를 낳는 것이다.
주 고객층에게 어필하지 못하거나, 제품 등의 기능과 전혀 무관한 감성만을 자극하는 광고는 좋은 평가를 듣지 못한다. 상업광고를 넘어 물의를 일으킨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등 공인들이 tv에 출연하여 눈물 질질 짜거나 억지 봉사활동 등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이미지를 세탁하자 점차 사람들이 '감동적인' 그들의 이야기에 거부감을 느끼게 되었다.
몇몇 TV 프로그램 및 창작물에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무리한 설정을 집어넣고, 편집하여 아예 인물의 캐릭터를 바꾸거나 필요 이상으로 미화하는 것 비판의 대상이 된다. 특히 그들의 이미지가 '진실성'과는 거리가 먼 경우 사람들이 공감을 느낄 리 만무하다. 많은 드라마, 영화 등이 개연성이나 고증 등은 무시한 채 감성팔이를 통해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고, 심지어 문제적이고 비판적인 영화에서도 이런 신파극 연출이 적지 않다.
감성팔이의 예시는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가령 법원에 호출되면 어김없이 휠체어를 끌고 나오는 높으신 분들이라거나, 선거철만 되면 시장바닥으로 걸어나가 눈물을 흘리는 정치인들을 볼 수 있다. 강자는 악, 약자는 항상 선이라는 선입견을 이용한 것도 일종의 감성 팔이에 해당한다.
법원에 들어갈 때 휠체어 타고 오는 높으신 분들은 법원을 걸어나오는 즉시 멀쩡하게 걸어나오고, 정치인들 중 선거 이후로도 지역구민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정치계에서 감성팔이가 유독 비판받는 경우는 바로 시사 토론 중일 때다. 정치 토론 뿐만 아니라 어느정도 수준이 있는 토론에서는 다 해당된다. 어떤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서 이성적인 주장 없이 감성만 잔뜩 불어넣으니 논리적 귀결도 이루지 못할 뿐더러 설득력도 없다. '우리 국민을 위해서~' 혹은 '우리 아이들이~' 이런 말이 나오면 반대 쪽은 '그 국민에서 나는 좀 빼 줘라', 혹은 '우리 아이는 좀 빼달라'라고 하기 마련이다. 또한 감성팔이에 대해 진영논리의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도 많아졌다.
하지만 그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감성팔이가 여전히 많이 사용되는 이유는 논리력이 상당한 정치권 인사들에게는 까이더라도 이를 SNS나 TV 등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노출을 시키면 감성적인 10~20대, OECD 최고 수준의 실질문맹률(즉 최저 수준의 실질문해율)을 보이는 중장년층, TV나 신문 말고는 정보를 얻기 어려운 노년층, 저학력자 등 세대를 불문하고 영향을 받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감정이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서 감성팔이에 넘어간 사람들도 내로남불의 태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갑자기 사망했을 때 사람들이 슬퍼하고 조의를 표하는 건 당연해도, 관심 없는 연예인이 사망했을 때 사람들이 애도하고 조의를 표하는 건 감성팔이라며 비난하는 식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의 리처드 닉슨도 이런 감성팔이를 쓴 적이 있다. 1952년 고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던 닉슨은 자신의 당인 공화당에게조차 버림받을 정도로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었다. 하지만 라디오에 30분 동안 출연해 '불법 정치자금 받은 건 맞는데 개인적으로 쓴 건 내 딸을 위한 체커스(Checkers)라는 개 하나 뿐이에요 ㅠㅠ'라고 감성팔이를 시전했고, 이게 통했다. 이때의 연이 '체커스 연설'이라 할 정도.
2.1. 잘못된 사용 및 여담
역설적으로 감성팔이한다고 외치고 다니는 인간의 태반은 스스로 감성팔이를 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 상대가 불합리하고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이러이러 하므로 적절하지 않다" 혹은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고 반박하면 그만이지 "이 새끼 감성팔이 하네 ㅋㅋㅋ 네 다음 00~" 이딴 식으로만 대응을 한다면 본인 역시도 '자신은 감성에 휘둘리지 않는 지성인' 이라는 이미지만 쓰고 싶어할 뿐인 허영에 쩔어있는 멍청한 쿨찐따일 뿐이다.
특히 가치관이라는 것 자체가 감정의 개입을 전제하므로(예를 들어 특정 문화권의 누군가에게는 장례식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것이 아주 가치 있는 헌사겠지만 특정 문화권의 누군가에게는 최악의 모욕으로 받아들여진다.) 완벽하게 이성적인 가치판단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할 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별 근거나 철학도 없이 그저 자신의 주장은 '숭고한 이성적' 상대의 주장은 '미개한 감성적'인 것으로 이미지 마케팅을 위해 선동질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즉, 자신은 온갖 논리적 비약을 저질러도 이성적으로 보이고 싶다라는 자만심에 취하고 싶은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것이다.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아무데서나 무분별하게 감성팔이라면서 무작정 비난을 해대는 경우도 덩달아 많아져서 문제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해당 사고가 정치적으로 이용 및 쟁점화됨에 따라, 유가족들이나 애도하는 네티즌까지도 감성팔이를 한다며 비난하는 일이 많았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감성팔이로 매도하는 건 몹시 성급하고 편협한 태도임을 명심해야 한다.
한편으로, 반지성주의적 감성팔이에 지쳐, 반대로 이성과 감성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이성적 태도만을 우위에 두며, 필요 이상으로 감성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많다. 이것이 위에 언급한 쿨병과 결합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