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단오제
국내 최대의 단오 축제이며 한국에서 네번째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축제. 등재년도는 2005년이다.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전통행사이다 보니, 예전엔 중구난방에 도떼기시장이 따로 없던 행사장인 남대천 둔치를 전면 보수하고 행사장과 장사하는 곳을 완전 분리시켜 놓았고, 행사가 없는 평상시에도 주차를 금지하게 하는 등 강릉시에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다.
예전엔 행사 첫 날에만 하던 불꽃놀이가 이젠 첫 날과 마지막 날 밤에 화려하게 펼쳐진다. 단, 2009년 단오제 행사는 때마침 노무현 대통령 추모 정국이어서, 첫날 불꽃놀이는 취소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천안함 사태가... 그리고 2015년에는 메르스사태 때문에 제례행사를 제외한 모든 행사가 취소된 바 있다.
다만 이렇게 문화재로서의 관리에는 철저히 노력하는 반면, 외부 관광객 유치에 치중하느라 지역민들이 즐길 수 있는 요소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진 감이 있다. 2000년대 초만 해도 훨씬 지역적이고 친근한 동네 잔치 같은 느낌이었지만, 2000년 중반 이후로는 지역과는 오히려 서서히 유리되면서 5일장 이상도 이하도 아닌 어중간한 행사가 되고말았다. 덕분에 축제 참가자의 숫자가 급락하고, 이렇게 구매층이 줄면서 판매자도 줄고, 결국 그렇게 축제가 동네 잔치보다는 문화행사에 더 비중이 쏠리게 되었다.
문화제 지정 이전에는 단오장 주변의 교통이 현재보다 훨씬 지옥같았지만 단오 장거리에 강릉시내에서 구하기 힘든 게임 카트리지 등을 판매하는 장사꾼들도 있었다. 2016년 기준 단오장에는 장사꾼들이 판매하는 품목들이 거기서 거기다보니 그때의 기억하던 강릉사람들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 또한 강릉 단오제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당시, 중국 언론에서 단오를 뺏어간다느니 하고 우기며 한국을 비난했다.
단옷날(음력 5월 5일)부터 열리는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으나, 그 시작점은 대관령 산신제다. 그리고 그 산신이란 바로 통일신라 시대의 사람인 김유신이다. 허균의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 권14, 「문부」11, 「대령산신찬병서(大嶺山神贊幷書)」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2005년에는 강릉 지역의 개신교 단체가 단오제의 무속 행사에 대한 지원을 반대한다며 단식투쟁을 벌인 바 있다.
허균이 34세이던 1603년(선조 36) 여름, 당시 수안군수를 역임하고 모친과 함께 외가인 강릉 사천의 애일당에 내려와 약 4개월 간 머물렀을 때 강릉단오제를 보았다. 그에 의하면 명주 사람들이 5월 길일을 택해 대관령 산신인 김유신 장군을 괫대와 꽃으로 맞이하여 부사에 모신 다음 온갖 잡희를 베풀어 신을 즐겁게 해준다고 하였다. 신이 즐거우면 하루 종일 괫대가 쓰러지지 않고 그 해는 풍년이 들고 신이 화를 내면 이것이 쓰러져 그 해는 반드시 풍재나 한재가 있다고 말한 수노(首奴)의 이야기를 그대로 적고 있으며, 이 말을 듣고 자신도 이상하게 여겨 그 날 가서 보았더니 과연 괫대가 쓰러지지 않아 고을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고 환호성을 지르고 경사롭게 여겨 서로 손뼉을 치며 춤을 추었다 하였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