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석(독립운동가)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강우석은 1901년 3월 9일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9월 진주 광림학교 교사로 재직하던 중 국권회복운동을 위한 비밀결사 혈성단(血誠團)을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혈성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지원을 목적으로 주로 군자금 모집활동과 임시정부의 선전활동을 폈다. 그는 오재영, 김두현(金斗鉉)으로부터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과 경고문을 배부받고 박만선(朴萬善)[1] 등과 함께 각처에 배포했다. 또한 서울에서 전협, 최익환(崔益煥) 등이 주도하는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과 연계해 제2의 3.1 운동을 벌이려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계획이 발각되면서 1919년 11월 초 경찰에 체포되었고, 부산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는 출옥 후에도 독립운동을 꾀했으나 또다시 체포되어 1921년 1월 27일에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2년부터 동아일보 하동지국에서 일하면서 민족의식 고취에 앞장섰으며, 1927년 2월 신간회가 조직된 후 전국 각처에 지회가 조직될 때 마산지회 창립에 공헌했다. 또한 1927년 12월 29일 세칙제정위원(細則制定委員)으로 활약했다. 8.15 해방 후엔 서울로 이주해 그곳에서 말년을 보내다 1965년 7월 9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강우석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2012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