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천도

 

1. 개요
2. 강화도 천도 이후
3. 기타
4. 관련문서


1. 개요


고려몽골 제국의 전쟁(여몽전쟁) 때 몽골군이 고려에 침입한 1년 후 당시 무신정권 지도자였던 최우가 국권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강화도강도#s-4(江都)로 수도를 옮긴 사건이다. 당시 무신정권의 최우는 개경을 지키자고 주장한 김세충의 목을 베고[1], 무신 정권은 강화천도를 결정해버린다.

천도할 당시 6월로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고종과 대신들은 최우의 협박에 못이겨 강화로 비를 맞으며 천도를 하였다. 최우는 녹전차[2]100대를 동원해서 자신의 재산을 강화도에 옮겼다.

2. 강화도 천도 이후


강화도 천도 이후 서리였던 이통이 초적과 노비를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개경 일대를 약탈하고 개경이 쑥대밭이 된다. 최우는 이들을 토벌하고 강화에 자신의 거처를 짓는다고 군사 수천명을 동원해 개경의 나무를 구해 사용했다. 심지어 정원에 심을 나무도 모두 육지에서 가져오게 한다. 이 건축 과정에서 공사에 투입된 사람들은 얼어죽고 물에 빠져죽는 등 여러가지 일들이 속출하였다.
또한 고려가 수도를 인 강화도로 옮기니 이에 분노한 몽골이 다시 육지로 환도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강화도의 고려 조정은 이를 무시하고 이는 몽골 2차 침공의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1232년(고종 19년) 천도 이후 39년 동안 여기서 대장경판(팔만대장경)을 만들기도 하였다.
수도 방어를 위해 강화산성, 중성, 외성을 쌓았는데, 궁전 등은 개경으로 환도하면서 모두 흔적도 없이 무너뜨렸다. 하지만 고려이궁지가 흥왕리서 발결되었다.

3. 기타


네이버웹툰 문유 7화에서 강화도 천도 드립을 쳤다.
역사저널 그날 137화에 이 이야기를 조금 다루었다.

4. 관련문서



[1] 또한 개경에 남겠다는 사람들은 군법으로 다스리겠다고 협박을 하였다.[2] 세곡미를 운반하는 수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