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포공

 

'''고사성어'''
'''開'''
'''誠'''
'''布'''
'''公'''
열 개
정성 성
베 포
공평할 공
개성포공(開誠布公)은 '정사 삼국지 촉서 제갈량전'에 진수가 그를 평가한 내용 중에서 "제갈량은 상국(相國)이 되어 진심을 다하고, 공정한 도리를 베풀었다.(諸葛亮之相國也……'''開誠'''心, '''布公'''道.)"에서 유래되었다.
촉한의 승상인 제갈량은 황제 유비의 돈독한 신임을 받았다. 유비가 숨을 거두기전, 그에게 유선을 부탁하였으며 유선을 도와 천하를 잘 다스려 줄 것을 당부하였다. 또한 유선을 보좌할 수 있으면 보좌하고, 그가 제갈량의 말을 듣지 않고 국가에 해를 끼친다면, 그를 대신하여 황제에 오르기를 간청하였다.
유비가 죽은 후, 제갈량은 전력을 다해 평범한 군주인 유선을 도와 나라를 다스렸다. 같은 탁고대신인 이엄구석을 받고 왕위에 오를 것을 권유하였지만, 그는 선제의 부탁을 받았고, 이미 높은 관직에 올랐기에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는 현재 조씨의 위나라를 토벌하는데 큰 성과를 얻지 못했으며 자신을 알아줌에 있어서 황실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했는데도 높은 자리에 오르는건 불의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제갈량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 공정하고 합리적이었으며,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았다. 마속은 그가 가장 아끼는 장군으로, 위나라 공격 시 선봉에 세웠다. 하지만 그가 제갈량의 명령을 어기고 가정을 함락당하자, 제갈량은 군법의 준엄함을 세우기 위해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참하였다. 마속은 처형당하기 전 제갈량에게 글을 올려, 자신은 비록 죽지만 구천을 떠돌더라도 원망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였다. 제갈량은 스스로 가정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지고, 후주에게 승상에서 우장군으로 강등되기를 청하였다. 그는 또 명을 내려 자신에게 많은 조언과 비판을 해주었던 동화서서를 본받아 속관들에게 자신의 결점과 잘못을 비평하도록 하였다.
제갈량은 상국(相國)이 되어 백성을 어루만지고 예법의 본보기를 보이고, 관직을 간략히 하여 권제를 따르고, 성심을 열어 공도(公道)를 베풀었다. 모든 일을 정련(精練)히 하여 그 근본을 다스리고, 명분과 실질이 서로 부합하게 했으며 헛된 것은 입에 담지도 않았다. 마침내 나라 안 모든 이가 그를 두려워하면서도 경애하고, 비록 형정(刑政)이 준엄했으나 원망하는 자가 없었으니, 이는 그 마음 씀이 공평하며 권하고 경계하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서기 234년, 제갈량은 오장원의 군중에서 병사하였다. 그는 평생을 청빈하게 살아서, 후대에 아무 것도 남겨주지 않았다. 후세사람들은 진심을 다하고 공정한 도리를 베푼다는 의미의 ''''開誠心, 布公道''''를 줄여 개성포공(開誠布公)이라고 하였으며, 이는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고, 솔직하고 사심이 없음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