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 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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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표준FM의 유명한 라디오 다큐멘터리 드라마. 1988년 4월 1일부터 2009년 10월 17일까지 전파를 탔다.
원래는 4.19 이후 현재까지 각종 사건들을 연대기 라디오 드라마로 구상한 프로그램으로, 처음 생겼을 당시의 제목은 '''격동 30년'''이었지만 점점 길어져 지금에 이르렀다. 중간에 종방위기도 있고 종방을 아쉬워하는 칼럼이 조선일보(...)등에 실리기도 했는데, 격동 50년으로 바뀌어서 진행되었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를 시작으로 전두환 성대모사부터 이젠 최근엔 노무현까지 압박적이다. 내용을 보면, 당시 대통령들의 여러가지 모습들이 하나의 다큐멘터리 형태로 나온 것이 이색적이다. 2000년대에는 더 이상 시대를 따라잡기 어려워서 리부트도 고려했는데, 결국 연대기가 아닌 주요 사건 중심으로 바뀌었다. 2007년 11월부터 내레이션을 비롯해 주연 성우들도 원호섭과 이철용 등 1960~70년대생 위주로 싹 다 갈렸다.
아무래도 출연 인원이 상당하기 때문에, MBC 성우극회 출신 성우들(특히 남성)은 한번씩 거치는 코스였다. 시리즈의 장기화에 따라 초대 PD 정수열을 비롯해 박관수, 김옥균, 오성수, 김승월, 이순곤 등이 담당 연출직을 거쳤고, 작가진도 이영신[1] , 김교식, 김문영[2] , 이영미[3] , 김광수, 김광휘, 이호, 이석영, 최환상 등 쟁쟁한 이들이 있었다.
해설은 초창기부터 김종성이 맡았는데[4] , 2007년 11월부터 원호섭으로 교체되었다.
해외 판매(주로 동포들 대상)때문에 방송국에서 다시 듣기를 제공하지 않았다.[5]
"격동 30년"은 한때 고려원에서 책으로 펴낸 적 있는데 거의 3공화국 수준이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1권~2권중반까지는 3공화국 전사로 2공화국을 넣었다. 이후 이 버전이 3공화국이나 4공화국 실록 등으로 여러번 재간되었다.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고려원 재고정리로 63빌딩 1층 등에서 한 질 사는건 쉬운 일이었지만 현재는 찾기 어렵고, 굳이 보려면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을 이용해야 한다.
본방은 2009년 10월 17일에 종방했다. 청취율이 낮고 주제가 거의 떨어진 것이 이유이다. 현 시대의 상황과 무관치는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격동 50년만 해도 꽤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80년대만 해도 속칭 "황강"인 황인용-강부자의 방송 등 몇몇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토크쇼보다는 라디오 드라마가 꽤 유행했고, 격동 30년과 격동 50년도 그때가 전성기였다.[6] 특히 시력이 좋지 않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들을 수 있는 라디오 드라마의 특성상 노년층에게는 잘 맞아서 농어촌, 도시 가내수공업, 세탁업 등을 하는 장년층 이상은 이 다큐멘터리 드라마를 많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라디오 세대들도 점점 연로해 사라지며 비디오와 인터넷에 밀린 라디오 드라마가 결국 쇠락하면서 하나둘 없어지기 시작했고, MBC 간판 프로그램인 <꽃님이네 집>이 폐지되면서 이 작품도 폐지론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주제가 주제인지라 꽤 오래 버틴 셈이다.
그런데 이 주역들이 10년만에 다시 뭉쳤다. MBC경남 부마민주항쟁 40주년 특별기획 라디오 다큐멘터리 드라마 20부작 '''79년 마산'''에 참여하여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하였다.
[1] 드라마 <제3공화국>, <코리아게이트> 작가이다.[2] 가장 오랜 기간(8년 5개월) 극본을 썼다.2005년 5월에 별세.[3] 이 작품의 취재를 맡다가 작가로 데뷔했다. 하술된 <79년 마산>의 극본을 썼다.[4] 무려 19년. 김종성의 대표작이자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역이다. 웅장한 배경 음악과 함께 격동 50년!하고 낭랑하고 힘있게 외치는게 일품.[5] 한국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에서 대본을 볼 수 있긴 하지만,회원 가입을 하지 않으면 볼 수 없었고 페이지 자체가 사라져 볼 수 없다. 다만 MBC 아카이브에 전신인 격동 30년 방영분이 올라와 있는 걸 보면, 격동 50년 방영분도 조만간 올라올 수도 있다.[6] 이 시대,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이라는 애정 드라마도 나올 정도였다. 당연히 주인공 더빙은 김자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