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축구단
京城蹴球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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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조선축구단. 흔히 경성축구단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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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전일본종합축구선수권대회에 나선 경성축구단의 모습
일제강점기 1933년 5월 11일 조선축구단에서 분리해 나와 창단된 서울 연고의 축구팀. 사진은 1932년 까지 '''조선축구단'''의 것이고 경성축구단으로 분리되 나오며 붉은 바탕에 하얀색 V 넥 유니폼으로 바뀐다. 평양을 연고로하던 평양축구단과 펼치던 경기인 '''경평전'''이 유명하다.
1935년에 1936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할 팀을 모집하기 위해 제1회 전일본종합축구선수권대회를 활용했는데 일본 축구협회측에서 "너네 경성축구단이라고 잘하는 애들 있다며? 걔들 보내"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오면서 경성축구단이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김영근, 김용식, 이영민[1] 등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레전드들로 구성되었던 경성축구단은 이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그 직후에 열린 명치신궁경기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조선 축구의 위엄을 보여주기도 했다.
해방 후 서울 축구단으로 이름을 고치고 해외 원정 경기를 치루는 등 활약을 펼치나 한국전쟁 이후로 자취를 감추고 만다.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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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조선축구단. 흔히 경성축구단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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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전일본종합축구선수권대회에 나선 경성축구단의 모습
일제강점기 1933년 5월 11일 조선축구단에서 분리해 나와 창단된 서울 연고의 축구팀. 사진은 1932년 까지 '''조선축구단'''의 것이고 경성축구단으로 분리되 나오며 붉은 바탕에 하얀색 V 넥 유니폼으로 바뀐다. 평양을 연고로하던 평양축구단과 펼치던 경기인 '''경평전'''이 유명하다.
1935년에 1936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할 팀을 모집하기 위해 제1회 전일본종합축구선수권대회를 활용했는데 일본 축구협회측에서 "너네 경성축구단이라고 잘하는 애들 있다며? 걔들 보내"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오면서 경성축구단이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김영근, 김용식, 이영민[1] 등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레전드들로 구성되었던 경성축구단은 이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그 직후에 열린 명치신궁경기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며 조선 축구의 위엄을 보여주기도 했다.
해방 후 서울 축구단으로 이름을 고치고 해외 원정 경기를 치루는 등 활약을 펼치나 한국전쟁 이후로 자취를 감추고 만다.
2. 여담
- 2007년 K3리그에 참가한 서울 유나이티드 FC가 자칭 경성축구단의 가치를 계성한다며 창단되었다. 창단 당시에 유니폼도 경성축구단의 유니폼을 본따 만들었다고 주장했지만, 알고보니 유니폼의 무늬와 흑백 스트라이프 컬러는 착각으로 인한 오용이었다. 위의 흑백사진의 원래 컬러는 카탈루냐주기 같은 적색, 노란색 스트라이프.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구단측에서 유니폼과 경성축구단과의 관계를 결부시키는 홍보는 하지 않고 있다.
3. 주요 성적
- 전조선축구대회[2]
- 우승 2회 ( 1936 , 1937 )
- 준우승 3회 ( 1933 , 1938 , 1939 )
-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대회[3]
- 우승 1회 ( 1935 )
- 메이지신궁 경기대회
- 우승 1회 ( 19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