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황후 장씨

 


'''촉한의 황후
敬哀皇后 | 경애황후
'''
'''시호'''
경애황후(敬哀皇后)
''''''
장씨(張氏)
'''출생'''
불명
'''사망'''
237년
'''재위'''
'''촉한의 황후'''
223년 ~ 237년
'''부군'''
회제(懷帝)
'''부모'''
부친 장비(張飛), 모친 하후씨(夏侯氏)
1. 개요
2. 정사
3. 연의
4. 기타 창작물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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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촉한 후주 유선의 첫번째 황후이다. 장비하후씨의 큰 딸이며, 본인이 사망한 이후 유선의 다음 황후가 되는 황후 장씨의 언니이다.

2. 정사


200년, 장비는 하후연의 조카딸 하후씨와 결혼했고 이후 유선의 황후가 되는 딸을 낳았다. 221년, 유비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경애황후는 태자 유선과 결혼해서 입궁했다.
221년, 동년에 경애황후의 아버지 장비가 범강과 장달에게 살해당했다. 223년, 시아버지인 유비가 죽고 유선이 황제의 자리를 잇자 경애황후도 따라서 황후가 되었다. 한편 경애황후의 시중을 들던 왕귀인이라는 시녀가 있었는데 224년, 왕귀인이 황제 유선의 아들 유선(劉禪)을 출산했다. 왕귀인은 시녀였지만 자신이 시중을 들던 경애황후를 제치고 먼저 황제의 아들을 낳았으며 황후 다음가는 자리인 귀인(貴人)까지 되었다. 왕귀인의 아들 유선(劉禪)이 이후 태자가 되기 때문에 경애황후는 끝까지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낳았거나, 아들을 낳았어도 아들이 요절한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경애황후는 너무 일찍 죽어버려서 오랫동안 황후의 자리를 지킬 수 없었다. 제갈량이 오장원에서 죽은 234년에서 3년이 지난 237년, 경애황후가 죽어서 남릉에 매장되었다.
경애황후는 요절한 것인데, 200년에 하후씨가 바로 경애황후를 낳았다고 가정해도 경애황후는 최대 37세를 넘기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경애황후는 촉이 멸망하기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경애황후라는 시호를 받았다. 경애황후가 죽자 유선은 그녀의 여동생 장황후를 두번째 황후로 삼았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경애황후가 유선과 결혼하는 시기가 2년 늦춰졌다. 정사에서는 경애황후가 유선이 태자일 때 결혼해서 유선이 황제가 되자 더불어 황후가 되었지만, 연의에서는 223년, 유선이 황제에 즉위했지만 배필이 없어서 제갈량이 장비의 딸이 어질다고 추천하자 즉시 장비의 딸을 정실 황후로 맞아들였다. 이때 17세라고 언급되었기 때문에 207년생 설정임을 알 수 있다. 장비의 딸에게 경애황후라는 시호는 쓰이지 않으며 그녀의 여동생 장황후는 등장하지 않는다.

4. 기타 창작물


경애황후/기타 창작물 문서 참조.

5. 둘러보기



'''한나라의 역대 황후(촉한)'''
목황후 오씨

'''경애황후 장씨'''

황후 장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