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황후 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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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촉한 선주 소열제 유비의 황후로, 유장 정권 출신인 오의의 여동생이다. 본적은 연주 진류군.
2. 정사
일찍이 고아가 되었으나, 목황후의 부친이 유언과 막역한 사이었기에 유언에게 의지했다. 일찍이 한 관상쟁이가 목황후를 보고 고귀한 신분이 될 것이라 예언했다. 목황후의 상이 귀인의 상이었기 때문에 유언이 자신의 아들 유모와 혼인시켰다. 유모가 광증으로 사망하자 과부로 혼자 기거했다.
유비가 익주를 제패하였으나 부인들이 모두 사망하거나 부재 중[1] 인 상태였기 때문에 신하들은 목황후와 혼인하기를 권했다. 유비가 목황후의 전 남편인 유모와 동족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으므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는데, 법정이 진언하여 말했다.
그래서 목황후를 맞이하여 부인으로 삼았다.
219년에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자 목황후도 한중왕후에 책봉되었고, 221년에 유비가 황제를 칭하자 목황후도 황후가 되었다. 223년 5월에는 유선의 즉위에 따라 황태후가 되었다. 유염전에 따르면 234년 정월에 유염의 처 호씨(胡氏)가 목황후에게 하례하러 갔고 목황후가 특별히 명을 내려 호씨를 한 달 넘게 머무르게 했다.[3] 245년에 목황후가 세상을 떠났고, 유비의 혜릉에 합장되었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모와 결혼까지는 아니고 약혼만 했던 사이로 나온다.[4] 목황후가 유비와 혼인하는 시기도 익주 평정 직후에서 유비가 한중왕이 되었을 때로 바뀌었다.
연의에서는 유비와의 사이에서 유영과 유리를 낳았다. 참고로 정사에서는 유영과 유리의 친모가 목황후라는 언급이 없다.
4. 기타
목황후의 이름은 정사에는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오씨 족보에서는 목황후의 이름이 오현(吳莧)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족보는 신빙성이 낮은 사료이기 때문에 확정할 수는 없다.
어찌보면 예언으로 인해 황후가 되긴 하는데 정작 본인 말고 그 예언을 들은 사람들은 김칫국만 마셨다는 점에선 선대 고황후 박씨와도 닮았다.
5. 기타 창작물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오의의 열전에서만 언급이 되고 본인은 미등장하다가 100만인의 삼국지에서 직접 등장했다. 미부인이나 손부인에게도 없는 유비와의 투샷이 있다. 성능은 평범하다.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오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다.
6. 둘러보기
[1] 정실인 손부인이 유비가 입촉한 후 오나라로 돌아가버렸기 때문.[2] 진문공은 진회공 자어와 숙부와 조카 사이인데 자어가 진(晉) 공작자리 쟁탈을 위해 본국으로 몰래 떠나면서 자어의 아내인 회영은 버려진 상태였는데 진공자 중이가 제, 초나라등을 거쳐 진(秦)으로 망명해오자 진목공이 딸 회영을 부인으로 맞아들이라 권했고 중이는 자어와 관계때문에 꺼려했지만 주변의 권유와 진목공이 강력한 배경이 될거란 생각에 회영과 결혼한다. 이 후 중이는 진목공의 도움으로 본국에 돌아가 진문공이 된다. 그러니까 목황후의 전 남편인 유모가 유비와 동족이라고 해도 진문공의 사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다.[3] 헌데 호씨의 남편 유염은 아내가 황제와 간통을 했다고 의심하여, 호씨가 귀가하자 아랫사람들을 시켜서 얼굴을 구타한 후 쫓아내 버렸다. 이에 호씨가 남편을 고소했고, 유염은 구금되었다가 사형에 처해졌다.[4] 이는 삼국지 시대와 달리 나관중이 살던 시대엔 과부의 재혼을 안 좋게 봤기 때문에 고친 것이다.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