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묘
'''高饒苗'''
(? ~ 673년)
고구려의 '''매국노'''. 668년 평양성 전투 당시 승려 신성, 소장(小將) 오사(烏沙) 등과 함께 연남건을 배반, 평양성의 성문을 열어주어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일조했다. 이후의 삶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9년 그의 묘지명이 공개되면서 대중에 알려지게 되었다.
2008년, 중국에서 확인된 고요묘 묘지명에 따르면, 그의 성은 고씨(高氏). 서안 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출토지는 알 수 없다. 성씨가 고씨고 당나라에서 좌령군원외장군(左領軍員外將軍)이란 직위를 받은 걸로 보아 고구려 귀족으로 추정되지만 왕족인지 확실치 않다.[1] 다만 그의 직위는 황제를 가까이서 호위하는 역할이라 상당히 높은 위치의 인물이었던듯.
하지만 고구려 멸망 후 5년만인 673년 11월 장안에서 갑자기 사망했다고 하며, 사인은 불명확하다. 원문에는 "귀신들이 재앙을 내려"서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에 상상력을 더해 아마도 고구려 유민들에게 보복으로 암살당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2]
(? ~ 673년)
1. 개요
고구려의 '''매국노'''. 668년 평양성 전투 당시 승려 신성, 소장(小將) 오사(烏沙) 등과 함께 연남건을 배반, 평양성의 성문을 열어주어 고구려를 멸망시키는데 일조했다. 이후의 삶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2009년 그의 묘지명이 공개되면서 대중에 알려지게 되었다.
2. 고요묘 묘지명
2008년, 중국에서 확인된 고요묘 묘지명에 따르면, 그의 성은 고씨(高氏). 서안 지역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출토지는 알 수 없다. 성씨가 고씨고 당나라에서 좌령군원외장군(左領軍員外將軍)이란 직위를 받은 걸로 보아 고구려 귀족으로 추정되지만 왕족인지 확실치 않다.[1] 다만 그의 직위는 황제를 가까이서 호위하는 역할이라 상당히 높은 위치의 인물이었던듯.
하지만 고구려 멸망 후 5년만인 673년 11월 장안에서 갑자기 사망했다고 하며, 사인은 불명확하다. 원문에는 "귀신들이 재앙을 내려"서 사망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기록에 상상력을 더해 아마도 고구려 유민들에게 보복으로 암살당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2]
[1] 고노자, 고자의 경우를 보면 알듯이 고씨가 왕성 이외에 사용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2] 이 시기를 다룬 사극 대조영(드라마)의 부기원은 드라마에만 나오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이 인물과 행적이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