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승려)
信誠
(? ~ ?)
고구려 말기의 승려.
연개소문의 아들이었던 연남건의 심복으로, 승려임에도 불구하고 군사에 대한 업무를 주로 담당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1]
668년, 당나라의 명장이었던 이적이 계필하력 등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을 포위하였는데, 이때 오사(烏沙), 요묘(饒苗)[2] 등과 함께 이적과 내통하여 성문을 열어 주었다. 이적은 열린 성문 안으로 군대를 몰고 들어가[3] 평양성을 함락시켰으며 고구려는 멸망하고 말았다.
고구려의 숨통을 끊었으니 매국노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고구려 멸망의 원흉이라고까지 보기는 애매한 게, 이미 북부, 남부 방어선은 대부분 돌파당하고 항복한 상태에 수도 평양성이 한 달 넘게 포위되어 승패가 거의 정해진 상황이었던데다가, 신성 이전에 고구려 왕이었던 보장왕이 먼저 백기를 들고 성 밖으로 나가 이적에게 항복해 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신성이 성문을 열어준 이 시점에서는 신성이 항복을 하든 말든 사실상 고구려는 이미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왕이 항복을 선언하는 등 이미 패배가 확정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연남건이 끝까지 당군에 맞서 옥쇄하려 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당군과 내통하여 성문을 열어준 것이고, 따지고 보면 신성은 보장왕의 항복하라는 국왕으로서의 마지막 명령을 따른 거라고 해석될 여지도 다분하다. 또한 승려이다보니 당시 연개소문 가문이 도교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고 억불정책을 펼쳤기에 불만을 품고 빨랑 연씨 가문과 고구려가 망하길 바라는 마음을 품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4] 이후 평양성 함락에 세운 공으로 당으로부터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벼슬을 받았다고 한다.
드라마 대조영에서 김영기가 분했다. 신홍의 형으로 나오며 처음에는 연남건을 보좌하며 연남생의 편을 드는 신홍과 대치한다. 그러자 부기원과 연합해서 연남건이 권력을 잡는 데에 일조한다. 연남생이 몰락하고 당나라로 도주하자 그뒤로는 신홍과 협력하게 되고 대조영 일행들을 제거할 궁리를 하게된다. 나중에는 실제 역사대로 당나라 군대에게 평양성의 성문을 열어주는 매국노임이 드러나고 결국 평양성이 함락되어 고구려가 멸망하자 스스로 설인귀 휘하에 들어가 부기원, 사부구와 같이 안동도호부의 수뇌부가 된다. 그래서 대조영이 이끄는 동명천제단(東明天帝團)의 살생부에 이름이 올랐으며 이후 요동성의 안동 도호부에서 부기원의 오른팔로 고구려 유민들을 당나라 노예 상인들에게 사부구와 같이 빼돌리려다가 사부구가 살해당하자 신흥과 함계 계략으로 동명 천제단을 소탕하려 했지만 나중에 역계략을 써서 안동 도호부에 쳐들어 온 대조영에게 잡혀 최후를 맞는다.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는 '신승'이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똑같이 고구려 멸망을 주도했던 선도해, 뇌음신과 함께 처단되어 그 수급이 연개소문에게 바쳐진다.
(? ~ ?)
1. 개요
고구려 말기의 승려.
2. 생애
연개소문의 아들이었던 연남건의 심복으로, 승려임에도 불구하고 군사에 대한 업무를 주로 담당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1]
668년, 당나라의 명장이었던 이적이 계필하력 등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성을 포위하였는데, 이때 오사(烏沙), 요묘(饒苗)[2] 등과 함께 이적과 내통하여 성문을 열어 주었다. 이적은 열린 성문 안으로 군대를 몰고 들어가[3] 평양성을 함락시켰으며 고구려는 멸망하고 말았다.
고구려의 숨통을 끊었으니 매국노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고구려 멸망의 원흉이라고까지 보기는 애매한 게, 이미 북부, 남부 방어선은 대부분 돌파당하고 항복한 상태에 수도 평양성이 한 달 넘게 포위되어 승패가 거의 정해진 상황이었던데다가, 신성 이전에 고구려 왕이었던 보장왕이 먼저 백기를 들고 성 밖으로 나가 이적에게 항복해 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신성이 성문을 열어준 이 시점에서는 신성이 항복을 하든 말든 사실상 고구려는 이미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왕이 항복을 선언하는 등 이미 패배가 확정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연남건이 끝까지 당군에 맞서 옥쇄하려 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당군과 내통하여 성문을 열어준 것이고, 따지고 보면 신성은 보장왕의 항복하라는 국왕으로서의 마지막 명령을 따른 거라고 해석될 여지도 다분하다. 또한 승려이다보니 당시 연개소문 가문이 도교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고 억불정책을 펼쳤기에 불만을 품고 빨랑 연씨 가문과 고구려가 망하길 바라는 마음을 품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4] 이후 평양성 함락에 세운 공으로 당으로부터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벼슬을 받았다고 한다.
3. 대중매체에서
드라마 대조영에서 김영기가 분했다. 신홍의 형으로 나오며 처음에는 연남건을 보좌하며 연남생의 편을 드는 신홍과 대치한다. 그러자 부기원과 연합해서 연남건이 권력을 잡는 데에 일조한다. 연남생이 몰락하고 당나라로 도주하자 그뒤로는 신홍과 협력하게 되고 대조영 일행들을 제거할 궁리를 하게된다. 나중에는 실제 역사대로 당나라 군대에게 평양성의 성문을 열어주는 매국노임이 드러나고 결국 평양성이 함락되어 고구려가 멸망하자 스스로 설인귀 휘하에 들어가 부기원, 사부구와 같이 안동도호부의 수뇌부가 된다. 그래서 대조영이 이끄는 동명천제단(東明天帝團)의 살생부에 이름이 올랐으며 이후 요동성의 안동 도호부에서 부기원의 오른팔로 고구려 유민들을 당나라 노예 상인들에게 사부구와 같이 빼돌리려다가 사부구가 살해당하자 신흥과 함계 계략으로 동명 천제단을 소탕하려 했지만 나중에 역계략을 써서 안동 도호부에 쳐들어 온 대조영에게 잡혀 최후를 맞는다.
드라마 연개소문에서는 '신승'이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똑같이 고구려 멸망을 주도했던 선도해, 뇌음신과 함께 처단되어 그 수급이 연개소문에게 바쳐진다.
[1] 혹자는 이것을 고구려에 승병이 존재했다는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2] 나중에 이 사람의 묘지명이 중국에서 발굴되었다.[3] 삼국사기에는 당군이 평양에 입성하기 전에 신라의 기병 5백을 먼저 성으로 들여보냈다고 한다.[4] 고구려 말기에는 도교가 불교보다 더 우대받는 위치에 있었고, 삼국유사에는 도교를 도입해 불교를 견제하는 정책을 추진한 것이 연개소문이었다고 나오는데, 아예 사찰을 빼앗아 도관으로 내어주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고구려 불교계의 고승이었던 보덕이 이러한 연개소문의 도교 진흥정책에 반발하다 남쪽으로 망명했다는 설화까지 있을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