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연 전쟁
1. 개요
춘추전국시대 당시 연나라(燕國)는 고조선 바로 옆에있었으며 교류가 있었던 국가로, 직접적인 군사 충돌도 존재했다.
2. 전쟁
기원전 281년 연나라 장수 진개가 고조선과 전쟁을 하고 승리해서 2000리 정도의 영토를 개척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전쟁 이전에는 고조선은 랴오닝성과 지린성 일부, 한반도 북부 일대를 장악한 상당히 넓은 영토를 지닌 국가였지만 고고학적인 자료를 볼때 요동지방을 잃고 한 동안 평안도와 황해도 일부 지방만을 차지하는 소국으로 전락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하지만 분서갱유로 연나라의 사서가 타 국가들의 역사책과 같이 불에 타버린 관계로 남은 기록들이 그리 상세하지가 않아 구체적인 기록이 없기때문에 자세한 전투 기록 등은 알 수 없다. 사실 사기에 의하면 기원전 281년에는 이미 연이 요동을 장악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고조선-연 전쟁은 늦어도 서기전 282년 이전에 발발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조선-연 전쟁 개전 시기의 최대 상·하한은 각각 서기전 300과 282년이라고 할 수 있다.
3. 여러 의견
고조선의 강역 및 중심지에 대한 학설 중 이동설을 주장하는 쪽에선 이 연나라의 공격으로 고조선의 중심지가 랴오닝에서 청천강 - 대동강 유역으로 이동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또한 연왕 희가 랴오둥을 넘어서 압록강까지 도주하려다 실패했다는 기록을 두고, 이 즈음 연나라와 고조선의 국경이 압록강 자체, 혹은 그 부근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최근 일부 연구는 고조선-연 전쟁 종결 후 고조선과 연의 경계 지역에 대해 랴오둥 반도를 가로지르는 첸산 서쪽으로 보고 있다. 이후 서한은 거리가 멀어 지키기 어렵다는 이유로 다시 서쪽으로 물러나 고조선은 패수(대체로 훈허나 압록강이나 청천강으로봄로 봄)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4. 기타
이외에 최후의 이성 연왕 노관이 달아날 때 위만이 고조선으로 달아나 귀속하여 변방을 지키다 1년뒤 왕위를 찬탈하고 위만조선을 세우게 된다. 이 때문에 위만의 출신과 위만조선의 정체성을 두고 현대에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는데 이는 해당 문서들을 참고할 것.
여담으로, 본 전쟁의 발발년도를 기원전 281년으로 보는 견해를 수용하면 2020년 기준으로 고조선-연 전쟁은 2300주년을 맞는다.
2항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기원전 281년은 이미 전쟁이 종결된 이후이다. 따라서 위의 견해는 애초에 성립할 수 없다. 서기전 280년까지 늦추어 보는 연구도 있으나 이는 착오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