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강

 

'''청천강'''
| Chongchon River


'''발원지'''
[image] 자강도 랑림군 낭림산
[image] 함경남도 장진군(명목상)(해발 2,014m)
'''하구'''
[image] 평안남도 안주시
[image] 평안남도 안주군(명목상)
'''유입 해역'''
황해
'''길이'''
199km
'''유역'''
평안북도 · 자강도
희천시 · 영변군 · 박천군 · 안주시
'''유역 면적'''
9,470 km2
'''수계'''
미상
1. 개요
2. 설명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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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image]
[image]
2011년 중국인 관광객이 찍은 청천강 대교
북한에 있는 길이 199 km, 유역 면적 9,470 km2의 강이다. 옛 이름은 '''살수'''(薩水).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이 있었던 곳이다. [1] 안주에 있는 골적도(骨積島)[2]는 살수대첩 당시 사망한 수나라 군사의 시체가 쌓여 이루어졌다는 전설이 있다. 현진건이 쓴 단군성적순례에는 현지에서 이따금 옛날 무덤이나 토기 파편 같은 것을 습득하기도 했다고.

2. 설명


청남정맥(산맥 기준으로는 낭림산맥) 낭림산(狼林山: 2,014 m)과 웅어수산(雄魚水山: 2,019 m)에서 발원한다. 남서쪽의 요동(遼東) 방향을 취하여 유원진, 희천시, 영변군, 박천군, 안주시 등을 지나서 황해로 흘러 들어간다. 하류에서는 평안남도평안북도의 경계를 이룬다. (평안남도와 북도를 청천강을 경계로 청남/청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청천강은 구조선이 거의 직선을 이루어, 압록강이나 대동강에서 감입곡류(嵌入曲流)[3]가 심한 것과는 좋은 대조를 보인다. 중류 유역은 침식 개석된 평지를 형성하며, 하류 지역에는 많은 토사를 퇴적하여 안천, 운천 등의 비옥한 충적평야를 전개한다.
지류인 희천강, 구룡강, 대령강을 합류하여 수량이 항상 풍부하므로, 주운(舟運)[4]의 편의가 많으며, 포장수력 또한 25만 6,000 kW에 달한다. 북한은 현재 고질적인 전력난 해결을 위해 청천강상에 희천발전소를 준공, 가동하는 한편 청천강계단식발전소를 건설 중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이름난 강이라고 하지만 하류에 이렇다 할 항구가 발달하지 않았다. 서해안이 그 지형적 특성(갯벌) 때문에 주로 강 하구에 항구가 발달된 것과는 대조적이다.[5] 현재 청천강 하류 지역에서 최대의 항구는 문덕군 서호로동자구에 위치한 문덕항이지만 규모는 작은 어항+화물항 수준이다. 아무래도 근처에 대도시나 대수요처가 없고, 해상운송에 있어서 지리적 이점[6]도 그다지 크지 않으니 항구 개발의 동력이 약한 탓일 듯.
전략적으로는 강원도(북한) 원산시 혹은 함경남도 함흥시[7]와 이어서 한반도를 동서로 가르는 지경선으로 많이 쓴다. 6.25 전쟁 당시 북진할 때도, 38선부터 구획을 몇 개로 나눠 단계적으로 북진하였는데 그 라인 중 하나였다. 해리 트루먼을 비롯한 미군 수뇌부는 더글러스 맥아더가 38선 돌파하는 것을 그다지 바라지 않았으며, 하더라도 이 라인을 지키고 중국소련에 위협을 가하지 않길 바랐다. 그러나 맥아더는 압록강-두만강 라인까지 완벽히 밀길 원했으며, '가능하다면 중국군과 전면전까지 해도 상관없다.'는 의도를 밝혔다. [8]
청천강 전투의 무대였다.

3. 관련 문서



[1] 삼국사기에는 삼국유미상지명 즉 기록에 나오기는 하지만 위치를 알 수 없는 지명으로 살수를 분류했는데, 고려 시대부터 살수를 지금의 청천강으로 보는 견해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고려 말기에 이르러 굳어졌다. 이후 안정복은 자신의 저서 동사강목에서 "우문술(宇文述)이 압록강으로부터 전진하여 동쪽으로 살수를 건너 평양성에서 30리 떨어진 곳에 진영을 두었다", "우문술 등이 돌아오다 살수에 이르러 군사가 반쯤 강을 건넜을 때 고구려군이 뒤에서 그 후군(後軍)을 쳤다.”는 기록을 들어 살수는 평양의 북쪽에 있었으며 안주 청천강이 곧 살수대첩이 있었던 그 살수라고 고증해냈다.[2] 청천강의 하중도이다.[3] 산지나 구릉지에서 구불구불한 골짜기 안을 따라 흐르는 하천.[4] 배로 짐 따위를 나르는 일.[5] 평안북도 신의주시(압록강), 평안남도 남포시(대동강), 전라북도 군산시(금강), 전라남도 목포시(영산강) 등. 한강의 경우는 하구에 항만은 그 정도로 큰 항만은 없지만, 이는 19세기 개항기에 수도 방위를 위해 일부러 한강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은 제물포를 대신 발전시킨 것에 가깝다. 물론 그 제물포는 현재의 인천광역시로 서해안 지역 최대의 항만산업도시로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한강도 결국 경인아라뱃길로 바다와 연결되었다.[6] 청천강 연선 정도 되면 중국 동북 지역으로 갈 때는 철도가 압도적으로 우세하고, 중국 중남부 지역으로 수송할 때는 그냥 남포항 등을 이용해도 무방하다.[7] 함흥과 이을 경우 대동강-원산시[8] 하지만 미군 수뇌부의 생각에는 이유가 있다. 한반도를 동서로 나누면 제일 길이가 짧은 구간이라 향후 전쟁에서도 수비에 매우 유리하다는 것, 서해안의 청천강유역 평야부터 동해안의 함흥평야까지 주요 곡창지도 모두 손에 들어온 상태라서 북한은 주요 곡창지를 모두 뺏기고 산악지대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전선을 굳혀버리면 휴전 후 자체생산능력이 없다시피 한 북한이 고사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중국이 원조를 해줘도 대북제제가 현대처럼 발효되면 경제력 없는 북한이 얼마나 살아남을지는 미지수. 현재 분단상태에서 생각해보면 제일 현실적이고 현명한 안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어이가 없는 제안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