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츠치미카도 덴노

 


'''시호'''
고츠치미카도 덴노(後土御門天皇, 후토어문 천황)
''''''
후사히토(成仁)
'''능호'''
후카쿠사노키타능(深草北陵)
'''생몰'''
1442년 7월 3일 ~ 1500년 11월 21일
'''재위'''
1464년 8월 21일 ~ 1500년 11월 21일
'''연호'''
분쇼(文正)→오닌(応仁)→분메이(文明)→조쿄(長享)→엔토쿠(延徳)→메이오(明応)
'''황거'''
교토 어소(京都御所)
1. 개요
2. 생애


1. 개요


일본의 제103대 천황. 이름은 후사히토(成仁).

2. 생애


고하나조노 덴노의 장남으로 어머니는 오이노미카도 노부무네(大炊御門信宗)의 양녀(養女)였던 오이노미카도 노부코(大炊御門信子)이다. 고츠치미카도 덴노에게 정식으로 맞이한 황후(皇后)는 없었고 세 명의 황실 배우자를 두어 총 5남 7녀를 얻었다. 그 중 다이나곤(大納言, 대납언) 니와타 나가카타(庭田長賢)의 딸인 덴지(典侍) 니와타 아사코(庭田朝子)가 낳은 장남은 후에 제104대 고카시와바라 덴노(後柏原天皇)이 되었다.
1464년 6월 21일, 후사히토 친왕(成仁親王)은 아버지인 고하나조노 덴노의 양위(讓位)를 받아서 26세에 나이로 천황으로 즉위하였다. 즉위 후 약 3년 동안 고하나조노 덴노가 상황(上皇)이 되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고츠치미카도 덴노가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아 무로마치 막부 쇼군 집안 내에서 후계자 문제로 갈등이 깊어졌다. 이 갈등은 전국의 무사세력에까지 확산되어 1467년 1월 오닌의 난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교토는 11년간 전란에 휩싸여 사원, 신사, 황족들의 저택 등 많은 건물이 불타 버렸다. 전란이 오래 지속되자 황실 재정은 매우 어려워져 고츠치미카도 덴노를 비롯한 황족들은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다. 고츠치미카도 덴노는 1477년 9월에 전란이 끝났음에도 계속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전란으로 황실의 권위는 바닥으로 떨어지게 되었고 이러한 현상은 고츠치미카도 덴노의 재위기간 내내 이어졌다.
고츠치미카도 덴노는 1500년 11월 21일 병으로 58세로 사망하였다. 사망 직후 장례를 위한 자금을 동원하지 못하여 시신이 몇 달 동안 황실 창고에 방치되었다가 기부금이 들어오고 나서야 장례가 치러졌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