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주의

 


1. 구조주의
1.1. 심리학 사조
1.2. 언어학의 사조
1.2.1.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연구
1.2.2.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연구


1. 구조주의


구조주의란 단일한 학문이 아니다. 구조주의는 오히려 학문 분야를 망라하고 사용되는, 하나의 세계관이자 일종의 방법론이다. 구성주의라고도 부른다.

1.1. 심리학 사조


'''Structuralism'''
초기 심리학의 사조 중 하나로, 최초의 심리학 학파이다.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심리학은 엄밀히 말하자면 학문으로 정의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인간의 마음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 논의는 대개 철학의 입장에서 행해졌고 철학의 특성상 오직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다루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러한 상태를 타개한 것이 빌헬름 분트(Wilhelm Wundt)였다. 분트는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1879년 최초의 심리학 연구실을 만드는 등 과학적인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을 정립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분트와 그의 제자들이 제창한 최초의 심리학 학문 이론이 바로 구조주의다.
분트는 의식의 구성요소를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첫째로는 무언가를 보고, 듣고, 느끼는 등의 지각(Sensations)이고, 둘째로는 공포, 분노, 사랑과 같은 감정(Feelings)이었다. 구조주의 학파에서는 그 이름대로 위와 같은 두 가지 구성 요소(=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마음과 행동의 원인을 규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1][2] 건물로 비유하자면, 어떠한 건물을 분석할 때 그 건물을 이루고 있는 뼈대, 벽돌 등을 분석함으로써 그 건물 자체를 분석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구조주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떠한 감정이나 지각을 발생케하는 구성 요소를 찾아내고 묘사하는 데에 있었다.[3] 이러한 구조주의적 사고는 빌헬름 분트의 제자였던 에드워드 티치너(Edward Titchener)에 의해서 넓게 퍼져나갔다.
구조주의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방법론이 있는데, 그것은 이른바 내성법(Introspection)이라고 불리는 방법론이다. 일반적으로 구조주의자들은 객관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켜왔는데, 정작 그들의 주된 연구 방법론은 내성법이었다. Introspection이라는 단어는 사전적으로 "내면을 바라봄"이라는 뜻을 가지는데, 그 뜻대로 내성법은 어떠한 상황이 일어났을 때, 혹은 일어난 직후 느끼는 감정을 자기 자신이 자신의 내면을 성찰함으로써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성법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구조주의자들이 객관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이론을 발달시켜온 것과 달리, 내성법은 철저하게 주관적인 영역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방법론으로써의 객관성이 흔들리게 되고 이는 후일 행동주의등의 공격을 받는 이유가 된다. 또한, 내성법으로는 원하는 만큼의 심리 작용과 심성 요소에 대한 표본을 얻어낼 수 없었고, 이는 심리학 연구에 큰 장애를 초래하게 되었다.

1.2. 언어학의 사조


구조주의가 가장 활발하게 시작된 분야는 사실 언어학이다. 소쉬르를 중심으로 구조주의 언어학 연구가 이뤄졌고, 이것이 후대에 레비스트로스 사회학이나 철학 등에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1.2.1.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연구


소쉬르 이전의 언어 연구에서 사물(=지시 대상)이 먼저 있었고 그것에 사람이 명명하면서 단어가 만들어졌다고 보았다. 이러한 시각은 소쉬르의 연구를 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체로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소쉬르는 이러한 발상을 역전시켜버린다.

프랑스어의 '양mouton'이 영어의 '양sheep'과 의미는 같으나 가치는 같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인데, 특히 요리되어 식탁에 놓인 한 점의 고기에 대해 영어에서는 'mutton(양고기)'라고 말하지 'sheep'이라 하지 않기 때문이다. sheep과 mouton 사이의 가치 차이는 전자가 제2의 용어에 병존하는 데 비해 프랑스 낱말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중략) 만약에 낱말이 미리 주어진 개념을 표시하는 역할을 한다면 각 언어마다 하나의 의미에 해당하는 정확한 대응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모든 경우에서 우리가 포착하는 것은 이미 주어진 개념이 아니라 체계에서 우러나는 가치이다. 가치가 개념에 해당한다고 말함으로써 사람들이 암시하는 바는 개념이 순전히 이화적異化的이라는 것, 즉 그 내용에 의해 적극적으로 정의되지 않고, 체계 내의 다른 사항들과의 관계에 의해 소극적으로 정의된다는 것이다. 개념의 가장 정확한 특징은 그것이 다른 어떤 개념도 아닌 바로 그 개념이라는 데 있다.

-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

소쉬르의 말대로 만약 지시 대상이 먼저 있었고, 그것에 단어를 명명했다고 한다면 각 언어마다 하나의 지시 대상에 정확히 대응하는 단어가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소쉬르가 '양'의 프랑스어와 영어 단어의 의미 차이에서 지적했듯, 그리고 한국어를 모국어로 둔 대부분의 위키러들이 외국어를 배울 때 체감하듯, 외국어에는 모국어의 단어와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의미를 지닌 단어가 많다.
또한 소쉬르는 기호의 자의성이란 개념[4]을 전제로 언어의 의미 작용은 기표의 변별자질에 의해서 생긴다고 보았다. 요컨대, '밤'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뱀'이라는 기표와의 변별적 차이에서 발생한다. 이 차이는 실제 발음 상의 모음 'ㅏ'와 'ㅐ'의 차이이며 곧 변별자질의 차이이다. 이러한 의미 작용의 전제로 소쉬르는 '랑그'를 제시했다. 랑그는 언어의 체계이며, 이 체계 속에서 기표 간의 변별자질이 각 단어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랑그, 체계에 대해 부연 설명하자면, 컴퓨터는 이진법 0과 1를 통해 '없음'과 '있음'이라는 의미를 만들어낸다. 컴퓨터에게 0과 1은 '전류가 없음', '전류가 있음'이라는 변별자질의 차이이다. 이러한 차이를 통해서 '없음'과 '있음'이라는 의미가 대립하는 체계가 만들어진다. 인간의 언어는 각 언어의 자음과 모음의 수만큼 변별자질이 있다는 것이고, 그러한 변별자질만큼 의미가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소쉬르에 따르면 랑그 속에서 기호로 존재하지 않는 지시 대상은 그 언어의 사용자들의 의식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다에서 나는 식물은 전부 'seaweed'라고 표현하는 언어권의 사람들에겐 '다시마', '김', '파래', '미역' 등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소쉬르의 연구는 체계 속에서 각 단어가 의미를 가지는 이론 모델을 제시하였다.

1.2.2.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연구


소쉬르의 언어 연구에 영향을 받은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의 이론 모델을 인류학 연구에 적용하였다. 레비스트로스는 다양한 집단에 존재하는 가족 간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어떤 법칙을 발견해냈다. 레비스트로스는 '친밀함/소원함'를 기준으로 분류하였는데, 모든 집단은 이 두 관계에서 반드시 선택지를 고르고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간 관계 / 삼촌과 조카 간 관계'''

'''1. 아버지와 아들은 친밀하지만 삼촌과 조카는 소원함'''

'''2. 삼촌과 조카는 친밀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소원함'''

'''남편과 아내 간의 관계 / 형제(자매)와의 관계'''

'''1. 남편과 아내는 친밀하지만 형제 간에는 소원함'''

'''2. 아내는 자신의 형제와 친밀하지만 부부 간에는 소원함'''

레비스트로스의 연구를 들여다보면, 멜라네시아에서는 아들-아버지 간에는 친밀하지만 삼촌-조카 관계에서는 심한 대립이 있었고, 코카서스의 체르케스 족에는 아들과 아버지 간에 대립이 있고 삼촌은 조카의 결혼에 혼례품을 준비하는 풍습이 있었다. 또, 뉴기니에서는 부부 간에는 친밀하고 개방적이지만 형제자매 관계에서는 매우 엄격한 금기가 있었고, 체르케스족에서는 형제자매가 함께 자기도 하지만 부부가 함께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은 없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친밀함 혹은 소원함이라는 관계의 양상이, 소쉬르의 언어학 연구처럼, 대립하면서 아버지 혹은 아들 / 삼촌 혹은 조카 / 부부 혹은 형제라는 사회적 역할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이러한 대립은 그 집단의 심층구조(체계)에 기인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에 따르면 각 사람이 자신의 아들이나 형제를 대하는 감정이나 행동 등의 관계성은 각 개인이 노력이나 사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요컨대 '''인간의 주체성은 각 사람이 노력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레비스트로스의 연구는 인류학 뿐만 아니라 철학, 역사학, 사회학, 정치학인문학사회과학 전반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데카르트 이후 근대 철학이 말해온 합리적 인간이란 것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또한 근대 철학의 시각을 공유했던 인문/사회과학 전반이 이 충격을 같이 나누게 되었다.
이 충격의 여파로 인문/사회과학의 학풍에는 다양한 변화를 생겼으며, 학문 뿐만 아니라 예술에서도 모더니즘이라고 불리는 사조에 큰 힘을 불어넣었다.
이후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의 연구를 바탕으로 한 구조주의에도 비판과 수정이 가해져 후기 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불리는 사조가 등장한다.

[1] 구조주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이분법 구도를 전제로 한다고 보면 된다. 구조주의 언어학, 아니 구조주의 자체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소쉬르가 기호를 기표와 기의로 구분하고, 언어를 빠롤과 랑그로 구분했던 것도 '구성 요소'와 '차원'을 이분한 것이다.[2] 본문은 구조주의가 제시하는 두 개념 즉 구성 요소와 구조를 같은 것으로 혼동할수 있게끔 기술되어있는데, 구조주의가 말하는 구조는 개별적 요소의 총합이 아니다. 구조는 차라리 개별 요소가 모여 작동하게 만드는 심층적 원리다. 소쉬르가 제시한 개인 언어 '빠롤'은 구성 요소이지만, 공통 언어 '랑그'는 빠롤의 총합인 건 아니다. 랑그는 빠롤들이 작동하게 만드는 원리이다. 구조는 구성 요소의 합이 아님을 명심하자.(분석과 분류의 차이를 생각해보자)[3] 앞선 주석에 구조주의가 심리학에만 적용되는게 아님을 밝혔듯, 이러한 목적의식은 구조주의 심리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는 구조주의적 방법론으로 연구를 진행한 모든 학문 분야에 공통되는 사항이다.[4] 페르디낭 드 소쉬르 혹은 언어의 자의성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