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낭 드 소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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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1] 1857년 11월 26일 ~ 1913년 2월 22일)는 스위스의 언어학자이자 기호학자로 구조주의 언어학과 현대 기호학의 창시자이다. 또한 기호학자로서뿐만 아니라 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단초를 마련하는 것에도 큰 공을 세웠다.«La linguistique a pour unique et véritable objet la langue envisagée en elle-même et pour elle-même».
"언어학의 유일하고도 진정한 대상은 언어인데, 언어는 그 자체로서, 그것만을 위하여 고찰되어야 한다."
2. 생애
스위스 서부 제네바시에서 태어났다. 소쉬르 가문은 제네바시는 물론 스위스 내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오래된 명문가로 유명했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생물학자이자 탐험가였던 앙리 드 소쉬르(Henri de Saussure, 1829년 11월 27일 ~ 1905년 2월 20일)와 이름난 백작가문의 딸, 루이즈 엘리자베트 드 푸르탈레스(Louise Elisabeth de Pourtalès, 1837년 9월 25일 ~ 1906년 9월 10일) 부부의 9남 3녀 가운데 장남이었다. 페르디낭 드 소쉬르는 자연 과학자들을 배출한 유구한 가풍과 전통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하였으며,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어머니로부터 예술적 감수성을 물려받기도 했다. 실제로, 그의 조숙한 천재성은 그가 14세 때 저술한 인도유럽어의 비교 논문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비교역사언어학의 중심지였던 독일의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역사언어학의 지각 변동을 가져온 장편의 석사 논문 <인도유럽어족 원시 모음체계에 관한 논문(Mémoire sur le système primitif des voyelles dans les langues indo-européennes)>을 출간한다. 베를린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파리로 건너가 1881년부터 10여 년 동안 고등연구실습원(É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에서 강의하면서 1891년에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후 1892년에 자신의 모교인 제네바 대학으로 돌아가 1907년부터 1913년까지 세 차례의 일반언어학 강의를 했다.[2] 1913년에 스위스 서부, 보 주 뷔플랑르샤토(Vufflens-le-Château)에서 폐렴으로 별세하였다.
3. 일반언어학 강의
소쉬르의 가장 유명한 저작으로 남아있는 《일반 언어학 강의(Cours de linguistique générale)》는 소쉬르가 지은 책이 아니다. 소쉬르 자신은 출판에 대해 매우 인색했으며, 실제로 죽을 때까지 단 한 권의 책도 출간하지 않았다. 그의 사후 샤를 바이(Charles Bally, 1865년 2월 4일 ~ 1947년 4월 10일), 알베르 세슈에(Albert Sechehaye, 1870년 7월 4일 ~ 1946년 7월 2일)가 남아있던 강의 노트를 간추려 출간하였다.
4. 학문적 업적
4.1. 공시적언어학
소쉬르는 19세기 언어학이 인간의 목소리가 의미 있는 소리를 창출하는 여러 가지 방식들을 연구하는 음운론과 다양한 문법들의 비교 등과 같은 역사적 언어학, 비교 언어학 등에 관심을 두고 경험적인 현상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언어의 가장 독특한 특징인 전체적 혹은 체계적인 측면을 연구하는 데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소쉬르는 이 문제를 부각하기 위해 역사의 한 시점에서 언어 상태를 정태적으로 포착하는 공시적 언어학을 제창한다. 자세한 건 해당 문서를 참조.
4.2. 랑그와 파롤
해당 문서 참조.
4.3. 기호의 자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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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쉬르는 모든 기호는 겉으로 드러나는 기표의 형식인 기표(記標, 시니피앙signifiant)와 기호가 의미하는 내용인 기의(記意, 시니피에signifié)로 나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나무'라는 말을 할 때 소리인 [나무]는 시니피앙이 되는 것이고, 그 의미인 ‘줄기나 가지가 목질로 된 다년생 식물’은 시니피에가 되는 것이다.[3] 이 둘의 관계는 의미작용(意味作用, 시니피카시옹signification)이라고 한다. 그 내용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자의적이다’라는 ‘기호의 자의성’이다. 즉 우리가 ‘줄기나 가지가 목질로 된 다년생 식물’을 ‘나무’라고 부르게 된 것은 우연적이라는 뜻이다. [나무]라고 우리가 말하는 발음과 그것으로 가리키는 식물에는 어떠한 연관점도 없다. 둘째는 ‘기표와 기의의 관계에는 필연성이 없지만 체계 속에서는 필연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나무’라는 글자를 보거나 [나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줄기나 가지가 목질로 된 다년생 식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가 필연화된 ‘언어’라는 기호 체계 속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쉬르가 언어학자였던 만큼 그의 기호학은 언어기호를 중심으로 생각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고틀로프 프레게의 기호학이나 퍼스의 기호학을 참고하면 좋다. 또한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도 자신의 저서와 강연에서 소쉬르의 기호언어학을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5. 여담
소쉬르는 출판하거나 기록물로 문서를 남기는 것을 아주 싫어했으며, 실제로 박사논문[4] 을 제외하고는 논문이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강의를 끝마치고 난 뒤에는 강의록을 얄짤없이 '''태워버렸다.''' 제자들이 강의노트를 모아 출판한 일반언어학 강의에 관한 출판물 역시 생각보다 적은 분량이고, 그나마도 강의노트 뿐만 아니라 수강생들의 필기노트들까지 뭉뚱그려 재구성한 것이다.
과거 수능에서 국어 영역이 언어 영역이라는 이름으로 나올 때에는[5] 비문학에 나오던 언어학 관련 지문에서 종종 보이는 이름이기도 했다.[6]
[1] 프랑스어식 인명 표기이며 국제음성기호 표기는 [fɛʁdinɑ̃ də sosyʁ\]이다. 외래어 표기법상에서 영어를 제외한 로망스어와 게르만어의 전치사나 관사는 인명이나 지명일 경우 뒷말과 붙여서 '드소쉬르'와 같이 쓰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관용적으로는 '드 소쉬르'로 표기하며, 한국의 언어학계에서는 주로 '소쉬르'라고 지칭한다.[2] 서양의 고전을 읽는다, 2006.5.22, 휴머니스트 참조[3] 사실 조금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줄기나 가지가 목질로 된 다년생 식물' 역시 '나무'라는 기의를 표현하는 언어라는 기호에 불과하다.[4] 인도유럽어족의 원시모음 체계에 관하여[5] 2013 수능까지[6] 2014 수능부터 언어학 관련 내용이 비문학 부분에 직접 연계되는것이 아닌 문법 파트에 간접적으로 연계되는 형식으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