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 인각사 금동사자형 병향로
사진 출처 : 연합뉴스 군위 인각사 출토 '금동사자형 병향로'
1. 개요
2008년 경상북도 군위군 인각사의 1호 건물지 동쪽 유구(遺構)에서 발굴된 8세기~9세기 경 통일신라 시대의 금동 병향로. 현재 불교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인데, 함께 발견된 다른 유물 17점과 함께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이란 명칭으로 2019년 5월 보물 제2022호로 지정되었다.
2.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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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조계사 불교중앙박물관 인각사 특별전
고려 승려 일연이 삼국유사를 저술한 곳으로 유명한 인각사에서 2008년 출토된 신라시대 유물이다. 제작연대는 대략 8세기 중반-10세기 중반이라고 추정한다.
불보살에 올리는 공양은 향(香)과 화(花), 등(燈) 세 가지가 기본을 이루는데, 이중 향공양(香供養)은 원래 귀인을 맞이할 때 향을 몸에 뿌려 향기를 내게 하고 악취를 제거하며 해충을 쫓기 위해 사용하던 관습이 부정을 제거하고 마음의 때까지 씻어준다는 의미를 가지면서 불보살 공양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와 같은 향공양을 위해 필요한 불구가 향로인데, 신라시대의 향로는 그 형태에 따라 손잡이가 없는 거향로(居香爐), 손잡이가 있는 병향로(甁香爐), 걸어두는 현향로(懸香爐)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 또 병향로를 손잡이 끝의 장식에 따라 작미형병향로(鵲尾形柄香爐), 사자진병향로(獅子鎭柄香爐), 병진병향로(甁鎭柄香爐), 무진자병향로(無鎭子柄香爐), 연지형병향로(蓮枝形柄香爐)로 분류하는데 이 유물은 대략 9세기 무렵에 인각사에서 사용되던 금동 사자진병향로로, 연대적으로도 예술성으로도 귀중한 한국의 유물이라 할 수 있다. 사자진은 불법(佛法)을 상징하는 사자상을 만들어 부착한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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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다양한 신라시대 병향로가 남아 있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신라시대 금동 병향로가 있는데 상태는 가장 좋으나 발굴된 장소가 불명확하고, 또한 경남고고학연구소가 2003년 경상남도 창녕에서 발굴한 금향로도 유명하다. 그 외에 경주 석굴암 주실 주벽의 나한상이 든 향로, 성덕대왕신종의 비천상, 경주 남산 탑곡마애조상군의 손잡이향로를 들고 있는 비구상 등도 이러한 향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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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정창원, 고대문화교류사 연구의 보고
일본 정창원에도 천황가의 유물로 비슷한 금동사자형 병향로가 1점 소장되었다. 과거 일본 학계에서는 자국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한 고유한 작품이라고 주장했지만, 이후 한국에서 동일한 양식의 향로가 계속 발견되면서 학술적인 논의가 나왔다. 그러다 정창원 병향로보다 제작연대가 확실히 앞서는 군위 인각사 금동사자형 병향로가 발견되면서 한일 양국 학계의 여론이 점차 신라에서 최초 제작한 후 일본에 수출한 작품인 것으로 기울었다. 다만 신라 쪽이 원조로 완전히 확정된 경주 월지 금동초심지가위와는 달리 아직 이견을 내는 학자들이 있으므로 학계 여론이 완전히 일치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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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출토된 금동가릉빈가상(金銅迦陵頻伽像), 향합(香盒), 정병(淨甁), 청동북(金鼓) 등 17점의 유물과 함께 2019년 5월 2일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3. 바깥고리
4. 보물 제2022호
'군위 인각사 출토 공양구 일괄'은 2008년 경상북도 군위군 인각사의 1호 건물지 동쪽 유구(遺構)에서 발된 유물로서 금속공예품과 도자류로 구성된 총 18점의 일괄 출토품이다.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고려 초기에 제작된 유물로 추정된다. 금속공예품은 총 11점으로 금동사자형 병향로(柄香爐), 향합(香盒), 정병(淨甁), 청동북[金鼓] 등으로 구성되었고 사찰에서 사용하는 청동제 의례용품들로서 조형성 뛰어나고 섬세한 기법이 돋보인다. 그 중 불교에서 천상의 새를 상징하는 금동가릉빈가상(金銅迦陵頻伽像)은 그동안 출토 사례가 거의 없어 도상적(圖像的)으로 희귀하며 청동발과 청동뚜껑[접시] 역시 통일신라부터 유행한 전형적인 기형(器形)으로서 당대 공예기술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군위 인각사 출토 일괄유물 가운데 청자 7점은 모두 중국산으로 추정된다. 발굴 당시 포개진 채 출토되어 공반(供伴) 유물로서 가치가 있으며 함께 출토된 금속유물의 제작시기 등을 추정하는데 참고가 된다. 청자는 8세기말~10세기 전반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국내 출토 중국도자의 편년기준을 제공할 뿐 아니라 국내산 청자의 제작시기를 연구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신라 말~고려 초 금속공예품들은 대부분 사찰이나 박물관 등지에서 전해 내려오는 유물인 반면 인각사 출토 공양구는 비교적 이른 시기의 보기 드문 금속기명과 청자 유물들이 공반 출토되어 명확한 출토지와 편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