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철(조직폭력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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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觀喆
1920(?)~?[1]
1. 개요
2. 생애
3. 대중매체에서
3.1. 드라마 왕초
3.2. 드라마 야인시대


1. 개요


일제강점기대한민국 시기의 인물. 김두한의 부하인 깡패로 키 190cm에 120kg대 체중의 거한이었다고 한다.
김동회씨 이상욱씨등 실제 우미관패 생존자들의 인터뷰나 글에서 항상 일관되게 190 거한에 천하무적의 파이터로 표현된다.

2. 생애


평양 출생이라는 주장이 있으며[2], 김두한의 수하로 우익 정치깡패로 활동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대한민청에서 김두한의 별동대 일원으로 활동하였고, 정진용 살인 사건 당시 김두한과 함께 법정에 서서 징역 30년형을 선고 받았다.
6.25가 끝날 무렵, 대부분의 정치깡패들이 그러했듯이 그럴듯한 직함 하나를 받아 밥벌이에 나서는데, 김관철의 소속은 건중친목회. 이 단체는 자유당과 폭력배들이 결탁하여 미군의 불하물자를 독점입찰하여 폭리를 취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것. 하나 더하면 민중시보사 라는 정체불명 신문사의 업무부장을 맡았다고 한다.
그러나 건중친목회의 활동 중 이권 문제로 인해 깡패들 사이에 내분이 발생. 결국 김두한이 김관철에게 위협사격을 하는 막장사태가 발생하였고, 이에 열받은 김관철이 김두한을 고소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제3대 국회의원 선거 불과 두 달 전에 일어난 탓에, 김두한은 국회의원 당선에는 성공했으나 이 사건의 여파로 감방에 갈 처지가 되어 버렸다. 김관철은 이후 김두한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였으나, 친고죄가 아닌 탓에 김두한에 대한 기소는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은 이상할 정도로 시간을 질질 끌었고, 2년 뒤인 1956년이 되어서야 선고유예라는 해괴한 판결이 내려졌는데, 불법적으로 총기를 소지하고 위협사격까지 했는데 상식적으로 선고유예가 가능할지 생각해보자. 참고로 최소한 현재의 대한민국 기준이라면 절대로 선고유예가 나올 수 없다. 그만큼 그 당시 시대적 상황 자체가 지금과 달라도 한참 달랐음을 알수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아프리카나 중남미에선 지금도 이정도 죄질의 범죄는 물론이고 그 이상으로 죄질이 큰 범죄들에 대해서도 돈있고 빽있으면 선고유예는 물론 아예 증거불충분등으로 무혐의 처리되거나 아예 기소조차 안되는 경우도 많긴한데 그만큼 중남미와 아프리카가 지금도 부패수준이 심하다는 증거이자 50년대의 대한민국이 현재의 중남미나 아프리카 급으로 부패했었다는 증거이기도하다. 다만 김두한의 경우는 이 사건이 자유당의 정치공작이라고 말 한 적이 있다. 김두한의 말이 대체로 믿기 어렵거나 뻥이 많기는 한데, 당시 신문에도 왜 하필 당선되고 나서 이런 일을 터트렸냐거나 정치공학적인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기사들도 있긴 했었고, 김관철이 김두한에 대해서 좋은 쪽으로 증언을 해 줬다거나, 선거운동도 같이 했다거나 하는 유리한 정상들이 있기도 하니 판단은 알아서... 어느 쪽이던 당시 정치 상황이 개판이라는 증거가 되는 건 사실이니 뭐...
어쨌든 이 사건의 여파로 김관철은 주먹 세계에서 은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주먹계에 은퇴하고 여러술집과 카바레 등의 사업을 하며 살았다. 그 후인 1987년경향신문에서 대한민청에 대한 연재기사를 냈을 때 김관철이 신영균 등 옛 대한민청 동지들과 함께 모여 사진을 찍은 것이 자료로 남아있긴 하다. 그리고 이로부터 멀지 않은 시점에 사망한 걸로 추정된다.

3. 대중매체에서



3.1. 드라마 왕초


직접적인 등장은 없고 언급만 되는데, 1954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김두한을 김관철이 살인 미수로 고소해 김두한은 경찰서에 가고, 자유당에 많은 무소속 의원들을 입당시키려는 김동식(아베)이 김두한에게 풀려나고 싶으면[3] 자유당에 입당하라 한다. 이 때 김두한을 연행한 경찰이 김동식의 수하 한철민(센세이) 종로경찰서 서장인데 한철민 역의 배우가 야인시대에서 김관철을 연기한 이정용이다.

3.2. 드라마 야인시대



[1] 1954년 권총 위협사건시 기사에 34세로 나와 있다. 그에 따르면 1920년 생이 되는 셈.[2] 장호근이 쓴 실화소설들에선 평양출신으로 나온다. 이 장호근의 부친이 바로 상하이 독수리 장천용으로 장호근은 어릴적부터 아버지의 친구인 시라소니를 삼촌으로 따랐다고 한다.[3] 김두한은 감옥가도 좋다면서 배짱을 부리지만, 문제는 교도소에 수감되면 의원직을 잃게 되는 상황이었다.